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매라고, 예티라고, 부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저를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그들의 형제인 나를
왜 내게는 소리 없이 소낙비를 뚫고 가는 날개가 없을까요 어떻게 나는 인간의 육신과 마음을 얻었을까요 구겨진 종이 같은 재를 내뿜는 거울 같은 --- 「약속이 어긋나도」 중에서
내 눈이 보는 게 무엇인지 나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나는 만나리라
태양이 돌고 있는 별 같은 은하의 중심, 블랙홀 같은
단 하나의, 수많은 얼굴을 --- 「누구의 것도 아닌」 중에서
저는 키가 작고 불면증이 좀 있고 담배는 하루 반갑 일없이 빈둥대는 것을 좋아합니다 흰 종이 구겨지는 소리와 갑자기 유리창을 때리는 빗방울 속에서 펼쳐지는 날개, 어떤 꽃을 피워야 할지 망설이는 나뭇가지의 떨림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요 (…) 그래서 밥을 먹을 때마다 하늘을 볼 때마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황홀해서 부서지는 햇빛이나 먼지 속으로 달아나고 싶어요 한낮에도 발가벗고 춤을 추고 싶어요 --- 「부끄럽고 미안하고 황홀해서」 중에서
“아프니까 내가 남 같다”라는 구절에서 쿵 그랬다. 아프니까 내가 남 같지가 않더라, 하는 게 늘상 내 입말이었으니까. “나는 내 손님이었구나”라는 구절에서 또 쿵 그랬다. 나는 내 주인이구나, 하는 게 일상 내 태도였으니까. 그게 뭐 별 문장이라고 그리 유난스러운 쿵쿵거림이냐 하면 무심한데 세심하게 굴러떨어져 나를 다치게 하지는 않았으나 일순 나를 멈춰 세우게는 한 돌의 심장 소리를 들어버려서라는 말은 할 수 있으리라. 이 들림의 열림, 그 사이를 들락거리는 바람의 있고 없음, 빨랫줄에 널려 말라가는 젖은 빨래의 무거움과 가벼움, 덕분에 나는 옷걸이에 걸린 옷가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앉았어도 또 하나의 나를 만난 듯한 안도를 언도받기도 했지. “오늘 하루도 다 갔네, 뭘 했는지 몰라”…… 그러게, 그렇지. 이생이라는 게 사는 내내 갔는데 모르겠는 그것이지. 지나온 것만은 분명함을 알겠다 싶은 그것이지. 그러하니 시인은 제 안에서 저의 바깥으로 자주 걸어나올 수밖에 없던 게 아닐까. 그래도 괜찮았다,가 아니라 “그러나 괜찮았다”라는 말. 왜 좋지. 글쎄 왜 좋을까 하면 ‘그러나’의 돌려세움, ‘그러나’의 전반과 반전이 가져다주는 몸 비틂의 힘, ‘그러나’의 그러나저러나 결국엔 우리 모두 지나가고 지나갈 사람이라는 사실이 주는 절망의 희망. 내가 바닥이다 싶었는데 그 바닥에 박힌 돌 같은 시를 만났으니 요리 엉기고 조리 엉켰거늘 더불어 이 부러움을 어쩔까, “허리띠는 또 한칸 줄어드는데”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