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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저항의 멜랑콜리

사탄탱고 + 저항의 멜랑콜리

[ 전2권, 양장 ] 알마 인코그니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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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13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1190g | 130*213*3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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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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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슬픈 기분으로 불길한 하늘과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간 지난여름의 잔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홀연 그는 환영처럼 아카시아 가지 위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시간이 움직임 없는 영원의 원 속에서 유희를 벌이고 혼돈의 와중에 귀신이 재주를 피우듯 기상천외한 망상을 진짜로 믿게 하려는 것 같았다…. --- p.14~15

“그들은 1년 반 전에 죽었는데. 1년 반 전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런 사실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지.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 돼! 이건 덫이야. 알겠어? 덫이라고!” 후터키는 듣고 있지 않았다. 벌써 외투의 단추를 잠그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걸 보게 될 거야.”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신의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후터키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슈미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는 말했다. “이리미아시는, 위대한 마법사라네. 마음만 먹으면 소똥으로 성을 지을 수도 있지.” --- p.35

“그자들은 여전히 더러운 의자에 주저앉아 저녁마다 감자 요리나 먹으면서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의아해하고 있을걸. 의심에 가득 차 서로를 감시하고 조용한 방에서 큰 소리로 트림이나 하고. 그리고? 기다리는 거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끝도 없이 기다리다가, 누군가 자기들을 속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겠지. 돼지를 잡는데 혹시 뭐 주워 먹을 거라도 떨어질까 싶어 바닥에 배를 댄 채 도사리고 앉아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말이야. 그자들은 옛날 성에서 시중을 들던 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주인은 벌써 머리에 총알을 박고 자살했는데, 저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시체 주위에서 우왕좌왕하는 거야….” --- p.71

그는 모든 것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하찮은 세부라도 놓쳐선 안 되었다.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고 간과하는 것은 몰락과 질서 사이에 놓인 흔들리는 다리 위에 아무런 대책 없이 서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담배 부스러기나 야생 거위가 날아간 방향이나 별 뜻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 같은 것들도 그 연결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관찰해야 했다. 그래야만 자신도 어느 날 갑자기 흔적 없이 사라져서 저 끊임없이 무너져가는 질서의 말 못할 포로가 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 p.88

끝나가는 시월의 밤은 고유한 리듬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말이나 상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질서에 따라 나무들을, 비와 진창길을, 노을과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을, 피로하게 움직이는 근육을, 정적을, 구부러진 길과 풍경을 두들겼다. 머리카락은 무리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몸과는 다른 리듬을 따랐고, 성장과 몰락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수없이 두들기고 되울리는 한밤의 소리들은 짐짓 절망을 가리는 한 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한 장면 뒤로 불현듯 또 다른 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눈에 보이는 경계를 넘어서면 현상들은 서로 관련이 없어졌다. 마치 영원히 닫히지 않는 문처럼, 틈이, 균열이 있었다. --- p.132

불행은 너무나 오랫동안 그들을 비켜 가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후터키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슈미트의 요지부동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리미아시가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맹목적인 희망 자체가 그 어떤 가능성들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직 이리미아시에게만 농장 사람들이 포기하여 내버린 일들을 다시 건져 올릴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 그걸 갖지 못하게 된 게 무슨 대수랴? --- p.195

아코디언의 비단결 같은 곡조를 타고 거미들이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다. 거미들은 술병과 유리잔, 찻잔과 재떨이에 느슨하게 거미줄을 드리웠고, 테이블 다리와 의자 다리를 가느다란 실로 은밀히 연결했다. 마치 눈에 띄지 않게 그물망을 쳐서 미세한 움직임과 소리라도 즉각 감지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처럼. 거미들은 잠자는 사람들의 얼굴과 다리 그리고 손에도 거미줄을 쳤고, 그런 뒤에 번개같이 은신처로 퇴각하여 거미줄이 미세하게라도 흔들릴 때를 기다리다가, 그러다 다시 거미줄을 칠 채비를 했다. --- p.228

잠을 자지 못한 근심 어린 눈들에 눈물이 배어 앞이 흐려졌고, 그의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의 얼굴에는 갑작스럽고 은밀하며 불안정하지만 억제할 수 없는 어떤 안도의 표정이 어렸다. 여기저기서 짧은 탄식들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재채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몇 시간 동안 내내 기다려온 것이 바로 “현재보다 합당한 여러분의 미래”라는, 마음을 해방시켜주는 말이었던 까닭이다. 실망스러운 기색이었던 이리미아시의 눈빛은 어느샌가 신뢰와 희망, 믿음과 열정 그리고 결연함을 담고서 점점 강철 같은 의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 p.253~254

