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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김대중 평전

새벽 김대중 평전

리뷰 총점9.4 리뷰 7건 | 판매지수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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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top2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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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8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453쪽 | 669g | 150*230*30mm
ISBN13 9788958286295
ISBN10 8958286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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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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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았는데도 큰일에는 담대했다. 대중은 형제 중에서도 가장 겁이 많았다. 밤에는 옛날이야기 속의 도깨비가 튀어나올까봐 마음을 졸였다. 바람이 불면 마당 한 켠에 있는 측간에 가지 못할 정도였다. 혼자 있으면 귀신이 나올까봐 이불을 뒤집어썼고, 또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홀로 울었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뭍으로 가겠다고 떼를 썼다. 신문 배달을 해서라도 공부를 하겠다고 부모를 졸랐다. ‘비바람이 두렵고, 어둠이 무서웠지만 새벽에 길을 나서고야 말았던’ 김대중의 삶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p.23

김대중은 또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보통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신문을 탐독했다. 아버지가 구장직을 맡고 있어서 매일신보가 들어왔다. 며칠이나 묵은 신문이었지만 섬에는 없는 여러 소식이 들어 있었다. 서당에서 익힌 한자 실력으로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정치면을 유심히 봤다. 일본 내각이 개편되면 그 명단을 베껴서 가지고 다녔다. ---p.24

해방 공간은 어수선했고 나라는 국민들의 염원대로 세워지지 않았다. 김대중은 사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새로운 조국을 건설한다는 희망과 의욕으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 그 후 좌와 우로 갈라지면서 숱한 정당이 탄생했다. 김대중은 조선신민당에 입당했다. ‘좌우 합작’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의 독립보다는 소련을 추종하고 나아가 그들에게 충성을 하자는 움직임을 보였다. “우리의 조국 소비에트 만세” 또는 “붉은 깃발만이 우리의 진정한 깃발”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김대중은 그들에게 호통을 쳤다. “어떤 놈들이든 소련을 조국이라고 하고, 붉은 깃발을 우리 깃발이라고 하는 놈은 때려 죽여야 한다.” ---p.29~30

“김구 선생이 5.10 총선에 참여했다면 이승만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이 땅에 반공을 빙자한, 친일파에 의한 독재가 발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은 우리 현대사 비극의 시작이었다.” 김대중은 훗날 정치인은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고 거듭거듭 말했다. 그것이 최악의 경우를 막아 결국은 민의를 따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p.30
김대중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이미 김대중은 정치가 바르지 못하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사선을 넘으며 가슴에 새겼다. 부산 정치 파동은 잘못된 정치가 빚어낸 또 다른 비극이었다. 전선에서는 젊은이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오직 정권만을 탐하는 무리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p.38

1954년 목포, 1958년 인제, 1959년 다시 인제. 세 번을 연거푸 떨어졌다. 김대중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쌀이 떨어졌지만 수중에 돈 한 푼 없었다. 사람 만나기가 무서웠다. 사람을 피해 무작정 버스를 탔고, 가다 보면 또 마땅히 내릴 곳이 없었다. 청년 사업가로 그간에 쌓은 부와 명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집에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뿐이었다. ---p.43~44

1962년 봄날 김대중은 몹시 아팠다. 앓아누워 꼼짝하지 못했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이희호를 만나지 못했다. 아프면 서럽다. 그래서 누군가를 간절하게 찾는다. 이희호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사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바로 찾아갔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척한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 이희호는 그 말을 듣고 울먹거렸다. 김대중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p.55

하지만 김대중은 국교 정상화에 대한 ‘무조건 반대’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국익을 위해서 일본과의 수교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었다.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침략자들과 수교를 하는 것은 침략 행위를 용서해서가 아니라 국익을 위해서였다. 강해져서 다시는 침략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진 기술은 받아들여야 했다. ---p.59~60

대통령 후보 김대중은 정책 선거를 천명했다. 상대 후보 박정희에 대한 인신 공격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정책으로만 승부하기로 했다. 향토예비군 폐지, 미?중?소?일 4대국의 한반도 전쟁 억제 보장(4대국 안전보장론), 남북한 화해와 교류, 공산권과의 관계 개선과 무역 추진, 대중 경제 노선의 추진, 사치세 신설, 학벌주의 타파, 이중곡가제 실시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p.76

판세가 극도로 혼미했다. 불안해진 정부 여당은 김대중을 용공 분자로 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 감정을 조장했다. 그대로 가다가는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빨간색’ 낙인은 김대중이 아닌 박정희에게 찍어야 했다. 만주군 출신의 박정희는 여순 사건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또 형의 좌익 활동 등으로 행적 곳곳이 불온했다. ...... 거기에 비하면 김대중은 ‘가진 자’로 분류되어 인민군에게 총살을 당할 뻔했다. ---p.85~86

나는 김대중이 중앙정보부 지하 감방에서 취조를 받는 영상을 보았다.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희귀 영상물이었다. 화면은 흐릿했지만 김대중은 군복을 입었고 간간히 담배를 피웠다. 수사관의 말투는 비교적 공손했고, 김대중을 선생님이라 칭했다. 어차피 죽일 대상이었으니 김대중에게는 가혹한 고문을 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p.144

