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이플라워 서약, 메사추세츠의 플리머스
이처럼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달픈 유랑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후세의 사가들에 의해 ‘순례자 조상’이라고 불린 이들은 허다한 난관을 딛고 마침내 신대륙 땅에 자신들이 소망하는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세웠다. 이들이 건설한 플리머스 식민지는 제임스타운이나 뒤에 세워지는 매사추세츠 식민지에 비해 규모는 작았으나, 그 신념이 투철하고 남달랐기에 일찍부터 미국 정신의 요람으로 선양되어왔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경제적 부의 추구와 무관한 순수한 종교적 이념 공동체였다. 메이플라워호 서약, 플리머스 록Plymouth Rock, 추수감사절 등, 이들 순례자와 얽힌 일화가 오늘날 미국의 국민적 신화national myth로 널리 회자되게 된 것도 이 이념의 순수성과 무관하지 않다. (……) 굳건한 청교도 정신과 교육, 자유, 법률, 도덕의 중요성에 대한 이들의 확고한 믿음은 소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미국 사회를 계도하는 삶의 원리가 되고 있다.
8. 대륙 국가의 꿈, 루이스와 클라크의 서부 답사
사람들을 서부로 유혹한 것은 모피와 황금과 무상의 땅만은 아니리라. 거기에는 또한 방랑과 고독, 억압 없는 자유에 대한 동경, 삶의 신비에 대한 매혹이 언제나 함께 어른거린다. 사람들은 이 환영을 좇아 일망무제의 초원에 길을 내고 서부로 달려갔다. 오웬 위스터나 루이 라무르 소설 속의 카우보이의 삶이나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고독한 총잡이의 삶을 사로잡았던 것도 이 환영이고, 위험을 무릅쓴 모르몬교도들의 서부 장정도 필경 서부의 마력이 빚어낸 것이다.
서부 이주로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에 이르는 66번 도로Route66이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인 1926년에 서부로 가는 이주민들을 위해 처음 만들어진 대륙 횡단 도로이다.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에서 ‘어머니의 도로Mother Road'라고 불렀던 바로 그 길이다. 내가 달리고 있는 주간고속도로 55번의 일리노이 구간의 상당 부분이 66번 도로와 겹친다. 블루밍턴, 링컨, 스프링필드를 지나 세인트루이스를 향해 차를 몰면서 나는 마차를 타고 꿈을 좇아 서부로 가는 긴 행렬의 일원인 듯한 착각에 빠졌다.
9. 미국 풍경화의 요람, 허드슨 강변의 시다 그로우브와 올라나
허드슨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우회전하여 23번으로 바꿔 타니 곧바로 허드슨 강이다. 일찍이 이곳을 탐험했던 헨리 허드슨의 이름을 딴 허드슨 강은 강폭이 꽤 넓고 수량도 넉넉하여 흐름이 유장했다. 눈 아래 아스라이 펼쳐져 있는 허드슨 강을 보면서 립 반 윙클 다리를 가로질렀다. 다리를 건너니 립 반 윙클의 고장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팻말이 서 있다. 워싱턴 어빙의 동명소설의 무대가 바로 캣츠킬 산과 그 산자락의 작은 마을 테리타운임이 떠올랐다. 엄처시하의 립 반 윙클이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캣츠킬 산에 올랐다가 구주희 놀이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이 건네준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2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이야기이다. 어빙의 시대에 이미 이런 전설적인 이야기의 무대가 될 정도로 캣츠킬 산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코울을 비롯한 허드슨강파 화가들의 상당수가 이 산을 풍경화의 소재로 삼은 것도 이런 설화적 상상력을 발동시킬 만큼 산의 정기가 그윽했기 때문일 것이다.
