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견스님은 지금은 해인사에 계시지만 해방 무렵에는 오대산에 계셨는데, 그때 지켜본 보문스님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그 무렵에 오대산 동관음암에 있다가, 상원사에 올라가서 보문스님을 모시고 살았죠. 그때에 보문스님과 같이 있던 모든 선객들이 선에 대해서 보문스님이 법문해주시는 것을 좋게 받아주고 그랬어요. 당시 훌륭한 선객으로는 향곡스님, 성철스님이 계셨지만 보문스님의 수행력이 더 대단했다고 해요.
한암스님의 상좌 가운데에서도 아주 철저하게 선종사상을 되살리고, 명철하게 공부를 해서 혜안이 열린 스님이었죠.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찍 돌아가셨어요.
도견스님의 회고 --- p.32
- 한암스님이 보문스님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을 아시나요.
한암스님께서는 “내 상좌 가운데에는 선에 대한 지견이 투철한 사람은 보문이 뿐이다”는 말씀을 했어요. 한암스님이 그렇게 하시는 말씀을 다른 선객들하고 같이 들었죠.
도견스님의 회고 --- p.32
- 보문스님이 마취도 않고 수술하였다는 것은 알고 있나요.
보문스님이 수술을 할 때에 마취도 안 하고 갈빗대를 잘랐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그 스님은 선의 정신력이 강하기 때문에 마취도 않고 갈빗대 수술을 했다고 그러지요.
도견스님의 회고 --- p.34
- 성수스님은 성철스님보다, 보문스님에게 더 끌리시는 것 같군요.
성철스님은 큰스님이기는 해도, 견지見地가 똑 떨어진 사람이 아니여. 내가 보기엔 보문스님이 진짜 선승이지. 그런 스님을 우리가 배워야 돼요. 그 스님은 말을 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스님이에요. 진짜 법문을 한 스님이었지. 나도 23살에 성철스님이 도사라고 해서 해인사로 찾아갔지만, 보문스님에게 반했지.
성수스님의 회고 --- pp.73-74
- 보문스님은 봉암사에서 성철스님과 같이 결사를 하였지만 조금 불편해서 거기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지요.
봉암사결사를 할 적에 보문스님도 성철스님과 그곳에 있었어요. 그때 성철스님, 청담스님, 자운스님, 향곡스님 등 여러 스님이 계셨죠. 그런데 하루는 보문스님이 성철스님에게 “우리가 평소에 부처님에게 마지를 올리는데, 부처님은 그 공양을 어떻게 잡수십니까?” 하고 질문했대요. 이에 성철스님은 답을 못하였대요. 그런데 외출을 하고 돌아온 향곡스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보문스님에게 막 험한 소리를 하니깐 보문스님이 그래서 떠났다는 소리를 내가 어느 수좌스님에게서 들었어요.
도원스님의 회고 --- pp.90-91
- 보문스님은 대구시내의 시장터에서 탁발했던 일화가 유명합니다. 혹시 그 장면을 보시지는 않았나요.
봤어요. 보문스님이 대구 칠성시장에 염불을 하시면서 탁발을 하실 때 보면, 발우를 들고 죽 걸어가십니다. 그러면 상인들이 그냥 발우에다가 돈을 막 갖다 넣습니다. 그러면 금방 돈이 차버리는데, 스님은 그것을 자기가 쓰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줍니다. 나도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시대 사람입니다. 보문스님이 탁발할 때에는 상인들이 지나가다가 보문스님을 향해서 엎드렸죠. 기가 막히죠. 그러니깐은 스님은 불보살이여.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지금까지는 안 했어요.
녹원스님의 회고 --- pp.108-109
- 보문스님의 탁발 일화는 유명하지 않습니까? 혹시 보셨거나 들은 내용은 없나요.
