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1999년 11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437쪽 | 148*210*30mm |
ISBN13 | 9788908071544 |
ISBN10 | 8908071547 |
발행일 | 1999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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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37쪽 | 148*210*30mm |
ISBN13 | 9788908071544 |
ISBN10 | 8908071547 |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멋진 신세계> - 서문 - 멋진 신세계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 - 서문 -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 - 해설/ <멋진 신세계>와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 - 연보 |
<멋진 신세계>는 20세기 초를 살던 영국 지성인이 꿈꾸었던 이상향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시 헉슬리는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영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의 손자입니다.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발표한 것은 1932년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 합본되어 있는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1958년에 발표되었습니다.
헉슬리는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쓰는 시점에서 보면 <멋진 신세계>를 쓰던 시점과 비교해보면 덜 낙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멋진 신세계>에서 예언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실현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상상했던 미래의 독재정권은 오지 오웰이 <1984년>에서 그렸던 독재정권보다 훨씬 덜 지독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독재자들도 죽고 상황은 바뀌었다고 합니다.
<멋진 신세계>은 그 무렵 주목받던 우생학을 기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정자와 난자를 등급에 따라 인공적으로 수정하고 체외에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다양한 화학처리를 하여 역시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등 5등급으로 분류된 인간이 태어나도록 조절합니다. 수정란 하나에서 최다 96개의 개체를 만들어내는 기술도 적용합니다. 정자와 난자를 어떻게 얻는지에 대하여는 별도 설명이 없습니다. 헉슬리가 현대에 살았더라면 아마도 체세포 복제기술을 적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인공수정 후에 병에 담겨 성장한 태아는 병으로부터 나오는 출생과정 이후에도 각자 맡아야할 업무에 관한 학습을 받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문명세계에 사는 인간들은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태어나게 됩니다. 이들은 헨리 포드가 일관작업으로 T형 자동차를 대량생산하는데 성공한 1908년을 포드기원 1년으로 합니다. 이들의 문명세계를 조정하는 사람들은 10명의 세계감독관들입니다. 이들은 사회구성원의 행복이 목표이며 ‘공동사회, 동일성, 안정’을 추구합니다. 인간의 출생이 기계적으로 조절되는 것처럼 삶의 모든 것들이 통제되는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이들 이외에도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종족을 유지하는 야만족이 살고 있습니다.
초반 멋진 신세계의 구성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설명된 다음에는 버나드와 레니나가 뉴멕시코의 야만인 보존지역을 여행하는 장명으로 옮겨갑니다. 마치 동물원처럼 역사적 유물로 보존되는 지역입니다. 6만의 주민이 문명화되지 않은(?) 옛날 방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이곳에서 베타급의 문명인 여인 린다와 그녀의 아들 존을 만난데서 파문이 시작됩니다.
버나드와 레니나가 모자를 문명사회로 이주시키면서 사태가 심각해집니다. 야만의 세계에서 성장한 존의 눈에는 문명사회에는 무언가 부족한 것을 느낀 것입니다. 과학의 힘으로 이상향을 만들어냈지만 문명인 사이에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정이 느껴지지 않은 것입니다. 존은 문명세계를 통제하는 세계감독관 가운데 한 사람을 만나 문명세계의 본질을 알게 됩니다. 문명세계의 일원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교외로 탈출한 존에게 문명세계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보이지만 존의 행동은 그저 찻잔의 태풍에 그치고 마는 것 같습니다.
<멋진 신세계>의 기본 틀을 딴 다양한 작품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2005년작 영화 <아일랜드>의 경우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가복제를 통하여 만들어진 인간이 체세포를 제공한 사람에게 장기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언젠가는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아일랜드로 갈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장기를 제공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들이 살고 있는 공간 자체가 아일랜드였는지도 모릅니다.
헉슬리가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멋진 신세계>에서 예언한 것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심각한 것 같습니다.
고전독서회에서 활동하면서 제가 처음으로 추천한 책입니다. 가즈오 히로구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으면서 디스토피아의 효시작품이라 생각하고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516년 토마스 만이 <유토피아>를 발표한 뒤로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을 그린 작품들이 쏟아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유토피아에 대응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이 20세기에 들어서야 나온 것이 의문입니다. 20세기에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소비에트연방의 자마찐이 쓴 <우리들>이 서구에 늦게 알려진 관계로 <멋진 신세계>가 디스토피아 소설의 효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순서로 보아서는 토마스 만의 <유토피아>를 먼저 읽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입니다만, 오히려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을 읽은 뒤에 <유토피아>를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독서회에서 논의할 주제를 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읽을 때 관련된 책들을 같이 읽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반영하여 주제를 정해보았습니다. 특히 <1984>를 이미 읽었기 때문에 두 작품을 비교해볼 기회라는 생각입니다.
