지난밤 내내 너는 울었겠지. 나 또한 간밤 내내 울었다. 날이 새오지만 내 마음엔 짙은 안개와 어둠뿐. 너의 모습은 그 안개너머, 어둠의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밀란,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대. 너는 나의 곁에 있는데, 너의 마음은 내 곁에 없다. 몇개의 담장만 건너면 너를 볼수 있고, 잠시 걸으면 너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앞에 다다를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가 너와 애기할 수 있는데, 너는 너무나도 먼 곳에 있다. 내 앞에 있는것은, 지치고 상처입은 너의 몸뿐.
하지만 널 원망하지 않아. 미워하지도 않아. 그럴수록 더욱더 너에게로 가까이 가야 한다는 생각뿐. 내가 한 걸음 다가서면 너는 저만치 멀어져 가지만, 그래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승산 없는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지만, 널 사랑한다.
--- p.240-241
그것이 너를 위한 일이라면, 그가 돌아오는 것이 널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아무래도 괜찮아. 널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면 목숨을 버리는 일도 두렵지 않아. 널 사랑한다. 네가 날 미워하는 순간에도 난 너만을 사랑한다.
--- p.242
궁성의 공기는 상큼했다. 진한 새순의 향기와 달콤한 수액의 냄새가 섞여 싱싱하게 온몸을 감쌌다. 수시아는 큰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이 확트였다. 길고 빛나는 머릿결, 쌍꺼풀 없는 긴 눈매, 오똑한 콧날, 그리고 얇은 입술.... 선이 여렸지만 누구도 그녀를 여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련장 단상에 선 그녀의 한마디에 수백 명의 병사들이 움직였다. 누구도 그녀의 말을 거슬르지 못했다. 전쟁터에서의 그녀는 뛰어난 지휘관이었고 훌륭한 전사였다. 그녀의 판단력은 언제나 정확했으며 명령은 적절했다. 병사들은 전적으로 그녀를 믿었다.
“이제 오는 거야? 얼마나 기다렸는데.”
공주궁의 문을 들어서자마자 리아가 달려나왔다.
“들어가세요. 봄이라지만 쌀쌀해요.”
리아는 수시아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수시아는 공주의 손에 이끌리듯 방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래, 지난번 관미성 전투에 대해 얘기해줘. 비류배제인들을 보았어? 어떻게 생겼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생겼니?”
“그래요. 우리와 똑같이 생겼어요. 어떻게 보면 고구려 남자들보다 더 잘생긴 것 같기도 하고...”
수시아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웃었다. 리아도 함께 웃었다.
'하얗게 이를 드러내고 웃어본 것이 언제였는지...'
병사들은 수시아를 웃지 않는 여자라 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병사들을 통제하려면 말과 웃음을 아껴야 했다. 하지만 리아와 함께 있으면 이렇게 곧 잘 웃음이 났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수시아는 웃고 있었지만 내내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람 때문일까? 비류백제에서 온 그 남자. 채찍 아래서도 묵묵히 고통을 참아내던 남자. 꾀죄죄한 옷을 입은 초라한 몰골의 그 남자.'
수시아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형형한 눈빛, 그리고 굳은 결심을 말해주는 입술.
그때 왜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까. 물론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포로에게 채찍을 가하는 건 양마소에서는 언제나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으니까.
--- p.182
.....약속해, 우리.
천 년쯤 지난 후에 다시 만나. 천 년으로 모자란다면 또다른 천년 후라도........ 그때까지 넌 누구도 사랑해선 안돼. 그때도 세상이 우리 사랑을 말리면 안되니까......... 날 알아볼 수 있겠지? 낯선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목소리만으로도 날 기억할 수 있겠지.......?
그래. 그럼 된 거야.....넌 이제 날 잊어. 아침이 오면...... 넌 아름다운 신부가 되겠지.
행복해!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그럴 수가 없구나.
나 없이 행복하라고 말하면......지금까지 내 사랑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 같아서.......
안녕.
천 년 후에 다시 만나자. 천 년..... 후에......
머리말 중에서
.....약속해, 우리.
천 년쯤 지난 후에 다시 만나. 천 년으로 모자란다면 또다른 천년 후라도........ 그때까지 넌 누구도 사랑해선 안돼. 그때도 세상이 우리 사랑을 말리면 안되니까......... 날 알아볼 수 있겠지? 낯선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목소리만으로도 날 기억할 수 있겠지.......?
그래. 그럼 된 거야.....넌 이제 날 잊어. 아침이 오면...... 넌 아름다운 신부가 되겠지.
행복해!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그럴 수가 없구나.
나 없이 행복하라고 말하면......지금까지 내 사랑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 같아서.......
안녕.
천 년 후에 다시 만나자. 천 년..... 후에......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