사형수 김대중은 죽음 앞에서도 용서를 얘기하고 있다. 훗날 군사 쿠데타의 머리인 전두환, 노태우를 용서한 것은 이렇듯 감옥에서 이미 결심한 것이었다. 김대중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우와 자식, 비서, 동지들이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갔지만 가해자들을 용서했다. 참으로 비범한 일이다. 그렇지만 전두환, 노태우의 중죄를 용서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용서를 넘어 재직 시에는 전두환과 만찬을 하기도 했다. 광주 시민들을 집단 학살한 무리의 수괴와 함께 밥을 먹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희생자 중에는 “김대중 석방”을 외치다 숨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p.160
천하의 김대중도 선거판을 읽지 못했다. 김대중은 당시에 흥분하고 있었다. 김대중을 연호하던 1971년의 유세장 열기가 재연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16년 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국민들의 눈에 김대중은 ‘1971년의 대통령 후보’가 아니었다. 김대중은 어느덧 빨갱이, 거짓말쟁이, 대통령병 환자, 위험한 과격분자로 바뀌어 있었다. 군사정부의 지속적인 공작에 속속 속아 넘어갔다. ---p.199

김영삼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지를 짓밟으며 권력을 좇았다. 그 후 김대중의 마음속에서 민주화 동지 김영삼은 사라져 버렸다. 자서전 구술을 할 때 김영삼에 대한 인물평을 묻자 김대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이 흘렀지만 그날은 입을 열지 않았다. ---p.211

김대중에게 정계 은퇴는 가장 효율적인 정치행위였다. 한국에서 패배를 곱씹는다는 것은 근천스러운 일이었다. 지지자들을 볼 염치도 없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서 세 번 떨어졌으니 국민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 정치판을 떠나 있어야 했다. 그래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김대중은 그 절망의 시간에 다시 자신을 점검했다. ---p.216~217

그렇게 소문으로만 굴러다니던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 방해 공작이 있었을까? 결론은 ‘실제로 엄존했음’이다. 북유럽에 사람을 보내 유력 인사나 언론인과 접촉하여 부정적인 여론을 전달했다. 또 노르웨이나 스웨덴 내의 여론주도층에 허위 사실을 퍼뜨렸다. ...... 이러한 공작은 김영삼 정부에서까지 계속되었다. 해마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니 ‘수상 방해’는 해마다 안기부의 주요 공작이었다. ---p.269

임동원은 감동했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된 분석과 판단은 예리했고 해결책은 명쾌했다. 통일 철학과 원대한 비전, 그리고 논리정연함에 깊이 감탄했다. 김대중의 식견이 두려울 정도였다. 임동원은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인을 다소 얕보고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은 달랐다. 그 자신이 십수 년 동안 남북문제에 매달려 왔는데도 이렇듯 고견을 지닌 인물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p.313

이 인사말로 김정일은 서방세계의 잘못된 정보가 만들어 낸 유령의 집에서 빠져나왔다. ‘성격이 음울하고 잔인해서 기쁨조들과 밤마다 술판을 벌이는 방탕한’ 인물이 아니었다. 김정일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에 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상대가 김대중이기에 그는 부풀어 있었다. 김대중은 인사말을 듣고 안도했다. 그를 설득할 자신감이 생겼다. ---p.334~335

2000년은 노벨평화상을 제정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해보다 경합이 치열했다. 35개 단체와 115명이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중동 평화 협상에 주력한 빌 클린턴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김대중이 단연 빛났다. 노르웨이 언론은 “과거에는 이런저런 자격 시비가 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단 한 건의 반대 의견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p.346

노벨위원회 위원장 군나르 베르게는 별도의 해명을 했다. 이는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가 있다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기이하게도 김대중에게는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가 있었다. 김대중의 수상을 반대하는 수천 통의 편지가 한국에서 날아왔다. 그것이 모두 특정 지역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p.346

권력형 비리는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2002년 새해 연두 회견에서는 사과부터 해야 했다. 시종 고개를 숙였고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여섯 차례나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더욱 잔인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아들의 비리 연루 의혹이 불거졌다. 아침 신문 보기가 겁날 정도였다. ---p.367

김대중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 조마조마했다. 소위 개혁 정책이라는 것들이 곧잘 현실을 떠나 이상적이거나 또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켜 국민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일련의 민주적 조치들은 평가할 만하지만 국민 의사를 수렴하는 데는 문제가 많았다. 김대중은 참여 정부 사람들을 만나면 모든 정책은 “국민보다 반걸음만 앞서 가라”고 당부했다. ---p.388

김대중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에는 신 앞에 엎드렸다. 겸손하게 ‘지난날’을 바쳤다. 연금을 당하고 있을 때도 가족, 비서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또 아내 이희호와 단둘이 있을 때도 기도드리고 찬양했다. 납치되어 바다에 던져지기 직전 예수님을 본 후 하루라도 기도를 쉰 적이 없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하느님을 찾았다. ---p.404

살아서 후임 대통령 영전에 꽃을 바칠 줄은 진정 상상도 못했다. 미망인 권양숙을 보더니 한없이 깊게 울었다.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버지처럼 흐느꼈다. 불행을 막지 못한 것이 자신의 죄인 양 서럽게 울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입을 벌려 울고 있는 모습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p.412

다시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면 그가 올 것이다. 새벽처럼 돌아올 것이다. 죽어서도 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주어진 생을 한 점 남김 없이 태웠다. 온몸을 바쳐 평화를 만들고 그 속에 들었다. 최선을 다해 살았던, 참 아름다운 사람을 역사에 묻고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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