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전체와 구약에 대한 서론
성경을 두 부분으로 나눌 때 첫 부분을 “구약”(Old Testament)이라고 부른다. 이는 출애굽기 19장부터 모세의 언약 아래에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이며, 또한 히브리서 8:13에서와 같이 『옛 것』이라 부르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31:31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새 언약』을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성경은 종교서적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루시는 것을 기록한 역사책이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이 성경이 나누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3장, 창세기 3~12장, 창세기 12장~출애굽기 19장, 출애굽기 19장~마태복음 26장, 마태복음 26장~사도행전 2장, 사도행전 2장~요한계시록 4장, 요한계시록 4장~요한계시록 19장, 요한계시록 19장~22장.
예수 그리스도에 따르면 구약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곧 율법과 선지서들와 시편이다(눅 24:44). 이는 모든 정통 혹은 보수주의 유대인들도 수용하는 표준적인 구분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 세 부분을 “토라”(), “네비임”(), “케투빔”()이라 부른다.
“토라”는 모세가 기록한 처음 다섯 권의 정경을 말한다.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이 율법을 헬라어 용어인 “모세오경”(The Pentateuch)이라고 부른다.
“네비임”은 여호수아, 재판관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권의 소선지서를 포함한다. 때때로 룻기를 재판관기에 포함시키기도 하고 예레미야 애가를 예레미야에 붙이기도 한다.
“케투빔”은 시편, 잠언, 욥기, 솔로몬의 노래, 룻기, 예레미야 애가, 에스더, 전도서, 다니엘, 에스라와 느헤미야(때로 한 책으로 취급함), 역대기상하를 포함한다.
히브리어 성경은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역대기하에서 끝나도록 배열되어 있다(마 23:35). 책들의 배열 순서가 다르기는 하지만, 수록된 책들은 『킹제임스성경』과 동일하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외경(Apocrypha)이 없다. 따라서 마틴 루터와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구약과 신약에서 외경을 분리해 낸 것이다. 로마카톨릭과는 달리, 그들은 외경이 구약이나 신약에 속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신약 서론
성경의 신약이 “우리 주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신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다루기 때문이요, 주님은 『새 언약』을 『유언한 자』이시기 때문이다(히 9:16-17). 비록 『언약』을 말할 때 “커비넌트”(covenant)와 “테스터먼트”(testament)가 『킹제임스성경』에서 둘 다 사용되지만, “유언”의 의미를 내포한 “테스터먼트”가 성경의 큰 두 구획을 나타내는 데 적합하며, 특히 신약(the New Testament)을 말할 때 더욱 그러하다. “테스터먼트”는 언약을 말한 자의 죽음을 다루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도 “고인의 마지막 뜻과 유언”이라는 표현을 쓴다.
신약은 27권, 7,959구절,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 181,253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신약의 정중앙 책은 데살로니가후서이며, 정중앙에 있는 장은 로마서 13-14장이며, 정중앙 구절은 사도행전 17:17이다.
신약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구약을 인용한 곳이 거의 1,000군데 가까이 된다. 이들 중 333개의 인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신약의 기록자들 중 누구도 외경을 단 한 번도 인용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이교도가 지은 시를 인용할지언정 외경은 인용하지 않았다. 몰몬교도들과 크리스찬사이언스나 그 외에 어떤 다른 영지주의 이단의 저작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이 세상을 대적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라면, 신약 중 사복음서는 마귀를 대적하신 아들 하나님의 역사이며, 바울 서신은 육신을 대적하신 성령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은 논쟁의 여지 없는 예언의 성취로 가장 놀랍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예언의 성취는 성경을 세상의 다른 모든 경전과 차별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메시아를 일컫는 용어 『가지』가 4회 사용된 것은 사복음서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지”라는 용어는 예레미야 23:5, 스카랴 3:8; 6:12-13, 이사야 4:2에 나온다. 예레미야 23:5은 『가지』가 다윗을 통해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임을 밝히고 있다. 마태복음의 주제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의 왕』이다.’이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계보가 다윗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거기서 다시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까지 올라간다. 스카랴 3:8은 『가지』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며, 이는 하나님의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마가복음의 주제와 일치한다. 스카랴 6:12은 『그 이름이 가지인 사람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누가는 그리스도를 『인자』(the Son of man)로 묘사한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님을 확실히 증명하려고, 이사야는 그리스도를 『주의 가지』 곧 주이신 가지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요한복음의 주제와 일치한다.
이것은 신약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사복음서는 한 사람에 대한 48개 이상의 예언들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적어도 400년 전에 선포되었다. 아무리 고등비평가들이 성경의 저작 연대를 옮기는 등의 수법을 쓴다 할지라도 구약이 신약의 사건들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기록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다.
수학적인 확률 법칙들은 이 현상이 사실이라는 점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파사데나도시대학과 웨스트몬트대학의 수학과 천문학 분야에서 교수로 있는 피터 스토너(Peter Stoner)는 통계적 확률을 통해 나사렛 예수 외에 구약의 이러한 예언들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확률은 천문학적이며 확률적으로 불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스토너 박사는 그의 저서 에서 사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48개의 예언들을 다른 누군가가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은 1 뒤에 0이 157개 오는 10157분의 1밖에 안 된다고 썼다. (스토너 박사의 저서는 인터넷 상에서 읽을 수 있다. 그가 이러한 확률을 계산한 수학적 방법들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우주에 있는 전자들의 총수가 1 뒤에 0이 52개 오는 1052이다. 쉽게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48개의 예언 모두를 성취시키실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확률은 과학과 자연의 영역 자체를 뛰어넘는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48개의 예언들을 가지고 계산한 결과일 뿐이다. 성경에는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500개 이상의 예언들이 남아 있으며, 이 예언들은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성경 본문이 초자연적임을 믿지 않는 자는 지성인이 아님은 물론이요 정신이상자일 뿐이다. 어떤 분야의 어떤 신념을 가진 어떤 학자라도 성경이 여타 다른 “종교 서적”과 같다고 여긴다면 그는 자기기만적인 천치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나누어 공부하지 않는 모든 유럽 출신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곤경에 빠뜨리시기 위해 신약성경 내에 세 개의 걸림돌을 놓으셨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이 세 개의 “지뢰”는 마태복음과 사도행전과 히브리서이다. 근본주의자들은 히브리서에서 신학적 자살을 하며, 은사주의자들은 사도행전에서 스스로 목을 매고, 로마카톨릭은 마태복음에서 스스로 영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긴다.
이 세 책들은 “전환기적 책”이다. 마태복음에서 우리는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전환을 볼 수 있고, 사도행전에는 이스라엘 민족에서 교회로의 전환이 있으며,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에서 대환란으로의 전환을 다룬다.
대부분의 신학교수들과 주석가들이 바로 이 부분들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마태복음과 사도행전과 히브리서에서 바울서신의 교리들과 교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진술을 발견하면, 그것은 교회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교리적인 진술이 아닌 것이다.
마태복음에도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적인 진리들이 있다. 사도행전에도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적인 보화들이 있다. 히브리서에도 그리스도인들을 크게 세워 주고 용기를 북돋는 말씀들이 있다. 또한 바울서신의 교리가 이러한 책들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만약 문제가 되는 특정 진술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빌레몬서까지 기록한 것과 반대된다면, 교회 시대에 적용되는 교리적 진술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을 공부할 때 주의하라. 『성경』(holy scriptures)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스스로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