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마음껏 카메라 너머의 팬을 바라봐.”
주위 어른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을 때, 아이코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데뷔곡을 흥얼거렸다.
“또래 남학생이 아니라 남자 선생님을 유혹하는 느낌으로, 그렇지.”
처음, 얘기, 나누었을 때, 지금도, 나, 기억해. 내 얘기를, 제일 먼저, 들려주는 사람은, 언젠가부터 너.
“좋았어, 지긋이 바라봐. 최대한 유혹해.”
아까부터 이 사람이 말하는 카메라 너머의 사람들이란 대체 누구일까. 그 사람들은 정말 우리를 응원해주는 사람일까.
--- p.79
“가끔 어느 쪽일까 생각할 때가 있잖아.”
아이코는 자신의 말에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은 걸까, 불행한 모습을 보고 싶은 걸까. 어느 쪽일까 하고.”
아오이는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아이코의 말을 듣고 있다.
남자친구가 있는 게 밝혀져서 머리를 빡빡 깎은 아이돌. 그 동영상의 조회 수는 몇백만 회였다. 악수회 피습 사건. 피해자인 아이돌의 회복을 바라는 게 아니라, 붕대 감은 셀카 사진을 규탄하는 데 힘을 쏟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나.
“그러게.”
아오이가 말했다.
“아이돌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은 아마 양쪽 다이지 않을까.”
응원하는 아이돌의 인기가 오르면 팬은 기뻐한다. 하지만 그 아이돌이 블로그에 올린 사진에 찍힌 슬리퍼가 아주 비싼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손바닥 뒤집듯이 비판한다. 응원은 하지만 자신들보다 좋은 생활을 하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다는 시선.
--- p.191~192
“아이돌에서 한 걸음 더 내딛으려는 순간, 불행을 지켜보고 싶다는 시선이 늘어나는 것 같아.”
인기를 얻거나 무언가로 화제가 되면, 모이는 시선들이 조금씩 늘어간다. 그리고 교차하는 그 시선들을 모아나가다 보면 짓무른 손바닥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그 손바닥은 얼핏 아이 돌에게 이쪽으로 와, 이쪽으로 와, 하고 꿈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언제까지나 ‘아이돌’인 채로 있을 수는 없는 아이돌을 향해 잘 가, 하고 손을 흔들고 있다.
“그렇지만 부도칸은.”
아이코는 눈을 감았다.
부도칸에서 검도를 하던 어린 다이치를 떠올렸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해주는 곳이야.”
그때, 아이코도, 엄마도, 다이치의 부모님도, 검도부 동료들도, 어른들도 모두 다이치가 이기기만을 바라고 기도하고 빌면서 부도칸 한복판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곳은, 그렇게 멋진 곳이야.”
--- p.193~194
“아이코, 대학 안 가?”
다이치는 아이코에게 받아 든 잔에 바로 입을 댔다.
“안 가는 것 같아.”
아이코는 다시 카펫에 앉았다.
“같다니, 남 얘기하는 것처럼 말하네.”
“그렇지만.”
텔레비전에서 쇼트커트를 한 아이돌이 또 웃었다.
“나는 한 번도 안 간다고 말한 적이 없어. 그런데 어느새 내가 대학에 안 가는 걸로 정해졌더라고.”
열두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라는 조건에 응모한 후보생 아홉 명은 당연하지만 전원이 아이코보다 연하였다.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고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한 줄로 나란히 선 아홉 명의 소녀들. 메이크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열여덟 개의 눈이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호소할 때, 아이코는 풀 메이크업과 프릴이 잔뜩 달린 의상으로 자신을 감추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븐틴. 열일곱 살. 지금까지 접해온 만화와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과 유행가 가사 속에서 몇 번이나 나온 특별한 말.
“다이치, 나 열여덟 살이 돼버렸어.”
--- p.243~244
“그런데 옳은 선택이란 게 이 세상에 있긴 할까?”
아이코, 거기 있지? 등을 기대고 있는 문 너머에서 루리카의 소리가 들렸다.
“옳은 선택, 있지, 그럼.”
아이코는 아오이에게만 들리도록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옳은 선택만 해왔잖아. 그래서 부도칸에도 서게 됐고.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
아이돌이 되는 것.
엄마가 집을 나간 것, 아빠와 사는 것, 가사 안무에서 멜로디 안무로 바꾼 것, 2기생이 들어온 것, 교카와 하나가 졸업을 결정한 것, 우에다 리카코가 후보생을 사퇴한 것, 대학에 진학 하지 않은 것, 그날 다이치를 안은 것. 지금까지 선택한 것이 작고 작은 마음속에 일제히 뿌려졌다. 엄마를 따라가는 것, 다이치와 멀어지는 것, 블로그나 인터뷰에서 본심을 이야기하는 것, 오늘 몸이 안 좋다고 거짓말하고 다이치 곁에 있는 것, 선택하지 않은 모든 것이 여기서 보이는 세계 어딘가에서 툭툭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오이의 말에 아이코의 생각이 차단되었다.
“옳은 선택이란 건 세상에 없어. 아마 옳았던 선택밖에 없을 거야.”
쿵, 쿵, 하고 등이 또 흔들렸다.
“뭔가를 선택하고, 선택하고, 계속 선택하고, 그걸 하나씩 옳았던 선택으로 만들어나가는 수밖에 없어.”
--- p.319~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