그는 처량하리만치 누추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는 자기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도록 가로막아온 것이 무엇인지를 돌연 깨달았지만, 그 순간의 명료함도 사라지자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지금껏 머물러 살 용기가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떠날 용기가 없었다. 짐을 싸면서, 그는 모든 가능성을 도둑맞고 하나의 덫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덫에 걸릴 것만 같은 예감에 휩싸였다. 그는 기계실과 농장에 갇힌 죄수였지만, 이제는 미지의 위험에 자신을 맡기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문을 여는 법도 모르고 창문으로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떤 날을 두려워했다면, 이제는 영원한 미지의 수인(囚人)으로서 지금껏 가졌던 것마저 스스로 잃도록 만들었다. --- p.271

“그물 조직이야, 처진 귀!” 페트리너가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이제 알겠나?” 둘은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리미아시는 몸을 약간 숙이듯이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이리미아시의 전국적인 네트워크 말일세. 이제 그 머리로도 좀 알겠어? 어디서든 작은 움직임이 있으면 즉시….” 페트리너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처음엔 희미한 미소가 얼굴에 떠오르더니, 이윽고 단추 같은 눈이 반짝였고, 흥분한 나머지 나중엔 귀까지 붉어졌다. 그의 온몸이 어떤 전율로 떨리고 있었다.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즉시… 어디서나… 뭔지 알 거 같군.” 그가 속삭였다. “정말 환상적인 생각이야.” --- p.307

주위에 바람이 일자, 눈이 멀어버릴 것같이 하얀 시신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참나무 꼭대기쯤에 이르러 옆으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주춤주춤 땅으로 내려와 다시 빈터에 내려앉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몸 없는 목소리가 성난 원망의 소리로 터져 나왔다. 그것은 죄 없는 불운에 체념하는, 불만에 가득한 합창이었다. 페트리너가 헐떡거렸다. (...) “뭐 좀 물어봐도 되겠나?” “어서 말해봐!” “자네 생각엔….” “응?” “지옥이 있을까?” 이리미아시가 침을 삼켰다. “누가 알겠나. 어쩌면 있겠지.” --- p.317

“여긴 뭐가 이래? 통행금지인가?” “아니, 가을은 원래 이렇지.” 이리미아시가 슬픈 어조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난로를 껴안고 앉아 봄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아. 날이 저물 때까지 창가에서 어정거리다가 그다음엔 먹고 마시고 솜털 이불 아래서 껴안고 잠이 들지. 이때쯤 사람들은 인생이 잘못되어간다고 느껴.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을 때는 아이들이나 고양이를 때리면서 좀 더 견뎌내지. 그렇게들 사는 거야, 처진 귀 양반!” --- p.326

모두 무엇에 휩쓸려 그렇게 이성을 잃고 먹이를 다투는 짐승처럼 서로를 물어뜯었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영원히 희망이 없을 것만 같던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드디어 황홀한 자유의 공기를 맡을 수 있게 되었는데, 어째서 창살에 갇힌 죄수들같이 날뛰며 새로운 현실을 부정하고 절망했는지, 어째서 미래의 보금자리에서마저도 자신들이 등진 위안 없는 몰락과 더러움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리라는 약속을 망각해버린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들처럼 이리미아시를 에워싸고 서 있었다. 해방의 감각보다도 더 뿌리 깊은 것은, 어쩌면 그들의 수치심일 터였다. --- p.345~346

그는 저택의 문가에 이리미아시가 서 있는 걸 본 순간부터 이미 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깨닫고 놀란 심정이 되었다.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오히려 희망은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이미 저택에서부터 그는 이리미아시의 말 뒤에 숨겨진 괴로움을 감지했다. (...)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 이리미아시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어떤 충동이, 즉 이전의 불꽃이 다 타버려 사라진 것이다. 그가 무슨 시늉을 하건 그것은 이제까지 해오던 무언가의 관성에 불과한 것이었다. --- p.355

