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여행은 이방인의 사연을 들으러 가는 탐험이다. 우리네 보통 사람의 세포마다 놀랍게도 정교한 연애 유전자가 숨어 있다. 그의 사연을 귀로 들으면 머리로 이해하고, 이해하면 가슴으로 공감하고, 공감하면 온몸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얼마나 창의성이 결여되어 있는지 알면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 예컨대,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중국 하면 습관적으로 북경을 입에 올리지만, 사실 북경의 천편일률적인 마천루와 국영 방송에서 나오는 선언들에서 얼마만큼의 진실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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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다. 침낭에 우리 아이들을 넣어서 여럿이 함께 별을 보게 하면 어떨까? 그 어떤 교육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효과가 있을 것이다. 외부의 순수한 고요함, 똑같은 침낭 속에 들어 있다는 동질감, 스멀스멀 피어나는 좀 엉뚱한 상상, 이유 없는 선량함, 그리고 경외심. 별을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서늘함과 적막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밖으로 나가 하늘에 있는 별을 보여 주는 대신, 방 안에서 별에 관한 그림책을 보여 주는 것이 오늘날의 교육이다. 사고는 피상적이며, 말은 많고, 그리고 끈기 없는 어린이들을 방 안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그러면서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한다. 책에 쓰여 있는 ‘별’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별은 같은 것일까? 그리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어린이가 보는 별은 같은 것일까? 분명히 840년 그날 밤에도 에너지 넘치는 위구르 소년들은 낙타 가죽 아래서 함께 별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없는 날것의 감성을 교류하며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 p.97~98
모두들 제국의 굴레에 갇혀 있었으며, 경쟁하는 시절에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실을 기록하는 것 빼고는 역사가가 따로 할 일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지나간 시절의 기록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때로는 사실마저 왜곡하기 때문이다.
--- p.301~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