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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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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영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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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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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년 07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73g | 153*225*23mm
ISBN13 9791160022407
ISBN10 116002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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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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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와 산적들의 작은 무리로부터 출발했던 로마를 서방세계의 패권국가로 성장시킨 가장 큰 힘은 뭐니뭐니해도 로마인들의 개방성이었다. 건국초기 2대왕인 누마는 로마를 혈연관계에 기반한 부족사회에서 직능중심의 도시국가로 변모시키는 사회개혁을 주도해 개방성을 정책화했다. 이후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정복사업을 지속하면서 패배한 집단을 파멸시키지 않고 동화시키는 정책을 꾸준히 견지했다. 이 같은 동화정책은 로마를 고립된 오아시스가 아니라 개방된 저수지로 만들었다. 정복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로마는 그 권역을 서방세계 전체로 넓혔고, 권역 전체에서 발달된 수학·철학·문학·예술·토목기술·항해술 등 모든 문물이 저수지로 흘러들어 융합되면서 수준 높은 로마문화를 만들어냈다. 이 문화는 다시 저수지 밖으로 흘러나가 오늘날 서양문화의 토대를 이뤘다. 로마의 정복사업이 하드웨어의 M&A였다면, 로마의 동화정책은 소프트웨어를 M&A 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것이 로마가 단순한 정복국가에 그치지 않고 세계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근본적 힘이었다. 실력과 자신감에 기반한 당당한 개방성이 가지는 가치를 로마인은 역사 속에서 실증했다. --- pp.36-37

그리스 문명권인 시칠리아의 편입은 로마에 그리스풍의 유행도 가져왔다.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국력은 쇠퇴했으나 문화는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그리스 문화의 앞선 점이 로마사회로 흘러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웠고, 로마의 지도층은 오히려 이를 장려했다. 로마는 라틴어와 함께 그리스어를 병용하고, 그리스의 신들을 받아들였다. 또한 자녀를 그리스로 유학 보내거나 그리스 출신 가정교사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그리스 문화를 습득하는 데 애썼다. 그리스의 예술·철학·수학 등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자 반反헬레니즘의 선두주자였던 대大카토는 “정복된 그리스가 정복자 로마를 정복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로마의 교육시장은 그리스 출신들이 주류를 이뤘다. 특히 그리스 출신 중에서도 최고 브랜드는 아테네에서 공부한 사람이었고, 소아시아나 로도스섬에서 공부한 사람이 그 다음이었다. 이처럼 시칠리아의 로마 편입은 밀 생산지 확보와 그리스 문화의 유행이라는 현상을 가져오며, 실물과 서비스 부문의 국제 분업이 확대되는 실질적인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 pp.59-60

로마는 권역에 속한 민족들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담당하게 하는 국제분업구조를 만들었다. 패자인 그리스에게 교육과 문화의 주도권조차 인정했다. ‘승자의 권리’라는 오만한 관점을 버리고, 각자의 비교우위를 살리는 관점에서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면 ‘글로벌 차원의 협업플랫폼’을 형성한 것이다. 가령 에트루리아인은 토목을, 시칠리아인은 식량 생산을, 그리스인은 바다를 통한 교역을, 그리스와 소아시아 출신 지식인은 교육을, 갈리아인과 게르만인은 기병 전력을 담당하는 식이었다. 상호이익이 되는 이러한 구조는 체제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로마가 평화를 유지하며 번영하는 기반이 됐다. 강대국이 된 뒤에도 이런 정책을 일관되게 펴나간 로마는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유무형 자원의 활용범위를 넓힌다는 의미에서 국제분업과 아웃소싱의 개념을 가장 먼저 실천한 위대한 조직이었다. 경쟁의 범위가 넓어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는 글로벌 경제의 흐름은 앞으로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특히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는 기업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토지·설비와 같은 유형자산보다 브랜드·기술로 대표되는 무형자산, 나아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라는 사이버 자산의 중요성이 커진다. --- pp.66-67

