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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6월 29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744쪽 | 1152g | 144*216*40mm
ISBN13 9788954618540
ISBN10 8954618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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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의 어려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퍼즐 그림의 주제도, 화가의 화법도 아니며, 바로 절단의 정교함이다. 한 번의 우연한 절단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우연한 어려움을 만들어낼 것인데, 퍼즐의 가장자리나 세부, 빛의 얼룩, 윤곽이 뚜렷한 물체, 선, 색조 변화가 있는 부분에서는 조립이 용이하고 그 나머지 겨우ㅡ구름 없는 하늘, 모래, 초원, 경작지, 응달 등ㅡ에서는 진절머리가 나도록 어려우므로, 어려움의 정도가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p.20

지금 이 작은 거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 남는 것들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파리들, 혹은 학생들이 건물 모든 집의 현관문 밑으로 밀어 넣고 간, 새로 나온 치약을 선전하거나 또는 세제 세 상자를 사면 25상팀을 할인해준다고 알리는 광고지들. 혹은 윙클레가 일생 동안 구독했던 잡지로, 그가 죽은 뒤에도 몇 달 동안 계속 배달되었던 『주에 프랑세(프랑스의 장난감)』의 지난 호들. 또는 마루나 벽장 구석에서 굴러다니는 하찮은 물건들로, 어떻게 그곳에 들어와 있으며 왜 그대로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는 다음과 같은 것들. 시든 들꽃 세 송이, 끝부분이 검게 탄 듯한 섬조纖條가 힘없이 늘어져 있는 연약한 나무줄기들, 빈 코카콜라 병 하나, 가짜 라피아 섬유로 만든 끈이 아직도 매달린 채 반쯤 열려 있는 종이 케이크 상자 하나. 상자 위에는 ‘루이 15세의 낙원으로, 제과점, 1742년 개점’이라는 글자가 화환 장식에 둘러싸여 예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곁에는 볼이 통통한 네 명의 어린 연인의 모습이 있다.---pp.54-55

그에게 있어 계단은, 각 층마다 얽혀 있는 하나의 추억을, 하나의 감동을, 이제는 낡고 감지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그러나 그의 기억의 희미한 빛 속 어디에선가 고동치고 있는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즉 어떤 몸짓, 어떤 향기, 어떤 소리, 어떤 번쩍임,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오페라 곡을 노래하던 어떤 젊은 여인, 서투른 솜씨로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 크레졸의 고약한 냄새, 웅성거림, 고함 소리, 시끌벅적한 소리, 실크나 모피가 스치는 소리, 문 뒤에서 나던 고양이의 애처로운 울음소리, 칸막이벽을 두드리는 소리, 슈슈 소리를 내는 축음기 위에서 되풀이되는 탱고 음악, 혹은 7층 오른쪽 아파트에서 가스파르 윙클레의 크랭크톱이 내던 지겨운 윙윙 소리, 그 소리에 답하는 듯한 세 층 아래 4층 왼쪽 아파트의 늘 한결같던 참을 수 없는 침묵을.---pp.99-100

시노크는 천천히 읽으며 희귀한 단어들을 기록해갔고, 그의 계획은 조금씩 모양을 갖추어갔다. 그는 잊혀진 단어들의 대사전을 편찬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중앙아프리카의 흑인 난쟁이 부족인 아카스인들에 대한 기억이나 역사화가 장 지구, 연가 작곡가 앙리 로마녜지 (1781-1851)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세람비신느 종, 하늘소 과에 속하는 네 마디 초시류인 스콜레코브로트를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아직도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는 단순한 단어들을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10년 동안 그는 8,000개가 넘는 단어를 모았고, 이렇게 모인 단어들을 통해 오늘날 간신히 전할 만한 하나의 이야기가 구성될 수 있었다.---p.393

대단한 부자이면서 동시에 그 부富가 일반적으로 가져다주기 마련인 것들에 대해 무관심한 남자, 그리고 세상 전부를 포착하고 묘사하고 철저히 규명하려는 것?발설하는 것만으로도 무너지기 쉬운 계획?이 아니라 세상을 이루는 한 조각을 포착하고 묘사하고 철저히 규명하려는 대단히 오만한 욕망을 품고 있는 한 남자를 상상해보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의 모순에 맞설 때는, 아마도 제한적이겠지만 동시에 그만큼 전체적이고 온전하고 환원될 수도 없는 어떤 계획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 관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날 바틀부스는 그의 삶 전체를, 오직 자의적인 필연성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어떤 독특한 계획에 따라 구성해나가기로 결심했다.---p.169-170

“난 당신을 아내로 원했어. 그리고 당신과 아이를 모두 갖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아내도 아이도 없고, 이러한 상태가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어왔어. 그래서 난, 그동안 우리 두 사람으로 하여금 이 위선적인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었던 힘, 우리가 여전히 괴로워하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던 그 놀라운 힘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증오인지 아니면 사랑인지를 자문하는 것을 이제 그만두려 해.” ---p.594

4층 층계참에 놓여 있었던 일곱 개의 대리석 무늬 사탕. 그 중 네 개는 검은색이고 세 개는 흰색인데, 바둑에서 보통 ‘고’ 혹은 ‘영원’이라고 불리는 형상으로 놓여 있었다.---p.619

그 이후로 그의 커다란 아틀리에는 거의 항상 비어 있다. 그러나 위팅은 맹목적인 애착 때문인지 그곳에 아직도 많은 재료들을 남겨두었다. 천장에서 늘어뜨려진 네 대의 조명기가 빛을 밝히고 있는 강철 이젤 위에는 ‘에우리디케’라는 제목이 붙은 커다란 캔버스가 놓여 있는데, 그는 이 캔버스가 미완성인 채 그냥 그대로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즐겨 말한다.
캔버스에는 가구가 거의 없고 회색 페인트가 칠해진 텅 빈 방 하나가 그려져 있다. 방 한가운데 있는 회색 철제 책상 위에는 핸드백, 우유병, 비망록, 라신과 셰익스피어의 초상화가 실린 페이지가 펼쳐진 책l)이 놓여 있다. 구석 벽에는 노을 지는 풍경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다. 그 곁에 문이 반쯤 열려 있는데, 아마도 그 문을 통해 방금 에우리디케가 영원히 사라졌으리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p.640

바틀부스는 자신의 퍼즐 앞에 앉아 있다. 그는 머리가 벗어지고 앙상하고 밀납 같은 낯빛에 생기가 사라진 눈을 가진 노인으로, 퇴색한 푸른 양모 실내복을 걸치고 회색 끈으로 허리를 맸다. 두 발은 염소 가죽으로 만든 굽 높은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채, 가장자리가 해져서 너덜거리는 실크 양탄자 위에 놓여 있다. 머리가 약간 뒤로 젖혀지고 입이 반쯤 벌어진 채 그는 오른손으로 안락의자의 팔걸이를 움켜쥐고 있다. 반면, 탁자 위에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거의 뒤틀리기 직전의 상태로 놓인 왼손의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는 최후의 퍼즐 조각이 끼어 있다.---p.654

지금은 1975년 6월 23일이고, 이제 저녁 8시가 되려고 한다. 자신의 퍼즐 앞에 앉은 채 바틀부스는 막 숨을 거두었다. 테이블보 위에는 439번째 퍼즐이 놓여 있다. 이 퍼즐의 황혼녘 하늘에 해당하는 한 부분에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단 하나의 퍼즐 조각으로 인한 검은 구멍이 거의 완벽한 X자 형태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죽은 바틀부스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조각은, 오래 전부터 그의 아이러니한 삶을 통해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W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p.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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