1. <멋진 신세계>는 <우리들>, <1984>와 더불어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힙니다. 이들 작품에서의 공통점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토마스 만의 <유토피아가 ‘사유재산이 없는 이상적인 공산사회’를 그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유토피아>에도 디스토피아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디스토피아 역시 아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디스토피아에 아주 근접한 나라는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작품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국가 혹은 거대한 조직이 주도하여 주민들이 획일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세계입니다. <멋진 신세계>는 태아 시절부터 과학적 조작에 의하여 획일적인 인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주민들을 통제할 이유가 없습니다만, <1984>나 <우리들>의 경우는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왜곡된 사실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세 작품 모두 중앙조직의 통제에 반대하는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1984>에서는 윈스턴 스미스가 줄리아와 함께 체제에서 금지하는 만남을 이어가는 등 소극적인 반발을 하고, <멋진 신세계>에서는 뉴멕시코의 야만인 구역에 버려진 린다로부터 태어난 존이라는 존재가 체제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며, <우리들>에서는 우주선 엔지니어 D-503이 I-330을 만나 체제에 저항하는 집단에 합류하여 저항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존은 죽음으로 자유로운 세계로 떠나는 듯한 결말을, <1984>에서는 윈스턴 스미스가 체포되어 세뇌되면서 일상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물론 줄리아는 죽음을 맞게 됩니다. <우리들>에서도 D-503이 남긴 일기가 발각되면서 거사가 실패로 되돌아가고 D-503역시 세뇌된 끝에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저항세력들은 분쇄가 되는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즉, 주민을 통제하는 체제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발표하고 27년이 지나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라는 평론에서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의 차이점을 비교하였습니다. 시기적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탄생을 전후로 한 까닭에 <1984>의 독재정권이 개인 통신의 광범위한 도감청, 일상생활의 감시 및 통제, 각종 문서검열 및 역사조작을 수행합니다. 즉 징벌과 징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하여 통제되는 사회인 것입니다. 반면 <멋진 신세계>에서는 태아 단계에서부터 과학적 수단을 통하여 국가의 통제에 순응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굳이 국가가 나서서 통제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수면교육이라거나 소마라는 약물을 공급하여 우회적으로 통제하는 정도입니다.
2. 소설이나 영화 가운데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작품을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원조라고 할 소비에트연방의 자마찐이 쓴 <우리들>을 소개합니다. 1920년 무렵에 발표되면서 비판을 받고 작품활동이 금지되었습니다. 1924년 영문판이 먼저 출간되었습니다. 1932년 프랑스로 망명하여 작품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나무위키에 소개된 줄거리를 요약합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29세기이며 우주선 엔지니어 D-503이 주인공입니다. 전 세계는 모두 투명한 유리벽 "푸른 벽"에 둘러싸여 "은혜로운 분"이 다스리는 단일국가 체제하에서 통치합니다. 모든 인민들은 코드화된 기호숫자를 이름 대신 부여받고 같은 제복만을 입으며 매일 같은 시각에 기상하여 명령받은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사생활은 전면 부정됩니다. 주민들이 기관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남녀가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장막을 치는 시간뿐입니다. 자유연애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남녀간의 모든 성적 행위도 법적으로 할당제에 묶여있습니다.
주인공은 이러한 사회에서 아무런 의심없이 생활하던 중에 만난 I-330이라는 여성을 만나 빠지게 됩니다.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에 속한 그녀는 거사에 이용할 우주선을 제작하는 D-503의 포섭에 나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계획은 밀고자에 의해 발각되어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D-503은 "상상력 적출 수술"을 받아 모든 계획을 밀고하였고, I-330은 처형되었습니다. D-503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체제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지만, 벽 너머의 반체제 인사들은 여전히 남아있어 제2의 거사가 예상됩니다.
3.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대사들 가운데 기억해두고 싶은 대목을 소개해주시고, 그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누구를 막론하고 살아있는 동안은 행복했다는 거야. 지금은 누구나 다 행복하니까 말이야(103쪽)”
멋진 신세계에 사는 알파에서 오메가에 이른 주민들은 사는 동안 매일 밤 150번씩 되풀이해서 이 말을 듣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과 안정을 믿습니다. 알파만의 사회는 틀림없이 불안정하고 비참합니다.(255쪽)” 존과 독대한 세계국가의 지도자 무스타파 몬드는 알파에서 엡실론까지 다양한 계층의 인간을 만들어낸 이유가 무엇이냐는 존의 질문에 “우리는 자멸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답합니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이 돌아가려면 사람들이 다양한 직역에서 만족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든 일에 종사하는 엡실론을 만들고, 저항하지 않고 그 일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행동조절을 해놓은 것입니다. 즉 그들의 운명은 수정되는 순간 정해져서 화학물질에 의하여 조건을 형성하고 태어나고서도 최면학습을 통하여 끊임없이 만족한 삶이라는 생각을 주입당하는 것입니다.
“신들은 정당합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의 율법은 마지막에 가서는 사회를 조직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지시받게 됩니다; 신의 섭리도 인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270쪽)”
인간의 운명은 신이 주재하는 것이라는 오랜 믿음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생각입니다. 문명마다 다양한 신의 존재를 만들어왔습니다. 인간의 앎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입니다. 신학 혹은 교리라는 것도 신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예언자들은 이야기합니다만, 그 또한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4. 여러분이 <멋진 신세계>에 살고 계시다면 어떤 입장을 취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멋진 신세계는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요?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저는 기본적으로는 획일적인 삶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품인 듯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다양한 사례들을 다루는 것이기는 해도 큰 틀에서 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다.’는 우리네 옛말 그대로입니다.
그래서인지 직장을 자주 바꾸어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이 열한 번째인 셈입니다. 군복무와 연수를 다녀오느라 오간 것을 포함하면 열다섯 번째 이동인 셈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12년을 근무한 것이 예외적으로 길었고, 평균적으로는 2-4년이었습니다. 짧게는 두 달 만에 옮긴 적도 있습니다.
직장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라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되지 않는 직장에서 버티면서 근무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나름대로의 개성을 살릴 수 없는 획일적인 세상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특히 누군가의 통제와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작품들에서 주인공들의 반란은 한결같이 찻잔 속의 작은 소용돌이 바람으로 끝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