‘뼈아픈 실패경험을 성공하기 위한 무형자산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책임자를 찾아 응징하는 푸닥거리로 만드느냐’의 기로에서의 올바른 선택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단순한 선택으로 끝날 수 있어도 이것이 조직 차원으로 확대되면 문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로마는 실패에서 배울 줄 알았기에 성공했다. 로마 역시 발전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겪었다. 갈리아인에게 수도를 점령당하는 수모도 겪었고, 삼니움족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로마군단이 무장을 해제당하고 항복하는 치욕도 있었다. 카르타고와의 포에니전쟁에서는 적장 한니발이 이탈리아 본토를 침공해 무려 16년 동안이나 휘젓고 다니기도 했다. 이러한 실패를 겪으면서도 로마는 책임론에 휘말려 소모적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실패의 경험을 살려 성공을 모색하는 길을 선택했다. 전쟁에 패한 지휘관을 패전 책임을 물어 처벌하지 않는 로마의 전통이야말로 로마가 작은 실패를 이겨내고 최후의 승자가 된 중요한 요인이었다. --- pp.70-71

칼 포퍼는 “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는 모든 시도는 지옥을 만드는 것으로 끝났다”고 갈파했다. 인간의 역사에서 정의나 평등과 같은 추상적 가치를 내세우고 이를 종교적 권위나 이념적 정당성으로 무장해 지상천국을 약속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작 이들이 만들어낸 것은 인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압살하는 지상지옥이었다. 실제로 드높은 이상만을 추구하는 사회나 개인일수록 딛고 있는 현실의 삶은 피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2천 년 전의 로마사회는 하늘의 권위를 빌린 추상적 이념을 추구하지 않았기에 땅 위에 사는 인간들에게 평화와 번영이라는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초월적인 종교적 가치가 비현실적인 도그마가 되어 인간성을 속박하지 않았고, 전쟁을 하기는 했지만 종교전쟁은 없었다. 최고제사장을 겸하고 있는 황제의 책무도 정의나 평등 같은 추상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식량과 안전이라는 인간의 구체적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 pp.98-99

로마인들은 전투를 꼭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새점의 결과와 상관없이 전투를 수행했다. 다만 지휘관의 의도에 따라 점의 결과를 교묘히 바꿔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방법을 썼다. 기원전 3세기 이탈리아 중부의 산악민족 삼니움족과의 전쟁 막바지 당시에 지휘관은 집정관 루키아누스 파피리우스였다. 전투 개시 전 점을 칠 때 닭이 모이를 쪼아 먹지 않았지만 풀라리의 우두머리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점괘가 좋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진형을 갖추고 난 후 다른 풀라리가 사실은 닭이 모이를 먹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자 병사들은 동요했다. 파피리우스는 “점괘가 좋으니 전투를 시작할 것이다. 만약 우두머리 풀라리가 거짓말을 했다면 그는 벌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풀라리들을 선두에 배치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진격 도중 로마병사가 던진 창에 맞아 우두머리 풀라리가 죽었다. 이에 파피리우스는 “거짓말쟁이의 죽음으로 점괘를 둘러싼 모든 죄과를 씻어버렸다”라고 말하면서 승리를 확신한다고 반응했다. 이처럼 전략과 점괘를 적절히 부합시킨 그는 병사들의 사기를 조절해 결국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 pp.105-106

탄생할 때 작고 연약했던 조직이 크고 강하게 성장하는 과정이 순탄할 수만은 없다. 조직이 역량을 축적하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뒷받침된다. 특히 조직이 출범해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기까지의 초기 단계는 더욱 커다란 희생이 필요한 시기다. 정복국가 로마의 성장은 전쟁을 통해 이뤄져왔다. 크고 작은 전쟁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그 과정에서는 패배도 늘 겪는 일이었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전쟁에서 지거나 포로가 되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실패를 인정했기에 패전도 받아들일 수 있었고 포로가 되는 불운도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운명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공동체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거나 포로가 된 병사들을 망각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수십 년이 지나더라도 전쟁포로를 찾아 본국으로 귀환시키는 일을 공동체의 의무라고 여겼다. 이처럼 조직을 위해 희생한 사람을 절대로 잊지 않는 전통은 로마사회의 강건함을 유지한 덕목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이 전통은 서방 선진국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 pp.148-149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잊지 않는 정신은 현재의 서방 선진국에도 전승돼 있다. 미국의 경우 자국 포로나 실종자의 유해를 찾아올 수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가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은 1976년 하와이에 유해확인센터를 세우고 베트남전쟁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당시 숨진 미군의 유해를 찾고 있다. 유해확인센터에는 인류학자와 치의학 전문가, 부검의를 포함해 200여 명에 이르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체계적으로 유해 발굴 및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작업 결과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공습 때 사망했던 미군의 유해가 60년이 지난 후 신원이 밝혀지기도 했고, 한국전쟁 당시 실종됐던 미군의 유해를 찾기 위해 북한에서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국군 장교의 유해가 우리나라로 인도되는 경우도 있었다. 유해확인센터 건물에는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라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연설 구절이 새겨져 있다. --- p.153

