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자라지 않은 곳에서 느끼는 이질감, 어느 순간 그곳에 젖어들 때의 편안함. 그런 발견을 기록해 수집하고 싶다. 낯선 장소를 ‘내 모습으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동네 어디쯤’으로 만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의 ‘도시 수집’은 시작되었다.
--- 「들어가며」 중에서
교토의 골목에는 자전거를 탄 속도로 보기에 아쉬울 만큼 숨겨진 공간이 많다. 자동차가 다니기 어려운 좁은 골목에 모여 있는 작은 공방들과 가게들은 마치 숨바꼭질하듯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랄까. 가게가 손님을 선택한다고 할까. 대도시, 대형 건물, 권리금이 오가는 1층에 ‘노출’된 가게에 익숙한 나에게 손님과 가게가 서로를 선택하는 교토의 작은 가게는 한없이 멋져 보였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와주기를 기다리며 골목 구석구석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가게들을, 나 역시 열심히도 찾아다녔다.
--- 「걷는 속도로 만나는 도시」 중에서
혼자 하는 여행은 장점이 많다. 우선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과 결과는 나 혼자의 몫이다. 나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도 없고 아쉬운 결과가 생겨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즉흥적인 결정을 내리기에 부담이 없다. 괜찮아 보여서 들어간 식당의 음식이 생각보다 별로여도 여길 가자고 우긴 사람을 원망할 필요도,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책임의 무게가 가벼운 유연한 여행인 셈이다. 또, 누군가와 함께일 때보다 시간의 활용도가 월등히 높다. 동행자를 기다리는 시간, 별로인 것을 견디는 시간, 사소한 갈등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 여행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일행과 함께였다면 주어진 시간을 적절히 나누어 써야 평화로운 여행이 가능할 테지만 혼자서는 그 시간을 꽉꽉 채워 나만을 위해 쓸 수가 있다는 말이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으면 점심은 건너뛰어도 그만이고, 멀지만 궁금했던 카페에 굳이 찾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려도 기꺼이 이해해줄 수 있다.
--- 「혼자 하는 여행」 중에서
나는 꽤나 목표 지향적인 성향이라 여행을 갈 때 작게라도 목표를 정해두고 움직이는 편이다. 이번 교토 여행의 대목표는 ‘도시 수집’의 영감을 얻어올 것, 글을 끼적여 올 것. 소목표는 작년에 제작한 독립 출판물 『도시 수집: 교토 작은 가게』를 일본 서점에 입고하고, 그때 그렸던 장소 속 사람들을 만나 그림을 전해주고 오는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목표를 이루었는지는 이 책을 끝내봐야 알 것 같고, 소목표는 넘치게 이루고 왔다.
--- 「두 번째 준비」 중에서
그러고 보면 생각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것에 그다지 큰 용기나 능력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실행으로 이어지는 단 한 걸음이 더딘 것일 뿐,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닌 경우가 많다. 그 상상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빠르게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물론 아직도 망설여지고 생각으로만 머무는 일들이 가득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말끔히 다듬어진 생각보다는 일단 저질러보는 담대함이 더 절실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잃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인생이라!
--- 「현실로 만난 상상」 중에서
기대하지 않고 물어봤던 서점 ‘케이분샤’에서 입고가 가능하니 책을 가져오라는 말을 들었을 땐 너무 뜻밖이라 믿기지 않았다. 담당자와 나눈 대화의 끄트머리에서 “(이런 책이) 팔릴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내 우문에 “팔릴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안경 너머로 담담하게 말하던 그의 얼굴이 생각난다. ‘아름다운 책들이 놓여 있는 이 아름다운 서점에 내 책이 함께 누워 있으면 참 좋겠다’ 하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었지만 스스로를 타이르며 어림없는 소리라고 결론 내곤 했었는데……. 상상만으로 단념해버리는 바보짓을 할 뻔했다. 입고를 확정짓고 서점을 나와서는 길을 걷다가도 피식,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다가도 우훗,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누군가에게 괜한 오해를 살까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단속하기 바빴다.
--- 「해외 첫 입고」 중에서
교토에 오기 전 구글 지도에 별을 잔뜩 표시해 왔다. 가만히 앉아 있어보고 싶은 카페, 먹고 싶은 음식, 조용히 사색하기 좋을 공원과 사찰. 그러나 오기 전에 계획을 세워놓는다 해도 그날의 날씨, 기분에 따라 행선지는 바뀔 수 있는 터라 계획은 짜놓지 않았다. 여유롭게 보내는 아침 시간에 그날그날의 일정이 정해졌다. 대개는 방향만 정해두고 거리가 가까운 곳들을 구획지어 묶어놓고 그날의 날씨와 컨디션에 따라 움직였다. ‘오늘은 위쪽 동네를 천천히 걸어보자’ 정도의 계획을 갖고 흘러가는 하루. 사실 매일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가 밥을 먹고 유명한 카페, 빵집을 찾아가는 게 다 무어냐 싶은 마음이 든 탓이기도 했다. 세상의 다른 편에서는 오늘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을까, 내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데 이런 지도에 박힌 무수한 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던 거다. 그러니 적어도 여행에서만큼은 욕심이 가득한 의도와 계획을 버리고, 우연과 본능에 의존해 시간을 써보는 일. 그것만이 오늘 나의 계획이다.
--- 「오늘도 별 계획 없는 하루」 중에서
어느 가게를 나서건 마지막에는 “또 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들에게 하는 인사라기보다도 자신에게 하는 다짐에 가까웠다. 다시 또 오자, 또 다른 재밌는 일로 이곳을 찾아와 그들과 두 번째 인사를 나누자, 하고 스스로에게 전하는 약속. 두 번째 교토 수집은 첫 여정 이후 목표로 삼았던 작은 교류들을 촘촘히 이뤄가는 시간이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이 도시와 나를 연결해주었고, 그 여정을 담은 이야기가 책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여행 전 목표로 했던 바를 이루었다는 기쁨도 크지만, 이 책을 구실로 또다시 교토에 가서 만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설레기 시작했다.
--- 「나오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