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전쟁을 결코 치유하지 못할 것이다.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는 결코 다시 편안해지지 못할 것이고, 평화롭게 삶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정돈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살던 집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보라. 우리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보라. 우리는 결코 다시 편안히 쉴 수 없을 것이다.” --- p.20
바비 젤리저가 썼다시피, “모든 이들이 기억의 생산에 참여하지만, 동등하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불평등의 한 징후는 미국이 실제로는 그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베트남을 제외한 거의 전 세계 문화 전선에서 벌어지는 기억 전쟁에서는 승리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영화제작, 도서 출판, 미술계 그리고 역사 기록물의 제작에서 우위를 점했다. --- p.28
군대를 지지하는 이야기는 미국이 치르는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그 의도가 결백하다고 믿는 미국인의 정체성을 긍정한다. 이러한 정체성이야말로 진정한 “베트남 신드롬”이다. 미국이 영원히 결백한 나라라는 상상을 선택하는 기억이다. --- p.71
기념물은 “기억하는 것 자체가 망각하는 것의 한 형태”이며, 기억의 교묘한 속임수다. 베트남 참전용사 추모비는 5만 8,000명의 미국 병사들로 300만의 베트남인들을 대체한 경우이다. 사진작가 필립 존스 그리피스는 말한다. “모두들 단순한 통계 하나를 알아야 한다. 미국 전몰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워싱턴 D.C.에 있는 추모비는 약 137미터이다. 같은 간격으로 베트남 전몰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비슷한 추모비를 만든다면, 그것은 아마 15킬로미터에 이를 것이다.” --- p.91
미국이 공산주의를 봉쇄하기 위해 그 전쟁을 벌였던 반면, 이 소규모 전시실에는 한국이 그 전쟁에 품었던 함의들이 담겨 있다. 그러한 함의들 가운데 가장 불편한 부분은 잊힌 전쟁 기간 동안 한국 병사들이 저질렀던 행동이다. 몇몇 학자들이 지적했다시피, 한국이 아제국주의(Subimperialism)의 강국으로 떠오르는데 그 전쟁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183
베트남인은 일반적으로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기억한다. 미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선 미 학살 기념관에는 영어와 베트남어로 ‘미국의 침략자와 한국 용병들이 폭력적으로 저지른 잔인한 범죄’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한국인 병사들과 연합하여 싸웠던 남베트남인들도 한국인에 대해 그다지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 베트남공화국의 공군사령관이자 부총리였던 응우옌 까오 끼는 한국 병사들을 부패와 암거래로 고발했다. --- p.197
살인은 강자의 무기이다. 반대로 죽음은 약자의 무기다. 약자는 살해할 능력이 없다. 약자의 가장 큰 힘은 강자들보다 더 많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리자의 관점에서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5만 8,000명 가량의 인명손실을 입었고, 한국은 5,000명 정도를 잃었다. 반면에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공식적인 전쟁 기간 동안 약 4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 p.205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은 초음속 전투기, 네이팜탄, 백린탄,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제초제 그리고 섬광과 굉음 속에서 분당 6,0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소위 미니 기관총이 장착된 헬리콥터를 사용하는 괴물 같은 거대 산업과 비대칭적 전쟁을 벌였다. 전투기 몇 대와 미사일을 제외하고, 거의 아무것도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게릴라군이라는 비대칭적 전쟁으로 대응했다. 비대칭성은 기억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전지구적으로 미국의 기억 관련 산업이 승리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 대부분이 전쟁에 승리한 것은 베트남인들이라고 알고 있지만, 미국의 기억의 결에 노출되고, 기획된 미국의 기억을 접하면서 그 사실조차 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기억 관련 산업은 전쟁과 아무 상관없는 제품일 때조차 전쟁 기억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 p.222
좋은 전쟁 이야기는 소년 소녀들에게 병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심어준다. 그러나 아무도 전쟁이 치를 대가를 예상하거나 혹은 전쟁에 휘말려든 민간인, 고아, 미망인 혹은 난민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군대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영광스러운 죽음에 대한 환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지 절단, 전쟁 신경증, 설명할 수 없으나 점점 쇠약해지는 질병, 노숙생활, 정신병 혹은 자살, 병사들과 퇴역 군인들이 흔히 경험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환상은 없을 것이다. --- p.293
철학자 슬라보예 지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완전히 죽지 않은’ 이들은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정확하게 말해서 ‘살아 있으면서 죽은’ 괴물 같은 존재다.” 난민들 중에도 ‘살아 있으면서 죽은’ 이들이 있다. --- p.303
당연한 말이지만, 평화가 전쟁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전쟁은 그 즉시 이윤을 제공한다. 우리의 두려움과 탐욕을 빌미로 냉소적인 전쟁의 지지자들은 강력한 기억조차 무기화된 기억으로 전환할 수 있다.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나라를 위해 영웅적으로 희생하는 병사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 p.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