“의인불용 용인불의擬人不用用人不疑”라는 옛말이 있다. 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않고, 한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특히 현장책임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사람을 한번 쓰면 전권을 주어 책임지고 일하게 하는 것은 조직역량 극대화의 핵심요소라 할 수 있다. 로마인은 현장지휘관에게 전권을 부여함으로써 지휘계통의 불필요한 혼선을 사전에 차단했고, 지휘관은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이런 운영방식은 다른 분야에도 확산돼 통치력의 누수를 최소화하면서 분야별 조직력을 극대화했다. 로마는 2천 년 전에 이미 책임경영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대륙에 걸친 넓은 권역에서 팍스로마나가 수백 년간 유지된 것은 이러한 책임경영 시스템에 힘입은 바 크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 현장책임자에게 많은 권한을 주는 체제를 도입했기에 다양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한을 주면 책임도 함께 느끼기 마련이므로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 p.170

귀족과 평민의 연합 형태로 출발한 로마에서 건국 초기 사회적 주도권을 확보한 귀족들은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달려나가 맨 앞에서 싸웠다. 이러한 태도는 국가위기가 닥쳤을 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 재산을 헌납하고 목숨을 바치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로마의 귀족들이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를 위한 희생에서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언론인 월터 리프먼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을 방문하고 나서 “한 나라의 엘리트란 이렇게까지 희생을 해야 하는가”라고 썼다. 전쟁에 참가한 영국 귀족계급의 50대 남자 가운데 25%가 전사하고, 옥스퍼드대학이나 케임브리지대학 학생의 3분의 1이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지도층의 희생정신은 리더십을 확보하고 국가를 번영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인간이 모여 형성한 모든 조직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다. 남 앞에 당당히 서고 남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이 하지 않는 희생과 헌신을 남에게 요구하는 것은 속임수 아니면 폭력이기 때문이다. --- pp.186-187

로마군단의 전투대형은 3열 횡대가 정석이었다. 제1열은 10~20대의 젊은 병사인 하스탈리, 제2열은 전투력의 핵심으로 30대 노련한 병사인 프린키페스, 제3열은 40대 베테랑 병사인 트리알리였다. 각각의 열은 20개의 백인대로 구성됐고, 백인대장이 지휘했다. 장교는 민회의 투표에서 결정됐지만 백인대장은 병사들의 투표로 선출됐기 때문에 풍부한 전투경험과 통솔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맡을 수 없었다. 백인대장은 로마군의 현장지휘관으로서 장교와 병사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중추였으므로, 일반 시민으로서 백인대장을 경험했다는 것은 최고의 명예였다. 편성 후 행동 단계에서도 자세한 사항이 매뉴얼로 정해져 있었다. 병사들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휴대해야 하는 무기와 식량이 정해져 있었고, 행군 속도도 상황에 따라 보통행군·강행군·최강행군의 세 단계로 규정돼 있을 정도였다. 로마군은 하룻밤을 보낼 숙영지도 우직하게 매뉴얼대로 만들었다. --- pp.196-197

