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생적으로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에 매료되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는 세상의 크고 작은 소음에 갇혀 말씀의 여운마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 주변을 맴도는 말씀을 우리 안에 모시지 못하고 그저 세상의 다른 뭇 소음처럼 스쳐 보내기 일쑤지요. 이제 다시 말씀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나 시편의 저자처럼 꿀보다 단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용할 양식을 취하듯,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꼭꼭 씹어 먹어야 합니다.
5쪽, 김종수 주교의 추천사
‘여정’이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하나의 여행과도 닮아 있습니다.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러한 만남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과 세상을 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여행을 했던 곳이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마음가짐이 다르면 그 여행은 이전과는 또 다른 의미로 남는 것처럼,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것도 그러할 것입니다.
6쪽, 정순택 주교의 추천사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별한 사람인 예언자들은 구약 성경 시대 내내 존재하였다. 예언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단어들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나비????’는 먼저 모세와 연관된다(신명 34,10).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을 때 하느님의 해방의 메시지를 듣고 그것을 백성에게 전해 준 예언자였다. 모세의 형인 아론도 예언자로 불릴 수 있는데(탈출 7,1), 그가 파라오 앞에서 모세를 대변하였기 때문이다.
14쪽, 01 여러 예언자들
구약 성경은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의 착취로 고생을 할 때마다 그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최악의 억압과 착취가 일어났던 시기에 아모스, 예레미야, 이사야, 에제키엘과 같은 강력한 예언자들이 나타났던 것은 우연일 리가 없다. 가난한 이들 편에 서서 예언자들이 했던 말은 기탄없고 단호하였으며 강력하였다.
24쪽, 02 예언자들의 표지
아모스 예언자는 사회 정의의 문제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예언자였을 것이다. 그는 대량 학살과 잔인함, 분노와 부정직, 탐욕과 무법 상태, 음욕, 무덤 훼손, 예언자들에 대한 거부, 강도, 폭력, 이기심, 속임수, 부정의와 교만 등 북 왕국의 주민들의 많은 죄들을 고발하였다. 부자들의 착취에 대해서도 고발했던 아모스 예언자는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태도에 대해 분개하였다.
45쪽, 03 하느님의 종인 예언자들
아시리아가 북왕국을 멸망시키고 주민들을 유배 보내기 이전의 여러 세기 동안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북왕국에 파견하셨다. 기원전 9세기의 예언자들(엘리야와 엘리사)과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들(아모스와 호세아)이 주창한 공통된 주제는 다음과 같다. “회개하여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너희를 구원하실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너희와 너희의 나라는 파멸하고 말 것이다.” 두 번째 주제는 특히 호세아서에 잘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도 하느님은 선을 베푸실 수 있다는 것이다. 백성들의 죄조차도 야훼가 당신의 백성과 맺은 계약을 파기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56쪽, 04 북왕국의 멸망과 예언자들
대림 시기와 성탄 시기의 미사 독서들의 상당 부분은 구약 성경의 예언서들, 특히 이사야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말씀들은 구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간절함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 그리고 그 갈망마저 놓아 버린 듯했던 절망의 시기에,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메시아에 대한 약속으로 희망을 주셨던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를 미사 독서로 읽는 것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하고 그 말씀의 성취를 기념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70쪽, 05 이사야 예언자와 미카 예언자
널리 알려진 블루스 음악가인 B. B. 킹이 이런 말을 남겼다. “때때로 인생은 당신을 우울하게blues 하지만, 블루스blues는 당신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 그가 말하고자 한 바는 이러하다. 상처든 슬픔이든 감정을 일단 표현하면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한다. 특히 당신의 슬픔을 하느님께 ‘노래’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백’으로 알려진 성경 구절들 안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께 자신의 슬픔을 자주 토로하였다. 예레미야의 고백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예레미야서 15장 10-21절과 17장 14-18절, 18장 18-23절과 20장 7-18절이다. 이 구절들은 꼭 읽어 보면 좋겠다. 어쩌면 예레미야 예언자도 ‘블루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79쪽, 06 바빌론 유배
에제키엘서와 애가를 비교하며, 에제키엘 예언자의 행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자(95쪽 표 참고). 애가는 강력하고 상징적인 언어로 폐허가 된 예루살렘의 모습을 묘사하며 나라 잃은 백성의 깊은 설움과 슬픔을 토해 낸다. 에제키엘서를 애가와 함께 읽으면 기원전 597년 예루살렘이 포위되던 당시에 에제키엘이 목격했던 도성 안의 끔찍했던 상황과 또 그가 바빌론에서 듣게 된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폭력과 파괴로 인하여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된다. 따라서 그의 행위들은 정신병에 걸린 이의 광란이 아니라 국가적인 환란을 경험한 이의 압도적인 슬픔과 상실감, 고통을 쏟아 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94-96쪽, 07 유배 시기의 예언자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은 무죄하였지만 죽임을 당하였고 이에 대하여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백성을 위하여 죄를 짊어졌고 도살당할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도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세상을 의롭게 하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다. ‘수난 사화’는 고난받는 종의 노래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죽임을 당하셨고, 당신을 죽이는 이들의 조롱을 전혀 거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세상의 죄를 짊어지심으로써 죄인들을 의롭게 하셨다.
104-105쪽, 신약 성경과 함께 보기 | 고난받는 종이신 예수님
묵상
정말로 좋아했던 어떤 장소로 되돌아가길 간절히 바랐던 때가 있습니까? 만약 되돌아간다면 그것은 당신이 기억하던 만큼 좋은 곳이었을지 유배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들의 경험과 비교하여 생각해 봅시다.
115쪽, 08 유배민들의 귀환
이사야서 40-55장을 보면 당시 유다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이 바빌로니아 제국보다는 훨씬 덜 억압적일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빌론 유배가 끝나 가고 페르시아의 지배가 막 시작되는 상황에서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관하여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유다인들은 몇 가지 질문들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팔레스티나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해야만 하는가? 유배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팔레스티나 밖에서 살게 된다면 정치적 주권의 회복을 위해 힘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내적인 영성 생활에 헌신하는 데 더 주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116쪽, 09 유배 전후와 유배 시기 작품들의 주요 주제
요나서의 중심은 요나서 2장 3-10절에 나오는 감사 기도이다. 성서학자들은 이 감사 시편이 요나서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이며, 이 시편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미드라시로 요나서의 이야기를 시편 주변에 배치하였다고 말한다. 이 시편에는 성전을 그리워하는 마음(요나 2,5)과 그 땅에서 멀어져 감옥에 갇힌 것을 암시하는 표현(요나 2,7)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 시편은 디아스포라에 있는 이들이 그들의 운명에 대해 한탄하는 유배 시기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시편 107,10-16; 137; 이사 42,7; 애가 3,34). 그러므로 요나서는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읽을 때 이 작품이 지닌 힘과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요나서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126쪽, 09 유배 전후와 유배 시기 작품들의 주요 주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