“그래, 기막힌 하루였네, 그렇지?” 다른 서기가 말했다. “그래, 정말 그랬어. 빌어먹을!”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알아주기만 해도 좋겠는데 말이야.” 서기 하나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알아주지 않지, 조금도.” “그래,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 먼저 말을 꺼냈던 서기가 고개를 저으면서 동조했다. 그들은 다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각자 집으로 돌아간 그들은 현관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고 있었다. “힘든 하루였나요, 여보?” 그들은 따뜻한 실내로 들어서며 조금 진저리를 쳤고, 피로감을 느끼면서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별건 없었소. 맨날 그렇지, 뭐.” --- p.376

그는 열에 들뜬 것처럼 철자와 철자를 이어나갔다. 그는 모든 것이 글에 쓴 그대로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는 자기가 쓰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임을 깊이 확신했다. 수년 동안 고통스럽고 끈질기게 이어온 작업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그는 이제 유일무이한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 능력으로 끊임없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세계를 묘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도까지는 혼란스러운 사건들 배후의 메커니즘에도 간섭할 수가 있었다.
--- p.386~387
지난 몇 달 동안 날로 섬뜩섬뜩 놀래는 사건들 사이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는 일은 불가능했다. 뉴스, 험담, 뜬소문, 개인적인 경험을 뒤섞고 엇갈려 보면 일관성이라곤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이를테면 십일월 초 너무 일찍 불시에 찾아든 된서리, 의문투성이의 가족 단위 참사들, 유달리 잇따르는 철도 사고들, 비행 청소년 떼거리들이 먼 수도에서 공공 기념물을 훼손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소문들 사이에 어떤 이성적인 연결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런 뉴스 항목은 어느 하나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입에 올리는 말처럼 단순히 모두 ‘다가오는 대재앙’의 징조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 p.14

‘무언의 승인인가? 아니면 다시 내가 꿈이라도 꾸는 건가?’ 플라우프 부인은 앞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내 자신의 상상이 빚어낸 일일 가능성은 제쳤다. 그녀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두고 보건대, 저 남자가 노파를 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노파의 끊임없는 수다에 물릴 대로 물렸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한마디 말도 없이 그녀의 면상을 쳤다, 아니다, 가슴팍을 퍽 하고 쳤겠다, 그렇다, 다른 식일 리가 없다, 그런 생각에 그녀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고, 섬뜩한 공포로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불거져 나왔다. 노파는 저기 의식을 잃고 꼬꾸라져 있고, 털모자를 쓴 남자는 아무 움직임이 없다. 땀이 이마에서 다시 솟구쳤다. 대체 어쩌다가 내가 이런 수치스럽고 쓰레기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걸까?
--- p.37

고래를 보는 것, 한편으로 보고 있는 전체를 전반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꼬리지느러미, 마르고 갈라진 철회색 껍질과, 중간쯤 아래 기이하게 부풀어 오른 몸체, 하나로도 족히 수 미터에 이르는 등지느러미를 가늠해보는 일은 대단히 가망 없는 과업 같았다. 그냥 너무 크고 너무 길었다. 눈에 전체가 한꺼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고, 죽은 눈은 제대로 쳐다볼 기회도 없었다. 벌루시커는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는 줄에 간신히 몸을 끼워 넣고서, 마침내 기발하게 받쳐서 활짝 벌려놓은 턱까지 이르렀는데, 그는 어두운 목 안을 들여다보거나, 시선을 멀리 떼어 바깥 몸의 양쪽 깊은 구멍에 쑤욱 잠긴 두 개의 작은 눈을 찾아보거나, 눈 위로 낮은 쪽 이마에 있는 두 개의 분수공을 알아보거나, 이들 부위를 따로따로 떼어 보고 있어서, 다 같이, 어마어마한 머리를 그냥 통합된 전체로 보는 일은 불가능했다.
--- p.150~151

