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눈물점을 갖고 울보로 태어난 자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종종, 그리 뜸하지 않게 주변 사람들의 ‘눈물받이’가 되는 걸 보면.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내 방바닥에서 양다리를 마름모꼴로 한 채 한참을 울었던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너랑 있으면 꼭 화장실에 있는 것 같아. 밑바닥을 드러내.”
화장실 같은 친구라…… 어감이 좋진 않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을 때 몸을 숨기는 곳이 화장실인 걸 생각하면 싫지만은 않다. 누군가에게 숨어서 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엄청 큰 사람이 된 것처럼 뿌듯한 일이다.
--- 「눈 아래 점 때문이라고 했다」 중에서
잘 버티다가, 잘 버텨놓고. 나도, 남들도, 괜찮으니까 괜찮은가 보다 하고 지내다 별것도 아닌 것에 주저앉는 순간이 온다. 구두굽이 보도블록 사이에 끼어 자빠질 때, 가방끈이 떨어져 숨기고 싶은 물건들이 길바닥에 널브러질 때, 휴대전화가 바닥에 떨어져 액정이 쩍 하고 깨질 때 등등. 나이 들며 얻은 기술인 양 눈물도 조절할 수 있다 여기다가도 그럴 땐 눈물샘의 옆구리라도 터진 것처럼 눈물이 콸콸 쏟아져 멈추지 않는다.
--- 「빌어먹을, 피클 통 뚜껑」 중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긴박하게 움직이는 전쟁의 한 복판에서 오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지난 결혼 생활 동안 자신이 못 해준 것을 떠올리며 선 채로 우는 것뿐이었다. 그 날의 이야기가 놀림거리로 등장할 때마다 오빠는 무력한 얼굴로 말한다.
“가족분만실, 정말 비추한다.”
그런 오빠의 눈물, 콧물이 쏙 들어가게 만든 사람은 바로 간호사였다.
“간호사가 아이를 받아 보더니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자꾸 의사를 보면서 그러는 거야. ‘어머 선생님, 아이가요. 아이가요…….’”
간호사가 말을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오빠는 지옥을 맛봤다. 만약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렇게 말을 잇지 못하던 간호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이가 너무 예뻐요.”
너무 예쁜 아이를 들고 이 남자는 또 울었다.
--- 「그렇게 아빠가 된다」 중에서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떠보니 해는 중천이었고, 친구들은 다들 나가고 없었다. 갑자기 허기가 졌다. 외로움은 덤이었다. 소변을 보려고 잠깐 변기에 앉았는데,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무도 없으니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화장실에 울리는 울음소리는 왜 이리 또 처량한지, 그 소리에 더 눈물이 났다. 눈물도 메아리가 있구나 했다.
“야옹”
그때 ‘빠숑’이 나타났다. 하얀 털에 하늘색 눈을 가진 예쁜 터키시앙고라, 친구의 반려묘였다. 배가 고픈 순간을 제외하면 도도함이 하늘을 찌르는 고양이. 그런데 반쯤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부드럽게 밀치며 들어온 고양이는 내 다리에 몸을 비비더니, 나를 마주보고 앉아 울기 시작했다.
“빠숑…… 너도 외롭니”
“야옹”
“나도 외로워.”
“야옹”
--- 「실연한 여자와 발정 난 고양이」 중에서
후드득, 아니면 투두둑. 분명 기억하는 소리인데, 소리 내어 읽어 보니 긴가민가하다. 이 의성어를 듣고 누군가는 공원에서 바닥을 쪼던 비둘기의 묵직한 비상을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버티고 버티다 한계를 넘은 바지의 최후를 떠올릴 거다. 내게 이 소리는, 한 남자가 횡단보도에서 떨군 눈물이 시멘트 바닥에 하나, 둘, 셋 떨어지는 소리다.
“선배는 언제 결혼 결심했어요?”
얼마 전 후배가 물었다. 한 남자와 10년을 꽉 채워 만나 결혼해 살고 있으니 이런 질문은 신선하지도 않고 당황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날따라 성심을 다해 답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이전에 했던 답들이 성에 안 차 이 참에 그럴싸한 모범 답안을 만들고 싶었는지, 나는 한동안 뜸을 들였다. 평소 같으면 한 번 씹고 넘길 막창을 여러 번 곱씹으면서 지난 시간들을 빠른 되감기로 돌려 보다 멈춘 장면이 있었으니 앞서 말한 횡단보도다.
“우는 걸 봤어.”
--- 「그 남자가 처음 울던 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