10. 『모비딕』의 자취를 찾아서, 뉴베드퍼드에서 낸터키트까지
고래 기름은 석유가 발견되기 전에는 등불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원료였다. 고래 기름은 또한 비누와 화장품의 원료로, 또 각종 윤활유로 쓰였다. 고래뼈는 여성들 치마의 버팀살대로 애용되기도 했다. 기실 『모비딕』을 읽는데 망각해서 안 될 점의 하나는 포경업이 한때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의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멜빌이 고래잡이배를 타고 남태평양을 순회한 1840년대 후반부터 『모비딕』을 발표한 1851년까지 미국의 포경업은 황금기였다. 1830년대에 이미 포경 강국으로 부상했던 미국이 이 시기에 보유한 고래잡이배는 무려 700척에 이르렀다. ---제1권 멋진 신세계의 꿈
1. 생태적 사유의 발상지, 월든 호수
철도로 표상되는 기술 문명의 도래에 대한 「월든」의 반응은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목가적 삶을 흔들어놓은 기계에 대한 불안감과 그것이 표상하는 기술문명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의 교차로 특징지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자연 속의 단순 소박하고 조화로운 삶에 대한 동경만도 아니고 기술문명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만도 아닌 복합적인 감정이다. 일찍이 문학사가 리오 맑스는 숲 속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기차의 기적 소리에 대한 소로우, 호손, 에머슨 등의 반응을 자세히 검토하고, 정원과 기계의 갈등이 빚어낸 이런 모순의 감정이 산업화된 미국 사회의 심층적 체험을 이룬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이는 환경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오늘에 와서 더욱 절실한 진단으로 들린다.
2. 남북전쟁의 도화선, 섬터요새
섬터로 가는 뱃길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붐볐다. 정년을 넘긴 듯한 노부부,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눈에 띈다. 이따금 긴 부리의 펠리컨 새들이 내려앉으며 흰 포말을 그리는 것을 제외하면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여기저기 떠 있는 부표에 갈매기들이 한가로이 앉아 지나는 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유람선 위에서 찰스턴 항을 뒤돌아보니 이곳이 뛰어난 입지 조건을 갖춘 양항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우측으로는 제임스 섬이, 좌측으로는 포의 유명한 「황금충The Golden-Bug」의 무대이기도 한 설리반 섬이 마치 벌려진 뱀의 입처럼 항구를 옹위하여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막아주고 있다. 이런 천혜의 지리적 조건으로 오늘날 찰스턴은 대서양 연안에서 뉴욕 다음으로 그리고 미국 전체로는 네 번째로 하역량이 많은 항구이다. 섬터 요새는 이처럼 중요한 남부의 관문인 찰스턴 항의 방위를 위하여 만 입구의 한가운데에 축조된 인공의 섬이다.
4. 인디언 부족 침탈의 현장, 운디드니에서 러시모어까지
러시모어 산을 포함한 이곳 블랙힐스 지역은 수우 부족에게 오랫동안 성지로 숭앙된 곳이다. 중부 대평원에 우뚝 솟은 이 산간지대는 장엄한 산세를 자랑하고 풍광 또한 빼어난 곳이다. 인디언들은 이곳을 세계의 중심이자 위대한 정령의 거소로 간주하고 이곳에서 신의 가호를 빌고 기도를 드리는 의식을 거행해왔었다. 인디언 추장들은 부족에게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여기를 찾아와 기도를 드리면서 난경을 헤쳐 나갈 비전을 얻곤 했다. 러시모어 대통령 조각상은 이처럼 인디언들이 성지로 여기는 곳의 심장부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보글럼은 이를 몰랐던 것인가? 물론 아니다. 그가 이곳을 대통령 두상 건립 장소로 선택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보글럼의 의도는 제퍼슨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6. 제국주의의 희생양, 하와이 왕국
이올라니 궁의 지하층에 자리한 부엌과 집사의 집무실까지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니 그 사이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화사하다. 왕궁 뜰의 거대한 반얀 나무가 눈길을 잡아끈다. 코끼리의 피부처럼 잿빛인 커다란 몸체와 그로부터 뻗어 나온 가지들의 마디마디에서 아래로 늘어진 또 다른 가지들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면서 스스로 또 다른 몸체를 유령처럼 만들고 있다. 가지가 뿌리가 되어 무한히 증식해가기 때문에 원산지인 인도에서 반얀 나무는 영생의 상징이다. 반얀 나무를 왕궁의 뜰에 심었던 사람들 역시 그런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2권 팍스 아메리카나로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