그는 소위 음악예술원 학장으로 수십 년을 지내는 동안 시달렸던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끝도 없는 어리석은 공격들, 텅텅 빈 멍한 눈길, 활짝 피는 지능이라곤 전적으로 결여된 젊은이들, 썩은 영혼의 아둔한 냄새, 압박으로 다가오는 사소한 일, 안이한 만족, 강한 자부심과 무겁게 짓누르는 낮은 기대감, 아무리 가볍다 해도 이런 것들로 자신은 거의 붕괴될 참이었다. 그는 피아노를 도끼로 박살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여지없이 눈을 반짝거리는, 자신이 떠맡았던 옛날 말썽꾸러기들을 잊고 싶었다. 책임자의 의무로 여러 구색의 술 취한 개인 지도교사들과 눈이 촉촉한 음악 애호가들을 모아들여야만 했던 ‘심포니 대관현악단’을 잊고 싶었다. 다달이, 이런 가증스럽고, 마을 결혼식 자리를 빛내는 데도 부족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능력한 악단의 얄팍한 재주에 의심 하나 없이 아주 열렬히 보내는 청중들의 천둥 같은 환호도, 그들에게 음악이라는 습관을 들이려던 끝없는 노력과 신성한 악보 한 가지 이상은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줄곧 되뇌던 헛된 탄원도 잊고 싶었다.
--- p.184

그는 홀로, 이제 오로지 두 개의 깜빡거리는 전구의 불빛을 받으며 누워 있는 고래를 바라보았다. 고래는 우스꽝스러운 꾸지람까지 막 하려고 하는데(‘네가 얼마만큼 문제를 일으켰나 봐봐, 너는 누구에게도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는데…’) 짐차 저 깊은 안 어딘가에서 예상치 못하게 불명확하게 잘게 끊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이런 소리를 내고 있나, 금방 그 목소리를 알 듯도 했다. 그리고 금세 알게 되다시피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뒤편에 있던 문에, 이전에 추리한 대로, 거처로 마련된 구역으로 이어지는 데에 다다라, 양철 벽에 귀를 대고, 몇 마디 말을 주워들었는데(‘… 나는 모습을 선보이라고 했지, 여기서 어리석은 이야기들을 지어내라고는 안 했어. 그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거야. 돌려세워…!’) 서커스 단장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 p.260

‘나는 바보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왕에게 당신 나라는 쓰레기라고, 좋은 말, 제대로 된 말을 하고 싶은데.’ ‘멍청한 소리 좀 마.’ 큰 애가 동생 뒤에서 흉측하게 얼굴을 찌푸렸고 벌루시커는 역시 큰 아이의 동조도 얻으려고 질문을 했다. ‘어째서? 그러면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저요? 저는 좋은 경찰이 되고 싶어요.’ 소년은 자랑스레 대답했지만 낯선 사람에게 자기 계획의 전모를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감옥에 넣고요.’ 그가 팔짱을 끼고 문설주에 어깨를 기댔다. ‘모든 술꾼하고 모든 바보를 다.’ ‘술꾼들도, 맞아.’ 작은 아이가 동의하고, ‘술꾼들에게 죽음을!’ 고함을 지르고서, 팔짝팔짝 뛰고 방 안 여기저기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 p.293

하지만 이제 그는 그를 다르게 보았다. 머리에 챙 달린 모자를 쓰고, 복숭아뼈까지 내려오는 우체부 외투를 걸친 그는 점심께 집으로 들어선다, 가볍게 처음 노크를 하고, 계세요, 말을 하고, 일이 끝나면, 찬합 도시락을 어깨에 철커덕거리며 걸치고 자신의 어설픈 부츠가 응접실의 고요한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도록 발끝으로 살금살금 복도를 따라 걸어가, 더욱 조용히 움직여 입구에 다다른다. 그렇게 그는 적어도 다음번 방문까지 집주인의 집착으로 무거웠던 집의 분위기를 밝혀주며, 신비로운 박애로, 다정한 관심과 상당히 복잡한 ‘단순성’으로 그를 치유했다. 집주인의 모든 요구를 시중드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닌 줄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도록 감동적인 신중함으로 둘러싸고 그런 심오한 항구성으로, 정말 말뜻 그대로 진력하며 지성으로 돌봤다.
--- p.330

왜냐하면 아무리 우리가 찾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혐오와 절망에 맞아떨어지는 대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똑같은 무한의 격노로 우리는 우리의 도상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우리는 상점을 부수고 들어가,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은 창밖으로 집어던지고, 아스팔트 위에서 내리밟았다. 그 물건을 움직일 수 없다면 쇠막대나 부서진 셔터로 쾅쾅 박살을 냈다. 그런 뒤 드라이기, 비누, 빵 덩이, 상의, 정형용 교정화, 음식 통조림, 책, 가방, 어린이 장난감, 우리가 밟고 지나간 알아볼 수 없는 파괴의 잔해들을 지나, 길가에 주차된 차들을 뒤집었고, 적막한 표지판과 광고판을 잡아떼고, 누군가 안에 불을 밝혀놓고 가버리는 바람에 전화교환실을 차지하고 파괴했다. 우리가 그 건물 현관으로 몰려든 인파와 한참 복대기다 벗어날 때는 이미, 거기서 역시 발밑에 밟혔던 두 명의 전화교환수는, 의식을 잃고, 맥없이, 무릎에 손을 축 늘어뜨린 채 낡은 넝마처럼 벽에서 미끄러져 누워 있었다.
--- p.385

