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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

광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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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444쪽 | 153*224*30mm
ISBN13 9788968495823
ISBN10 896849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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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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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895년 개관한 한국 최초의 극장인 인천의 애관극장은 현재 멀티플렉스로 바뀌었고, 1907년 대한제국 한성에서 문을 열었던 단성사는 폐관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개관한 광주극장은 두 극장보다 늦게 등장했으나 이제 유일하게 남은 단관(單館) 극장으로서 위엄을 지키고 있다. 광주극장은 1933년 법인을 설립하고, 1935년 10월 1일 개관한 이래 2018년 현재까지 85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광주극장과 맺은 인연은 이 책을 쓰는 출발점이었다. 광주극장의 역사나 흔적은 신문과 잡지 그리고 보고서와 연구 논문까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필자 역시『광주의 극장 문화사』(다지리, 2005)와 『한국의 극장』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을 통해서 광주극장의 역사에 관하여 기술한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 부분적으로 언급된 것이기 때문에 이제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언급된 내용을 망라하여 광주극장의 완결판을 쓰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게 되었다. 광주극장을 자주 들락거렸으며 극장에 대하여 글을 써왔다는 이유로 다소 무모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욕심이 지나친 것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극장은 시간의 박제품인 영화와 유한한 존재로서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그곳은 연표와 숫자만으로 설명하기에 너무나 무한한 곳이다. 이 책을 기획한 이유는 광주극장 건물의 유한성과 ‘특별한’ 극장의 전성시대 광주극장의 ‘길’에 대하여 주목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시간의 더께가 만들어낸 중후한 모습이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햇살 한 줄기에도 따뜻한 기운을 쏟아내는 건물의 곳곳과 극장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 그리고 광주극장이라는 장소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오늘 광주극장에 관한 이야기(들)를 하나 더 보태려고 한다.


01
광주극장 이전의 극장

영화와 극장은 제국-식민 관계와 그에 따른 근대 도시의 형성과 함께 등장했다. 한국의 극장 역사는 1895년 인천의 애관극장에서 서막을 열었으며, 1903년 한성의 단성사가 이를 이었다. 광주의 근대 극장 역사는 일제강점기 광주읍(光州邑) 서성정(西城町)에 자리한 광주좌(光州座)에서 시작된다. 1917년에 출간된 『광주지방사정』이 광주좌를 ‘근년에 신축’한 광주 유일의 극장으로 소개하기 때문이다. 이때 광주좌는 엄밀한 의미에서 영화관은 아니었다. 1919년 8월 4일과 1920년 5월 12일 매일신보가 광주좌에서 ‘독자위안회’를 명목으로 예기(藝妓)들의 공연을 선보인다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광주좌를 ‘연극장’으로 소개하기 때문이다. 1931년 10월 7일 광주 지역 언론 매체는 화재 발생에 따른 광주좌의 전소(全燒)를 알리는데, 이때 광주좌를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소개한다.
광주좌가 문을 연 1917년 지역 최초로 전기를 도입한 광주전등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전기의 출현은 대규모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공장 설립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는 동시에 영화를 소비할 수 있는 대규모 관객의 도래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광주좌의 주인 후지가와 다다요시(藤川忠義)는 관객 정원 3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총 건평 120평 규모의 목조 2층 건물을 지었다.
일본인이 세운 광주좌는 근대 이전 조선인이 즐긴 원형의 ‘판놀이’ 문화와 다른 ‘사각의 닫힌 공간’의 출현을 의미한다.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판놀이와 달리 광주좌는 한쪽 면을 향하여 시선을 고정하는 시각 체제를 형성했다. 즉, 대상을 통제하는 권력의 시선이 작동하는 공간이 등장한 것이다. 광주좌는 불온(不穩)의 공간이기도 하였다. 광주좌 인근에 일제 침략과 함께 도래한 근대화의 외부적 존재인 유곽(遊廓)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광주좌가 자리한 동네는 일본인 이주자들이 정착하면서 일본식 여관과 요리집 그리고 일본인 기녀(妓女) 게이샤(藝者)가 처음으로 등장한 곳이었다.
광주 지역 최초의 상설 영화관은 광남관(光南館)이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1910 식민지시대의 영화검열 1934』에 따르면, 1927년 10월 1일 광남관은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기록된다. 광남관의 경영자는 일본인 구로세(黑豊?)였고, 관객 정원은 543명이었으며 일본 닛카츠(日活) 계통의 영화를 상영했다. 1930년 4월 2일 중외일보에 “광주학생사건운동으로 다사다난한 광주시민대중을 위로코저” 광남관에서 ‘광주시민위안영화대회’를 개최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광남관이 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광남관 이후 제국관(帝國館)이 존재했다. 제국관의 개관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30년 3월 30일 중외일보 기사에 따르면 광남관과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거나 광남관의 후신인 것으로 보인다. 제국관은 경찰서와 법원 등 일제의 행정 기관이 몰린 본정(本町, 현재 충장로 1가)에서 개관했다. 제국관의 관주(館主)는 구로세 도요조(黑瀨豊藏)였으며, 극장 규모는 건물 상하층과 장외를 포함하여 총 70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일본의 대표적 영화사 도호(東寶)와 신코(新興)의 작품을 배급받아 양화(洋畵)와 함께 상영했다. 제국관은 광주좌와 마찬가지로 일본인을 우선 고려한 종족(ethnic) 차별적인 공간이었지만, 관공서 근무자와 같은 일본어 해독 능력이 있는 조선인들도 드나들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경성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영화 소비 시장이 좁은 광주에서 일본인에 한정한 극장 운영은 수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종(混種)의 공간으로서 제국관의 존재가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아리랑 후편(이구영, 1930)의 상영 도중 발생한 화재 사건 때문이다. 1930년 3월 26일 700여 명의 관객이 아리랑 후편을 관람하던 도중 이웃집에서 발생한 화재를 영사실 화재로 착각하면서 극장 밖으로 대피한 것이 중외일보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최대 흥행작 아리랑(나운규, 1926)의 후속편이자 조선 최고의 스타 나운규가 출현한 영화를 일본인 극장에서 상영한 것은 영화 소비 시장이 협소한 지방 도시의 극장이 혼종의 공간이었음을 말한다.
1938년 매일신보는 1937년 1월부터 12월 말까지 광주에 존재했던 극장들의 관람료를 게재하는데, 이때 광주극장과 제국관 이외에 황금좌(黃金座)를 추가하여 소개한다. 하지만 매일신보 기사를 제외한 여타의 자료에서 황금좌에 관련된 정보가 부재하기 때문에 해당 극장의 운영자와 운영 기간 그리고 극장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제국관 매니저(manager)로 일한 전기섭의 동생 전경섭에게 황금좌에 대한 기억 또는 구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황금좌의 존재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여하튼 1945년 해방을 맞은 광주에 자리한 극장은 광주극장과 제국관이었다. 적산(敵産)으로 처리된 제국관은 공화극장을 거쳐 동방극장으로 이름을 바꿨고, 1970년대 무등극장이 되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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