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내가 아빠 기러기가 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행글라이더를 조종했고, 얼마 전에는 초경량비행기 면허를 땄다. 연구소에서 누가 이 프로젝트를 맡을 것인지 문제가 되었을 때, 내가 기러기 양육을 담당한다는 결정이 일찌감치 내려졌다. 모든 게 예정대로 이루어진다면, 몇 주 후에 기러기들과 함께 날 것이다!
--- p.13
우리가 아는 바로는 오로지 ‘우리에게’ 자연과 그 안에 사는 동물이 필요하니까. 동물을 포함하여 자연은 우리에게 온갖 양식을 제공하고, 우리를 배부르게 하거나 유튜브에 등장하는 귀여운 동물로 우리를 감동시킨다. 거꾸로 이 동물들에게 ‘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동물에게 우리가 필요할 때에야 완벽해질 것이다.
--- p.31
새끼들은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바보, 우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어? 인간들은 멍청하게 왜 항상 그게 걱정이 많아? 자연을 좀 더 믿으라고!’
--- p.37
새끼 기러기들의 존재는 감동을 준다. 이들은 나와 닿아 있다. 단순하고 기본적인 일밖에 할 줄 모른다. 먹고, 탐색하고, 배설하고, 자고, 쉰다. 더는 원하지 않고, 또 알지도 못한다. 타인의 기대와 재정 문제, 인간관계, 의무, 시장보기 등 일반적으로 나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모든 일에 새끼 기러기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사랑이 어쩌면 반드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은 아닐 거라고, 지극히 일반적으로 우리 존재와 자연의 안락함과 관계가 있다고.
--- p.42
기러기들이 며칠 만에 벌써 수영하고 첨벙거리고 자맥질하고 날뛰며 놀고 완벽하게 한 줄로 서서 뒤뚱거리며 걸을 수 있는 반면, 인간은 어느 정도 자립하는 데 18년이 걸리는데 왜 우리는 온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생명체가 인간이라고 하는 걸까?
--- p.58
기러기들과 함께한 뒤로 내 안에서 기이한 변화가 느껴진다. 기러기들 덕분에 나는 이혼과 더불어 발생한 내 아이들과의 일시적인 이별을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평범한 새끼 기러기 몇 마리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지? 쉴 새 없이 어린 기러기들을 돌봐야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나 자신에게 더 가까워져 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들리고, 나도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달리 뭐라 표현할 도리가 없다. 기러기들은 나에게 현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라는 느낌을,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게 가장 가치 있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 p.74
순종하지 않으려는 프리다의 태도는 무척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기러기 신병훈련소가 아니니까. 사실 나는 프리다가 온종일 버스 아래 웅크리고 앉아 시위권을 행사해도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현수막과 쇠사슬도 가져다주고 싶다.
--- p.105
‘호모 사피엔스’는 이성을 자랑하지만, 그 이성이 우리를 제한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모든 것은 우리의 의식을 통해 평가되고 가치 매겨진다. 꽃을 볼 때 냄새를 맡지 않으면서도 꽃향기가 어떨지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내 이성은 다양한 인상의 가능성을 질식시킨다. 사물을 선입견 없이, 동물의 본능적인 시선으로 관찰하는 게 좋지 않을까? 기러기의 눈에 이 세상은 얼마나 강렬하고 아름다워 보일까!
--- p.120
기러기가 왜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겠는가? 니모는 맛있으면 먹는다. 자기가 언젠가는 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야생 기러기와는 달리 이 기러기들은 에너지가 풍부한 낟알 사료를 나에게 한없이 얻는다. 니모가 이런 식으로 계속 먹다가는 날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벼울지 의심스럽지만, 나는 이 상황이 저절로 조절되고 니모도 날게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니모는 아무 문제 없다. 니모에게서 뭔가 기대하며 문제를 만드는 건 바로 나다.
--- p.161
나는 ‘고집 세고’‘손을 쓸 수 없으며’‘반항적인’ 프리를 욕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프리더가 구조를 바라는지 모르겠다. 프리더는 자발적으로 그룹을 떠나기로 한 게 아닐까? 그의 항로 변경은 실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내 프리더를 ‘구조할’, 그러니까 그가 있기 싫다고 여러 번 나에게 눈치를 준 곳으로 다시 데리고 올 권리가 있을까?
--- p.172~173
“우리 같이 날까?” 이렇게 묻고는 파울의 어두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아토스는 궤도를 달리듯 하늘을 가른다. 파울이 불쑥 일어나더니 조종석 너머로 아래를 잠깐 보고는 허공으로 뛰어내린다. 1미터도 채 내려가지 않아 날개를 펼치고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내 옆에서 난다. 날고 있는 파울의 꽁지깃을 쓰다듬을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깝다.
--- p.235
내 기러기들은 생생한 만화영화 주인공이 아니라 야생동물이다. 기러기들은 자기 고집이 있고, 날 수 있게 된 다음부터 나는 아무런 지시도 내릴 수 없었다. 내가 기러기들에게 날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생각이었다. 기러기들은 대부분은 저절로 할 줄 알았다. 거꾸로 ‘내’가 기러기들에게서 뭔가를 배우게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자연은 내 착각을 바로잡았다. 자연에서는 계획할 수 있는 것이란 없고, 만사가 역학적인 비행 안에서 움직인다. 자연은 냉혹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답다.
--- p.243~244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왜 그다지도 어려울까? 기러기들에게는 그 일이 왜 어렵지 않을까? 나는 왜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사실들을 거역했을까? 몸을 일으키고 앉아 칼리메로를 바라보던 나는 깨닫는다. 계획한 일은 아니지만, 기러기들은 지난 몇 개월 동안 내 안에서 뭔가를 불러일으켰거나 뭔가를 열어주었다. 기러기들이 나에게 심리 치료를 해주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새끼 기러기 일곱 마리가 몇 년 동안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나를 다시 나 자신에게 데려다주었고,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보여줬다. 남을 향한 사랑과 삶을 향한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기러기들과 함께한 몇 달 동안 나는 기대나 가치 평가 없이 그저 ‘존재’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예전에는 알지 못한 감정의 자유가 내 안에서 생겨났다.
--- p.246~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