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은 기독교 내부에서 일어난 기독교 신앙의 적대 세력이다. 그것은 외관상 기독교처럼 보이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고 기독교 교리를 오염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단은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외부의 박해자들보다 교회에 더 큰 폐해를 끼치고 기독교 신앙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교리적인 면에서 이단의 가장 큰 문제는 기독교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첫째, 이단은 성경의 교훈과 교회의 교리에 배치되는 것을 진리라고 가르치거나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여 새로운 계시 혹은 예언을 주장하며 그것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한다. 고대 교회의 몬타누스파(Montanism)나 현대의 몰몬교가 그와 같은 사례다.
둘째, 이단은 교회가 인정하는 일부 교리를 부정하거나 또는 반대로 과도하게 강조하기도 한다.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한 고대의 아리우스주의(Arianism)나 현대의 유니테리언파(Unitarianism),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인성을 부정한 고대의 에비온주의(Ebionism)나 현대의 여호와의증인이 그런 것이다.
셋째, 이단은 그들의 교주를 메시아나 재림주로 신격화하여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예수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몰몬교는 교주 스미스를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을 받은 자로, 통일교나 신천지는 교주 문선명이나 이만희를 재림주로, 천부교는 교주 박태선을 참 하나님으로 믿는다.
넷째, 이단은 제도적인 교회를 부정하거나 교회의 단일성을 파괴한다. 이단은 흔히 정통 기독교 교회를 적대시하며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고대의 도나투스주의(Donatism)나 종교개혁 시대의 재세례파(Anabaptists), 그리고 현대의 몰몬교 등이 그러하다.
이렇듯 이단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른 복음을 가르치거나 성경 말씀을 변조 또는 곡해하여 기독교의 교리에 배치되는 거짓 교리를 주장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단은 실제적인 면에서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단은 그들 자신이 잘못된 교리를 신봉할 뿐만 아니라 교회 속으로 들어와 간교한 궤변으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교회에 심각한 폐해를 끼치고 있다. 따라서 이단은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존재다. 박해자는 단지 성도의 육체적 생명만 빼앗아 갈 수 있지만, 이단은 그의 영원한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단은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기능도 없지 않다.
첫째, 정통 교리 형성에 촉매 역할을 한다. 이단이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는 것이 전통 신앙의 수호자들에게 그 오류를 고발하고 진리를 밝히게 하는 자극제가 되고 정통 교리 정립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이단은 정통의 존재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교회가 아리우스주의와의 논쟁을 통해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하고 네스토리우스주의와의 논쟁을 통해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를 확립한 것이 그 예다.
둘째, 교리에 대한 신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성경의 메시지는 항상 변조와 오해에 노출되어 있다. 이단의 출현은 교회로 하여금 성경의 메시지나 기독교 교리 가운데 혹시 간과하거나 소홀히 한 것 또는 무관심하거나 오해한 것이 있지 않나 되돌아보는 자기 성찰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정통에 대한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이단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이단의 도전은 화석화된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부패한 교회를 개혁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단은 맹목에 가까운 열정적인 신앙과 그들 교주와 집단에 대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충성심, 그리고 불타는 활동력을 지니고 있다. 열심이 없는 사람은 이단이 되기 힘든 것이다. 이런 이단의 열정과 에너지는 무관심과 나태에 빠지기 쉬운 정통 교회와 성도들에게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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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이단을 판별하는 기준을 살펴본다면, 한국 교회의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 성경의 가감이다. 교회는 성경 66권을 기독교 유일의 경전으로 믿고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는다. 반면, 이단은 성경의 완전성을 부정하고 성경 이외에 또 다른 경전을 주장하며 그것에 최종 권위를 부여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제한하거나 부인하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는다. 반면, 이단은 그들의 교주 혹은 창시자를 신격화한다.
셋째, 새 계시와 영감(靈感)이다. 교회는 정경의 완성과 더불어 성서적 계시, 규범적 계시는 종료되었으며, 성령의 조명은 계속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성경의 내용이나 권위를 능가하는 또 다른 계시는 존재할 수 없다. 반면, 이단은 성경의 완전성을 부정하고 성경 이외에 또 다른 계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새 계시, 환상, 직통 계시, 신비적 체험을 자신들의 교리를 합리화시키는 근거와 수단으로 제시한다.
