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수학공부 좀 알아보려고 찾아왔다는 저의 말에 실장님은 아이는 몇 학년인지, 고등학교 진학은 어디를 생각하는지 물었고, 아이가 외고 진학을 희망한다면서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찾아오면 어쩌느냐고 저를 야단치기도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중학교 1학년인데도 벌써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면서요. 수학에 대해서는 나름 생각도 있었고 이제껏 두 아이들에게 학원 교육을 시키지 않은 교육관이 틀리지 않았다고 자부하고 있었건만, 무책임한 아빠인 것처럼 책망 아닌 책망을 받고 나니 지금까지 아이들 교육을 잘못 시켰던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덜컥 들었습니다. 함께 있던 다른 엄마들에게 한심한 아빠처럼 보이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했지요.
그래도 약간의 의구심이 든 저는 조심스럽게 실장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지금 아이들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나요?”
“이번 주부터 인수분해를 시작했어요.”
저는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아니 학기 시작한 지가 겨우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중학교 1학년들이 벌써 인수분해를 공부한다고? 의아한 생각이 든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1주일 만에 집합과 수와 식을 다 끝내신 건가요?”
질문이 자세해지자 실장님은 잠깐만 기다리라며 담당 선생님을 불러왔습니다. 담당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저는 잠깐이나마 빠져 있던 걱정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너무나 자신 있게 이런 대답을 내놓았기 때문이지요.
“아, 집합 같은 것은 시험에 나오지 않아요.”---머리말_ ‘시험에 나오는 것만 알면 수학을 잘할 수 있다고요?’ 중에서
아들!
수학을 공부하면서 수학을 배워야 하는 목적이 무엇이고, 수학공부를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떤 방향으로 배워나가야 할지 생각해본 적 있어? 어떻게 계산하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배운 것 같은데, 왜 수학을 배우고 수학을 어떠한 방향으로 공부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을 거야.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수학은 왜 배워야 하고 내가 배운 지식을 어디에 어떻게 쓸 수 있을지, 그 이유도 모르면서 단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남들이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기계처럼 문제 푸는 방법만을 배운다고 생각해봐. 아빠는 이것보다 더 불쌍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 그저 끌려가는 것일 뿐이잖아.
아들!
믿기 힘들겠지만, 수학에도 목적이 있고 방향이 있어. 심지어 각각의 단원 마다에도 배워야 하는 목적과 이유가 있고, 지향하는 목표와 나아가야 할 방향, 다른 단원과 연계되는 원리가 있다는 말이야. 그래서 그 목적과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수학공부라는 것이 단지 이것저것 주어진 문제를 푸는 계산이거나 여기저기 둥둥 떠다니는 복잡하고 개별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마치 한편의 이야기책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몰라. 아들! 누군가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했듯이, 아빠는 목적과 방향이 분명한 수학공부를 ‘목적이 이끄는 공부’라고 말하고 싶다.---pp.19~21 ‘‘어떻게’보다는 ‘왜’가 먼저!’ 중에서
우리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그것이 무엇이든 알게 모르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어. 바로 그 일에 관계된 요소들을 모으는 일이야. 예를 들어 축구를 하려면 공과 축구화를 챙기고 김치를 담그려면 김장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는 것처럼, 수학을 하기 위해서는 수학에 필요한 재료를 먼저 챙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단다. 다시 말해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중 수학공부의 대상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는 거야. 이것이 수학을 할 때 집합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이유란다.
아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행위들이 있단다. 색과 형태를 감상하는 미술, 귀로 듣는 음악, 글로 이해하는 소설과 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지. 그 중에는 셀 수 있는 것이 있고 셀 수 없는 것이 있어. 이 모든 행위를 가지고 수학을 할 수는 없어. 수학은 글자 그대로 수를 가지고 수로 표현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과정이야. 어느 누구에게 물어도 옳고 그름이 분명한 정말 객관적인 것들만 그 대상이 되어야 하지.---pp.61~62 ‘집합: 수학에 필요한 요소를 구별하고 모으는 일’ 중에서
수학에서 정의는 약속이야. 별다른 이유가 없이 그냥 그렇게 하자고 정한 약속이지. 정의에 있어서 한 개 이름에는 오직 한 개의 정의밖에 없어.
반면에 정리의 경우, 한 개의 이름에 여러 개의 정리가 있을 수 있지. 정의는 그렇게 하자고 하는 약속이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이 의미가 없지만, 정리는 ‘왜’라는 질문이 가능하고,
반드시 왜 그런지를 논리적으로 보여주어야 해. 이것을 수학에서 증명이라고 한단다. 또한 정의는 약속이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어. 그래서 정의나 다른 정리, 조건을 이용하여 정리를 만들고 증명할 수는 있지만, 거꾸로 정리를 가지고 정의를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이란다. 따라서 정의는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머릿속에 기억해둬야 하는 거야.---p.91‘정의와 정리: 정의는 약속, 정리는 증명!’ 중에서
이렇게 과일이나 실과 같은 재료만 정해주면, 그 다음에 방직기계를 통하여 나오는 주스와 옷감의 종류는 자연스럽게 그 재료에 대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이것을 함수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바꾸면 이렇게 되는 거야.
① 바나나, 딸기, 사과, 오렌지 : X(정의역 : 임의로 정해주는 값)
② 믹서, 방직기계 : f(x)(함수)
③ 과일주스, 옷감 : Y(치역 : X가 정해지면 따라서 나오는 값)
이렇게 보니 함수의 원리라는 게 정말 별거 아니지?
믹서에 넣는 과일이나 옷감을 만드는 실과 같은 재료로는 한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을 선택할 수 있지. 바나나와 딸기를 넣거나 다른 과일을 섞어서 넣을 수도 있어. 들어가는 과일이 한 가지이든 두 가지이든 믹서를 거쳐서 나오는 과일 주스는 그 맛이 달라질 뿐이지 결국 하나의 컵에 담겨져 나오게 돼.
함수도 마찬가지야. X값은 하나일 수도 있고 다른 두세 개의 값을 가질 수도 있어. 하지만 함수를 통하여 나온 결과는 결국 하나의 Y값을 갖는다는 거야. X값이 하나일 때도 Y값은 하나이고, X값이 두세 개 또는 그 이상의 값일 때도 Y값은 하나인 것이지.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것이 있어. 만약에 과일 주스를 거꾸로 믹서기에 넣으면 원래 넣었던 과일들로 분리되어 나올까? 또는 옷감을 방직기계에 넣는다고 해서 여러 개의 실로 분리되어 나올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겠지? 수학의 함수도 마찬가지란다. 만약 하나의 값을 넣을 때 두 개, 세 개의 값이 나오면 그것은 함수라고 할 수 없어. 그래서 위 또는 아래로 볼록한 이차함수 그래프나 y=5와 같은 식은 함수지만, 좌우로 볼록한 이차함수 그래프나 x=5 또는 원은 함수가 될 수 없는 것이란다.
---pp.142~144_‘함수: 주어진 조건에 따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원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