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츠하늘소의 파랑. 그 선명한 파란색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전율은 나 자신이 최초로 경험한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그 파랑을 발견하고 숨이 멎을 것 같던 순간이 바로 생물학자인 나의 원점입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여러 곤충을 수집하면서 대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이유를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화가 베르메르조차 만들어낼 수 없었던, 자연이 낳은 신비한 파란색의 유래를, 다시 말해 이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저 기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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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점 두 개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열해 있으면, 우리는 거기서 우선 ‘눈’을 연상한다. 나란히 배열된 검은 점들을 연결한 중앙에는 숨을 죽이고 조용히 호흡하는 코, 그 아래에는 침으로 촉촉해진 입술을 떠올린다. 이 모든 것이 그리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분명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점은 선과, 선은 점과 서로 굳게 결합해 형상을 만든다. 인간이 지닌 ‘인간의 얼굴’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집착은 이렇게 본능으로 자리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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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세계에서는 어느 생물의 개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유전자조차도 늘 움직이고 뛰쳐나가고 돌아오고 싸우고 번식하고 소멸하는, 지극히 동적인 존재다. 바이러스, 이 아주 작은 존재를 잠시 생각하는 것만으로 현존하는 생물학상의 모든 쟁점들을 단숨에 복습할 수 있다. 그러니까 생물학자로서 나는 감기에 걸리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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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늘 생각한다. 아름다운 나비 같은 것은 없다. 나비의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라고. 고바야시 히데오가 한 말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제비나비들은 자신의 동료를 볼 때 결코 날개에 있는 녹색과 청색의 아름다운 반점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날개의 색깔도, 문양의 패턴도 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사람이 보고 있는 것처럼은 서로를 보지 않는다. 이렇듯 사람과 나비의 시각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곤충소년은 저절로 배우게 된다. 결국 나비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우리 인간의 인식 내면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곤충소년은 내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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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피플. 이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의 반의어처럼 들린다. 그러나 빅 브라더와 같이 눈에 보이는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리틀 피플은 어떤 것이든 그것을 통로로 삼아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것이 “산양이든 고래든 완두콩이든 간에”라는 문장 앞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속에 은밀히 존재하고, 그 전지전능성으로 인간을 지배하려는 리틀 피플이 존재한다. 그는 우리를 탈것으로서 철저하게 이용하고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버리는 존재다. 사실 그런 존재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현재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고, 그 운명에 가장 중요한 인과관계를 부여하는 존재로서, 빅 브라더를 대신할 무엇을 신봉하고 있다. 그것은 유전자적인 존재다. 물론 유전자 그 자체는 물질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주 작은 유전자를 의인화하여 인식할 때 그 유전자는 무엇이든 통로로 삼아 모습을 드러내고,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세계와 우리를 자신의 지배하에 둔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복제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마더)는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자신과 똑같은 딸(도터)을 계속 복제한다. 리틀 피플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기 번데기’는 그 같은 비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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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쓰러진 졸참나무 옆을 지나가는데 무엇인가가 내 눈에 띄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천천히 몸을 틀었다. 썩어가는 나무 틈새 사이로 베이츠하늘소가 살며시 앉아 있었다. 꿈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 파랑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게다가 보는 각도에 따라 그 파랑은 잔물결처럼 옅어졌다 짙어졌다 했다. 그때가 내가 박사가 되기 전, 바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 순간이었다.
박사가 된 이후에 줄곧 계속되어온 물음도 기본적으로는 이것과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아름다움이 왜 이 세상에 필요할까? 아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물음을 축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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