특히 놀라운 것은 로마는 무려 200년이 넘도록 일정한 세율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속주세가 10분의 1세, 관세도 동양에서 들어오는 사치품을 제외하면 20분의 1세, 소비세는 100분의 1세, 로마시민권자에게 부과됐던 상속세와 노예해방세는 20분의 1세로, 세율을 나타내는 낱말이 곧 세금의 명칭으로 통용됐다는 것은 세제가 안정돼 있었다는 증거다. 로마 정부는 30~40년에 한 번꼴로 국세조사를 실시해 세금 징수의 공정성 확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10%로 안정돼 있는 세제 덕분에 세무기관의 비대화를 피할 수 있었고, 국가 규모를 생각하면 놀랄 만큼 적은 수의 담당자가 세무를 처리했다. 무엇보다 이 정도의 세금은 납세자 입장에서 굳이 탈세와 절세에 애쓰기보다 당당하게 내는 것이 이익인 수준이었다. 또한 어린아이도 세액을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명료했기 때문에 세무사가 따로 필요 없었다. --- pp.263-264

혈연으로 부여받은 정통성이 사라진 이후 로마는 황제자리를 두고 내분에 빠졌다. 서기 69년에는 1년간 무려 세 명의 황제가 나타났다가 암살이나 자살로 사라지기도 했다. 이 같은 혼란은 지방 중류계급 출신의 장군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위에 오르면서 수습됐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인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가 제위를 계승한 이후 로마제국 최전성기라고 일컬어지는 5현제시대가 드디어 시작됐다.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통치한 서기 96~180년까지의 기간이 바로 5현제시대다. 5현제 중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제외한 네 명의 황제는 아들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피로써 정통성을 부여받을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황제들은 적합한 인재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양자로 입양해 정통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실력 있는 사람에게 후계자로서의 권위를 만들어준 것이다. 하드리아누스의 말처럼 “아들은 선택할 수 없지만 후계자는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황제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이 공동체로서는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었다. 5현제시대의 80여 년간 황제들은 혈통이 아닌 실력으로 후계자를 정했다. --- pp.284-289

제정 중기에는 해방노예의 아들이 황제의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폭군 콤모두스가 살해되고 뒤이어 즉위한 페르티낙스의 아버지는 원래 노예였다가 해방돼 북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모직물 거래로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군인이 된 페르티낙스는 군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원로원 의원, 집정관, 시리아 총독을 거쳐 서기 193년 황제에 올랐다. 페르티낙스의 인생은 그 자체가 단 두 세대 만에 노예에서 황제로, 사회계급의 가장 밑바닥에서 최고 위치로 상승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로마의 노예는 자유민의 40~50%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지만 군대를 투입해 진압해야 할 정도의 대규모 반란이 세 번에 불과했던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대규모 농장에서 노예노동을 주로 사용해 밀농사를 짓는 시칠리아에서 기원전 135년과 기원전 104년에 두 번 일어났고, 이탈리아 본국에서는 기원전 73년에 한 번스파르타쿠스의 반란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겨우 세 번의 소요에 그친 것은 노예들의 세계가 자유민보다 훨씬 치열한 경쟁사회로서 자신의 실력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노예 입장에서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반란이나 폭동보다는 해방노예가 되는 길이 더 현실적이었다. --- pp.301-302

당시 로마에서는 혈육이 아니라도 장래성 있는 젊은이나 평소 존경하던 사람에게 유산 일부를 남기는 관습이 있었고, 상속세도 육촌이 넘는 경우에만 과세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유력자가 지역 소년단의 운영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지도층이 세워온 이런 전통은 로마제국의 모든 지역과 계층으로 확산됐다. 황제가 공공도서관을 지으면 원로원 의원은 부동산을 기부하고, 시민은 도로보수비 일부를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기부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네로 황제시절 나폴리 근교 출신 엘비우스는 고향진흥기금으로 4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시의회에 기부해, 그 운용수익으로 결혼 후 고향에 정착한 젊은이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시절 소小플리니우스는 북이탈리아의 고향에 신전·도서관 및 토지를 기증하면서 수익금을 빈곤층 어린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원하는 데 쓰도록 했다. 심지어는 사업에 성공해 부자가 된 해방노예들도 출생지나 주거지에 공공건물을 기증했다.
--- pp.3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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