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마이는 몸집이 작은 편이며 오늘날의 유인원들처럼 전신이 털에 덮여 있다. 연구가들은 투마이가 죽었을 때 겨우 11살이었다고 추정한다. 그의 머리는 작고 뇌의 크기도 350cm³에 불과하다. 그러나 투마이는 이미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투마이가 인간 계보의 처음에 자리한다고 믿는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의 이마 뼈는 원숭이처럼 불룩 튀어나왔고, 뒷모습은 유인원처럼 보였다. 그 반면에 약간 닳은 작은 송곳니처럼 보이는 치아의 특성들은 인간 계보에 배열할 것을 시사한다. 일찍이 700만 년 전 거대했던 차드 호수의 퇴적물 속에 사실 투마이의 많은 것이 남아 있지 않은 탓에 정확한 분석은 어려운 일이다. 허벅지 뼈는 아예 소실되었고, 두개골은 수백 개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짜 맞추어야 했다. 하지만 작은 송곳니들이 많은 것을 암시한다. ---「직립 보행」 중에서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 서쪽에 위치한 로칼라이나 말라위 같은 아프리카의 다른 많은 지역에서도 비슷비슷한 패턴에 따라 제작된 듯 보이는 석기들이 나중에 출현한다. 이런 이유에서 학자들은 260만 년에서 160만 년 사이의 도구들을 올두완 문화라는 개념으로 모아 부른다. 이 이름은 최초의 석기들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것에서 유래한다. 그보다 더 오래된 도구들이 아마 앞으로 발견될지도 모른다. 가장 오래된 흔적에서 이미 숙련된 기술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도구」 중에서
여자들을 차지하는 것이 문제되는 경우, 원인들이 경쟁자들과 어떤 식으로 대치했는지에 대해서는 추측만이 가능하다. 우선권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 때로는 살인으로 이어졌다고 충분히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있었을 폭력의 흔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인간이 언제 최초로 의도적으로 살인을 자행했는가, 또는 언제 최초로 탐욕이나 살해 욕구에 사로잡혀서 사람을 죽였는가, 언제 최초로 교활하고 아주 잔인하게 사람의 목숨을 앗았는가 하는 물음들은 제기할 수 있다. 그런 저열한 동기들은 뇌의 발달을 전제로 한다. 인간의 뇌가 서서히 커지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의식적으로 석기를 활용하기 시작했던 260만 년 전에 그런 일이 처음 발생했으리라고 추정된다. ---「최초의 살인 도구」 중에서
숯의 짙은 검정색, 점토의 갈색, 붉은 황토나 또는 불그스름한 깨진 철광석. 그는 코뿔소들부터 시작할 생각으로 소나무 숯 조각을 선택한다. 먼저 힘차게 뿔과 주둥이를 그린 데 이어 앞다리와 배를 그린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나머지 몸통을 그리는 데 몰두한다. 그런 다음 왼쪽 위로 비스듬히 오록스를 그리기 시작해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끝으로 그림 한복판에 비스듬히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네 마리의 말을 그리는 데 전념한다. 그는 다시 왼쪽 위에서 시작한다. 화가는 말들을 그리려고 의도적으로 그 자리를 남겨 두었다. 그에게는 말들이 가장 중요하다. 말들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서 앞의 소들 쪽으로 콧구멍을 살며시 내밀고 있다. 갈기는 위를 향하고 있다. 말들이 서로 밀착해서 앞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그는 오로지 숯만을 이용해 윤곽을 그린다. 처음 선을 그리기 시작할 때와 마무리할 때는 숯을 좀 더 세게 누른다. 그러면 선이 더 굵게 그려지고, 그림에 생동감이 살아난다. ---「최초의 예술가」 중에서
2009년 6월, 니콜라스 코나르트는 우리의 주인공이 흰목걸이독수리의 날개 살로 만든 피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거의 4만 년 동안 사람들에게 잊힌 채 홀레 펠스의 동굴 바닥에 묻혀 있었다. 바위 틈새로 29m 정도 걸으면, 석회석에 둘러싸인 커다란 공간이며, 박쥐 무리들이 겨울과 봄에 서식하는 엄청난 둥근 천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150만 년 전에 원시 바다가 그 공간을 만들어 냈다. 위쪽으로 경사진 그 넓은 공간의 높이는 최고 28m에 이르고, 그래서 음향이 울려 퍼지기에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최초의 음악」 중에서
괴베클리 테페의 건축물은 유례없는 것이었으며, 현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 원형 구조물의 가장 큰 기둥들은 가장 오래된 것들이기도 하다. 그 산은 직경 약 200km에 이르는 지역의 제식 중심지였다. 오늘날 알려진 신석기 시대 부락의 모든 인간들은 괴베클리 테페의 커다란 석주들이 웅장한 형태로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상징과 기호를 사용했다.
스톤헨지의 원환 구조물이 비교적 단순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선돌로 이루어진 반면에, 괴베클리 테페에서는 최초의 기술자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마스터플랜에 따라 석공들에게 지침을 내렸고, 석공들은 부싯돌 끌로 석회암을 쳐 내 예술적인 기둥들을 만들어 냈다. 매끄럽게 다듬은 돌 위에 들짐승, 뱀, 여우, 사자, 멧돼지, 두루미의 욾주 예술적으로 정교한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더욱이 사냥하는 개의 모습도 보인다. 그것은 길들여진 짐승을 그림으로 보여 주는 가장 오래된 증거이다. 그 사이사이에 원, C, 넘어진 H, 또는 들소의 두개골을 단순화시켜 묘사한 듯한 상징들이 보인다. “이 기호들은 우리가 아직 그 의미를 알아내지 못한 상징들입니다.” 슈미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들은 아마 전 세계적으로 최초의 문자에 대한 증거일 수 있다.
---「최초의 신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