보문스님의 탁발은 이곳 부산 범일동 시장에 한 것이 유명하지. 그때 6·25가 나서 서울에 있던 정부가 다 부산으로 옮겼어요. 서울대 교수였던 황산덕 교수의 부인이 스님의 탁발을 보고 나에게 말했어요. 보문스님이 발우를 가지고 심경만 외우고 가는데 시장의 점포에 있는 사람 중에서 그 발우에다가 돈을 넣지 않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러면 발우에 있는 돈이 넘쳐 그 돈을 집어가는 거지가 있으면 스님은 그 거지에게 가져가라고 하였대요. 이를 본 황산덕씨 부인이 “스님 오늘 탁발을 마치면 어디로 가시나요” 물었더니 스님은 “중이 절로 가야지 갈 곳이 있나” 하니깐, 그 부인이 자기 집에 가서 간단하게 공양 대접을 할 터이니 같이 가시자고 했대요. 그 부인이 탁발을 마칠 쯤에 와서 모시고 간다고 하였는데, 한 시간이 되어도 그 부인이 안 온기라. 그러니 보문스님은 탁발하였던 그 노상을 다시 뺑뺑 돌다시피 하다가 보니 지나간 점포를 다시 지나갔지만은 아까 돈을 낸 점포 상인들이 다시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그래요.
보성스님의 회고 --- p.118
- 보문스님은 세속 시절에도 정의감이 강하였다고 합니다.
스님은 정의감이 많았어요. 그런 분이 없어요. 스님은 절대로 어려울 때를 만나도 예, 아니오가 분명하게 일처리를 하신 분이었어요. 절대 어리벙벙하게 안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부드러운 방법으로 처신하라고 그랬지요.
보성스님의 회고 --- p.124
- 보문스님을 다시 한 번 정리하신다면요.
스님이 조금만 더 살았으면 한국불교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인데, 그것이 애석합니다.
보성스님의 회고 --- p.127
- 듣기로는 보문스님이 토굴에 계실 때에 대구시내 시장에서 탁발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혹시 초우스님도 탁발할 때 같이 가셨나요.
그럼요. 같이 간 적이 있습니다. 탁발한 곳은 대구시내의 중앙통이었죠. 스님은 육환장을 짚고, 요령을 흔들고 반야심경을 외우면서 갑니다. 보문스님이 맑은 음성으로 염불을 하시고 가면 시장통 사람들이 돈을 막 내고 그랬어요. 그리고 발우에 담겨 있던 지폐가 넘치기도 했고, 바람이 불면 발우에 있던 지폐가 날라가고 동전만 남습니다. 그래도 스님은 신경도 안 씁니다. 돈이 날라가면 거지들이 막 주웠지만, 보문스님은 그런 것에 전혀 괘의치 않았죠.
스님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하는 탁발은 안 하시고, 꼭 길거리에서만 하셨어요.
초우스님의 회고 --- p.127
- 봉암사결사에서도 보문스님은 성철스님과 초기에 입주한 스님입니다. 그런데 보문스님이 계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요.
보문스님은 용심用心하는 게 대단한 분입니다. 성철스님하고는 전연 다른 스타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성철스님은 학자적인 도인입니다. 듣기로는 봉암사에서 보문스님과 성철스님이 우리 책 보지 말고, 아는 소리를 하지 말자고 약속을 하였대요. 그런데 성철스님이 뒷방에서 책을 보게 되면서 두 스님이 불편해졌답니다. 그래서 보문스님은 봉암사는 당신이 있을 데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초우스님의 회고 --- p.139
- 보문스님이 오래 사셨다면 종정도 하셨고, 한국불교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고, 사실일 것입니다. 저는 보문스님을 우리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 스님의 수행정진, 판단력, 선지 같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초우스님의 회고 --- p.140
- 보문스님을 높이 평한 스님은 누가 있을까요.
보문스님을 만나 뵌 사람은 누구나 존경하지 않을 수 없지. 부산 선암사 조실 석암스님은 율사, 선사로 부산지역에서 큰 활동을 하신 분이에요. 이 스님은 누구에게나 큰소리를 쳤지만 보문스님에게는 그리 안 했어요. 석암스님은 성철스님과 보문스님을 높이 평했지만 보문스님을 더 쳤어요.
도성스님의 회고 --- p.175
- 왜 이렇게 보문스님과 성철스님이 이질적이었나요.
성철스님과 보문스님은 기본적으로 체질이 달라요. 제가 객관적으로 볼 때에 성철스님은 과시적, 신비주의적인 면이 부각되는 스타일입니다. 그렇지만 보문스님은 순수 수좌형, 수행자입니다. 포장하지 않고, 하심하고, 수행정진하는 타입입니다.
현해스님의 회고
--- 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