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르샤에 매료되는가?
“이 축구는 재미있습니다. 선수들도 즐겁게 플레이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르샤의 축구는 이론적이다. 갑갑한 면도 있다. 그러나 그 갑갑함은 금방 사라지며, 이윽고 확고한 프레임 속에서 플레이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흔히 바르샤의 축구를 테크닉 축구라고 하지만, 사실은 포지셔닝을 중시하는 전술적인 축구다. 포지셔닝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테크닉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테크닉이 뛰어나기 때문에 바르샤의 축구가 가능한 것이라기보다는 바르샤의 축구라는 프레임 안에 있기에 뛰어나 보이는, 혹은 실제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비달은 바르샤에 온 뒤에 테크닉이 향상된 것처럼 보이며, 메시조차도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뛸 때와는 급이 다른 선수로 생각될 정도다.
축구가 즐거우면 계속할 수 있다. 보는 것도 플레이하는 것도 즐거운 축구. 요한 크루이프가 지향한 축구다. 크루이프가 제시한 축구의 즐거움에 매료된 바르셀로나의 사람들이 20년 동안 계속 쌓아 올린 결실이 지금의 바르샤다.
좀 더 축구를 좋아하게 되어 더욱 축구의 즐거움을 탐닉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선수도 코치도 팬도, 사장도 스태프도 언론도 바르셀로나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다. 중요한 것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역대 최고’의 강력한 후보 바르셀로나
_ 한 준 희 (KBS 축구해설위원 아주대학교 겸임교수)
여름밤 지구촌을 들뜨게 했던 유로 2012가 스페인의 대기록 달성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우승으로써 스페인은 FIFA 월드컵을 포함한 3개의 메이저 국가대항전을 연속 제패한 유일무이한 국가대표 팀이 됐다. 이변과 변수로 가득한 요즈음의 축구 세계에서 이 기록은 쉽사리 접근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스페인 축구 대성공의 바탕에는 다름 아닌 FC 바르셀로나의 축구가 있다.
바르셀로나는 오늘날 세계 축구계에 가장 많은 연구거리를 제공하는 축구팀인 동시에 대부분 지도자들의 이상향과도 같다. 전술 관련 칼럼으로 유명한 지구촌 축구 칼럼니스트들의 최고의 단골 주제가 바로 바르셀로나이며, 우리 지도자들의 취임 포부에서도 “바르셀로나 같은 축구를 선보이고 싶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근년에 이르러 유럽 빅 클럽들이 하나같이 안고 있는 주요 숙제 또한 “바르셀로나를 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고, 경험과 인내의 결과로서 바르셀로나를 무너뜨린 클럽들조차 바르셀로나 축구의 우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이 종종 ‘극단적 수비 축구’ 논란에 휩싸이는 것도 자체로 바르셀로나가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절묘하고도 일사불란한 패스(pass), 위치 선정(positioning), 압박(press)을 통해 놀라운 점유율(possession)을 구가해온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는 아스널,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상대들을 3골, 4골, 5골 차로 궤멸시킨 바 있고, 이러한 일련의 퍼포먼스(performances)는 다른 팀들이 여간해선 재연하기 어려운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한결같은 바르셀로나 특유의 스타일이 유럽의 축구판을 다소 지루하게 만든다는 푸념 섞인 비판도 있지만, ‘모두의 연구 대상’ 바르셀로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축구판은 훨씬 더 지루했을 공산이 크다.
실상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세계 축구사를 통틀어 ‘역대 최고의 팀’을 논할 적에 그 강력한 후보로서 평가받아 마땅하다. 클럽 축구사에서 현재의 바르셀로나와 경합할 다른 강력 후보들로는 1950년대 ‘원조 갈락티코스’ 레알 마드리드, 펠레가 뛰던 시절의 산토스, 바르셀로나의 직계 조상격인 ‘토털 풋볼(Total Football)’ 아약스, 아리고 사키의 ‘오렌지 삼총사’ AC밀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물론 프란츠 베켄바워의 바이에른 뮌헨이나 무적 헝가리 군단의 산실 혼베드, 최절정기의 리버풀을 비롯해 인디펜디엔테, 리버 플레이트, 플라멩고 같은 남미 명가들의 전성기 또한 후보로 고려될 수는 있겠다). 시대가 다른 팀들 간의 가상 비교는 자체로 명확한 결론에 이르기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지만, 바르셀로나가 이미 ‘당대’가 아닌 ‘역대’ 레벨이며 미래의 축구사가들의 저술 속에서 상당량의 페이지를 할애받을 거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물론 가장 최근의 2011-2012 시즌은 바르셀로나의 높은 기준치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리그 타이틀을 마침내 레알 마드리드에 넘겨줬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첼시의 수비벽에 가로막히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2000년대 축구사의 비길 데 없는 금자탑을 쌓아올린 펩 과르디올라도 국왕컵 트로피를 마지막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택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가 지금의 팀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티토 빌라노바에게 지휘봉을 넘긴 것은 사실상 자신들의 스타일에 근본적 수정을 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하겠다. 이 책에 기술된 것처럼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의 스타일이면 “10경기 중 8경기는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 클럽이다.
니시베 겐지는 바르셀로나의 이러한 믿음의 근거와 형성 과정은 물론, 이 믿음이 그라운드에서 실행되는 방식을 매우 정교한 필치로써 기술하고 있다. 〈더 팀, FC 바르셀로나〉에 수록된 내용은 바르셀로나 축구에 대한 오랜 연구와 관찰의 산물일 뿐 아니라, 유럽 현지 평론가들의 연구를 능가할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의 작업이다. 이 책은 바르셀로나 전술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관한 고찰과 상세한 이론적 설명에 더하여, 다수의 경기 상황들을 그래픽을 곁들여 분석함으로써 이론과 실제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수많은 TV 시청자들로부터 현장의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바르셀로나 축구에 대한 폭넓은 관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본격 설명서가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이 번역서가 지니는 값어치는 한마디로 지대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단지 바르셀로나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넘어, 그라운드 위에서 좋은 축구를 구사하기 위한 일반적 요령을 구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리라 확신한다.
--- 추천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