넷째, 비윤리적이며 반사회적 집단이다. 이단은 교회와 교인의 신앙을 혼란케 할 뿐 아니라 건전한 상식을 벗어난 극단적 태도나 행동으로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다섯째, 혹세무민이다.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장소와 날짜를 말하여, 신자들을 미혹하여 금품을 사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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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이 정경에서 제외되고 이단적인 문서로 밀려나게 된 근본적 이유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고 믿는 것과 전혀 다르고, 사도적인 교회와 신학적인 연속성도 없으며, 그 기원과 출처도 의심스러운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가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요, 구원은 그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기독교 핵심 교리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한편, 인간 자신의 참 본성을 깨닫는 것, 즉 지식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문제였다. 도마복음이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을 강조한 것이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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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가 당시 기독교에 역기능만 한 것은 아니었으며, 순기능도 없지 않았다. 첫째, 교회는 영지주의를 논박하는 과정을 통해 권위 체계를 확립하게 되었다. 영지주의는 기독교를 교리나 신비로 간주하고 독자적으로 교회의 표준이나 성경, 전통을 사용했다. 따라서 교회 기독교와 영지주의가 직면한 문제는 권위의 문제였다. 어떤 권위에 근거하여 영지주의의 교훈을 반박하는가, 왜 성경이 영지파의 비의(secret teaching)보다 결정적인가, 무엇이 기독교 교리이며 성경이며 전통인가 하는 문제였다. 기독교는 영지주의와의 싸움을 통해 권위 체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신약 정경, 사도적인 전통, 신앙의 규칙, 세례 신조, 감독이 그것이다. 이것은 ‘사도적 권위’로 집약된다. 사도적인 권위는 교회가 이단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했던 각종 도구를 총괄적으로 종합하는 최종적인 주장이었다.
둘째, 영지주의의 도전으로 신학 활동이 촉진되었다. 신학 활동은 영지주의를 정복하기 위한 동기와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2세기에 많은 반영지주의적 교부들이 배출되어 신론, 기독론, 인간론 등에 대한 기독교 진리를 보다 확고하고 명료하게 제시했다. 예를 들어, 이레네우스는 하나님과 창조주를 분리시킨 것이 영지파의 근본적인 오류이며, 그것은 창조주에 대한 모독인 동시에 사탄의 간교라고 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지고의 하나님, 곧 창조주이시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와 예수를 분리시키는 영지주의를 반박하고, 영원한 로고스가 성육신을 통해 역사적 예수가 되었다는 것, 즉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인간인 동시에 진정한 하나님임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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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논쟁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와 의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아리우스 신학에 대한 논쟁이었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며 시작을 가지고 있으며 변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실제로 하나님을 대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리우스의 신학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인가를 제시해야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리우스 논쟁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기독론에 대한 기독교 정통 교리가 확립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은 동일하며, 아들은 출생된 것이지 창조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유일신 신앙을 핵심으로 하는 삼위일체론이 확립되었다.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이지만, 위격(person)에 있어서는 셋이다.
- 141~142
펠라기우스 논쟁은 고대 서방 교회에서 일어난 낙관적 인간론과 비관적 인간론의 충돌이었다. 극단적인 낙관론을 대변한 펠라기우스는,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신적인 의지를 성취할 수 있는 특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으며, 자력으로 완전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비관론을 대변한 어거스틴은 타락한 인간은 자력으로는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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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대분열은 그 1차가 1054년 동방 정교회와 서방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분열이라면, 그 2차는 1517년 서방 교회의 분열, 즉 천주교와 개신교의 분열이다. 이로써 세계 기독교는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3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분열은 기독교 역사에서 파생한 가장 큰 재난 가운데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슬람교 세력과 제일선에서 맞서 그 확산에 항거하던 동방 기독교의 에너지를 크게 약화시켰던 비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그들이 처한 상이한 환경, 즉 헬라 문화적 배경과 로마 문화적 배경, 헬라어 사용권과 라틴어 사용권, 지방 분권적인 교회와 중앙 집권적 교회, 황제 주도적인 교회와 교황 주도적인 교회 등으로 인해 일어난 여러 가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불화하여 나타난 결과였다. 따라서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분열한 것은 어떤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의해 특정 시점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 교회 내적 요인들과 정치, 문화, 언어, 관습 등 교회 외적 요인들이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되어 일어난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 214~215P
박태선의 전도관과 문선명의 통일교는 한국 토종 기독교 이단 종파의 쌍벽을 이루며 수많은 이단 종파 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흔히 신천지로 불리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도 전도관에 뿌리를 둔 집단 가운데 하나다.
한국 개신교 주요 교단은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기독교 언론 매체는 ‘신천지 아웃’ 캠페인을 벌리며, 교회나 신학교는 대부분 그 입구에 ‘신천지 추수꾼 출입금지’ 경고문을 붙이고 있다.43 이는 교회에 대한 신천지의 폐해가 어떠한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만희는 어떤 인물이고 신천지는 어떤 종파이기에, 한국 교회가 이렇듯 그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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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들어 일부 진보적인 학자들은 전통 신학이 하나님을 단지 남성적인 형상만으로 이해한다고 비판하며 하나님을 남성과 여성 모두의 형상으로 진술하려고 한다. 주기도문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로 바꾸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여성신학 급진파는 하나님을 남성적으로 이해하는 기독교를 포기하고 여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진보적인 신학보다 한 발 더 나가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으로 이분화하는 도발이 한국 교회에서 일어났다.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의 행태가 그러하다.
2000년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는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를 안식교 계열 이단으로 규정했으며, 2002년 예수교 장로회 통합 총회, 2003년 합신 총회, 2008년 합동 총회, 2009년 고신 총회와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총회 등이 그것을 각각 이단으로 규정했다.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과 더불어 최근 한국 교회에 폐해를 끼치고 있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그렇다면, 그 교주 안상홍은 어떤 인물이며 무엇을 주장하는 까닭에 그와 그의 종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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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