‘벌루시커는요! 의사 양반, 저기, 벌루시커 본 적 있어요?’ 그 이름의 언급에 속닥거리는 군중의 소리가 삽시간에 멈췄고, 그 여자는 전전긍긍 군인들의 눈치를 살피고, 군인들은 이제껏 하려던 대화가 이 말이라도 되는 듯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한편 의사는 에스테르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고개만 가로저었다.(그런 뒤 경고의 형태로 ‘하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에 좋은 때가 아닙니다…’ 하고 속삭였다) 군인 중 한 명이 종이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죽 따라가다가, 어느 한 지점을 쿡 찌르고선 이를 그의 동료에게 보여줬고, 그 동료는 그런 뒤 눈을 에스테르에게 고정했다가 지끈지끈 소리쳤다. ‘벌루시커 야노시?’ ‘예.’ 에스테르는 그들 쪽으로 돌아섰다. ‘제가 말하던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 말에 그들은 ‘문제의 그 인물’에 대해 그가 아는 모든 바를 털어놓으라고 요구했다.
--- p.423~424

‘문제의 그 남자는,’ 에스테르 부인이 일단 왁자한 웃음이 잦아들자 말했다. ‘심신상실 상태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 말은 정신이 모자라단 말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중령은 어깨를 으쓱했고, ‘정신병원에 그를 가둬두죠. 적어도 내가 가둘 수 있는 사람은 있군요’ 덧붙이고는 콧수염 아래 굼틀굼틀 억누른 미소로, 아니 웃고는 못 배길 또 다른 농담을 대비하라는 주의를 환기시키듯 뜸을 들였다. ‘이 미친 마을 전체는 가두지 못한다고 해도….’
--- p.465

전 그저 불길만 바라보며 생각했죠, 나인가? 내가 아닌가? 그리고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확신이 설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이런 짓을 저지른 게 나인지 아닌지 몰라서, 그러니까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던 거죠, 그래서 결국 자신에게, 이왕지사 이런 거, 지금은 이 자리에서 토끼는 게 더 낫다고 타일렀죠… 그래서 게르만 지구를, 도통 모르게 헷갈리는 엄청난 작은 골목들을 가로질러 가요, 그래야 방금 내가 떠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공동묘지 문 옆에서 숨 돌리려고 멈춰서 이렇게(그는 그들에게 보여줬다) 쇠창살에 기대 서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제 바로 뒤에서 말을 거는 거예요. 씨발, 말버릇이 나빠 죄송합니다, 그놈들이 나도 덮치러 왔구나, 저는 보통 겁먹은 토끼처럼 내빼지는 않아요, 비서관님도 저를 봐서 알아보시겠지만, 누가 그런 식으로 말을 거니까 오줌 지리게 식겁을 했죠. 물론, 이제 쨀 시간인 줄 알던 그런 싸움꾼 중 한 명이었어요. 그가 그러데요, 우리 외투를 서로 바꾸자…
--- p.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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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시몽, 토마스 베른하르트, 주제 사라마구, W. G. 제발트, 로베르토 볼라뇨,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떠올려보아도, 크러스너호르커이가 가장 이상한 작가일 것이다.
- 뉴요커
카프카를 잇는 타고난 이야기꾼.
- 워싱턴포스트
이 책이 선보이는 통찰력의 보편성은 고골의 『죽은 혼』에 필적하며, 현대 저작의 자잘한 관심사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 W. G 제발트
고골과 멜빌에 비견할 만한 헝가리 현대문학 거장의 냉혹하고 환상적인 책. 가장 오싹한 상태의 황량함에 대한 해부서이자, 그 황량함에 대한 저항의 지침서.
- 수전 손택
풍자적이고 예언적인 비전, 서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암울한 역사에 대한 통찰.
-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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