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 목록만으로는 니덤의 지성의 다양성과 밀도를 전달할 수 없다. 그의 글에는 테시몬드나 블레이크, 데이 루이스나 괴테, 오든 같은 여러 시인의 시와 라틴어 송가까지 녹아 있으며 동방 가수와 현자들의 노래도 곁들여진다. 종교 체험의 심리를 보여줄 때는 성 테레사와 노리치의 줄리안뿐 아니라 버니언과 윌리엄 제임스도 등장한다. 니덤은 인용의 대가다. 토머스 브라운의 ‘직관의 섬광’에 대한 인용은 물질대사와 비가역성에 대한 슈뢰딩거와 막스 플랑크의 분석을 능가한다. 니덤에게는 딱히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전문성의 시학’이 있다.
단테를 옆에 두고 철학적 서사시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셰익스피어와 같은 시대에 극작가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있다면 내가 어떻게 그 자리에 가겠는가?” 괴테는 묻는다. 나는 프린스턴 대학의 고등연구소에 있던 시절, J.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젊은 물리학자에게 “자네 같은 젊은 나이에 벌써 이렇게 성과가 없다니?”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자살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다. 경쟁, 질투, 시기의 주제는 수많은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 그것은 다윗의 벼락출세에 대한 사울의 분노, 호메로스의 테르시테스가 퍼붓는 독설처럼 유서 깊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질투를 느껴 살의를 품었다는 것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지만 음악, 연극,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아고와 이아키모는 어떤가? (‘이아’라는 발음은 셰익스피어에게 불쾌한 느낌을 주었을까?) 아니면 윔블던에서 해마다 로저 페더러와 가망 없는 경기를 해야 하는 선수들은?
나는 다른 글에서 교사와 학생, 스승과 제자 사이의 긴장, 불가피한 심리적 거세의 가능성을 분석해본 적이 있다. 양쪽 모두 오만과 질투를 동시에 느끼기 때문에 관계는 일종의 모순이 되고, 악명 높은 딜레마가 작동한다. 스승은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면서 스스로를 소비하고 자산을 위축시킨다. 시간은 그에게 적대적이다. 그런 한편 교육자의 명시적 목적과 명성을 이루는 것은 제자의 진보, 학생의 발전이다. 기술이 확실히 전달될수록, 교사의 능력도 높이 평가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밀려날 위험도 커진다. 발전과 자기 파괴가 동시에 작동하는 변증법이다.
순수 미술, 작곡, 연주 분야에서 이런 파괴적 관계는 끊이지 않는다. 중년의 유명 화가가 무명의 수련생에게 프레스코 벽화 구석의 미미한 인물을 맡긴다. 결과가 나오자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를 바라본다. 그가 마주한 것은, 이제 자신의 작품은 잊힐 거라는 사형선고다. 음악원의 유명 교사 겸 연주자가 우연히 문이 열린 방에서 고집불통 학생이 즉흥 연주를 하는 것을 듣는다. 그와 사이가 나쁜 학생 글렌 굴드의 연주다. 그의 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성취의 빛이 꺼지는 것, 연주가 다른 차원으로 양자 도약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행운이 따르면, 그의 이름은 천재의 인생의 각주로 살아남을 것이다.
이런 대결은 우정을 갉아먹는다. 냉소주의가 아니라 무신론이 열어준 사회적, 심리적 공간의 날카로운 통찰이 모랄리스트들에게 두 가지 잔혹한 격언을 주었다. 그것은 “친구의 불행은 우리를 그렇게 불쾌하게 하지 않는다”와 “내가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옆에서 다른 이들, 특히 친구가 실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고약한 진실을 부정할 자 누구인가? 가장 괴로운 것은 내면에서 냉소적이고 끈질긴 기록자가 성숙하는 것이다. 자신의 환상을 조롱하고, 그 별 볼일 없음을 밝혀주는 내적 목소리가.
우리는 가능한 어휘와 문법 안에서 움직인다. 인간은 자신의 정신 능력, 사회적 환경, 교육 정도, 생활공간, 역사적 유산에 따라서 각자의 언어를 이해한다. 하지만 똑같은 집단의식과 인종, 경제, 사회적 환경에 몸을 담아도, 개별 인간은 눌변에서 달변까지 다양한 수준의 ‘개인 방언’, 즉 자신에게 고유한 어휘와 구문 기호를 만든다. 별명, 발음의 연상, 은밀한 지칭이 그런 고유성을 이룬다. 형식논리학이나 기호논리학과 달리 동어반복을 피하는 곳에서, 언어는 기초적 수준에서도 다의적, 다층적이며, 언제나 불완전하게 의도를 표현한다. 언어는 암호를 만든다. 이런 암호화는 공유된 기억, 역사적 소망,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져서 인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핵심적인, 하지만 개별화되고 사유화된 필요와 의미를 감추기도 한다. 언어는 그 자체로 다언어적이다. 그 안에는 여러 세계가 있다.
유대인의 지적 에너지는 임의적 분포 또는 통계적 확률을 뛰어넘은 것으로 보인다. 노벨상 수상자의 비율을 보면 경제학뿐 아니라 의학과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다. 유대인은 수학과 수리논리학의 특정 분야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몇몇 특출한 예외를 빼면 세계 체스계도 독점했다. 음악계에서도 어디서나 두드러진 활약을 한다. 현대 사회를 형성한 사람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처럼 서구 의식의 ‘환경’을 이룬 사람들―오든의 표현―가운데 비유대인은 다윈뿐이다.
프랑스 교육을 이야기하려면 프랑스 역사와 사회의 심층 구조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18세기 이후 프랑스 교육의 형태는 관료주의적 통일성과 위계적 엘리트주의 측면에서 필적할 상대가 근대 이전 중국뿐이다. ‘교수들의 공화국(Republique des professeurs)’이라고도 불렸던 제3공화국을 보면 프랑스는 나라의 절반이 끊임없이 나머지 절반을 가르치고 시험 보게 했다는 느낌이 든다. 학업 성적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강도는 줄었지만) 공적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다. 내가 파리에 살던 시절에는 학부모와 자녀들이 바칼로레아 결과가 적힌 벽보를 보려고 더러운 파리 거리로 덜덜 떨면서 모여들었다. 언론에는 해마다 안도 또는 실망으로 기절한 사람들의 기사가 실렸다.
자신을 인간으로, 동물 아닌 동물로 보는, 도약이자 파국의 문턱을 넘는 데―이것 역시 극단적으로 단순한 이미지다―는 백만 년이라는 잠재의식적 망설임과 향수의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헤겔주의자가 아니라도 “나는 인간이다. 나는 비인간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담긴 부정의 충격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자기 정의 명제는 항상 가설적이고, 또 심리적, 도덕적, 유전적 한정을 받는다. 거기에는 가장 근본적인 ‘타자성’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여기서 ‘근본적’이라는 것은 마르크스가 강조했듯이, 우리의 뿌리와 관계되는 것이다.
동물을 사람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비인간성과 ‘야수성’을 조용히, 하지만 본능적으로 경멸하는 증거인지 모른다. 동물은 사람에게 드문 위엄, 충성, 고통과 불의를 참는 능력을 갖춘 것 같다. 이것은 포학하고 혐오에 찬 이념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때로 동물에게 지극한 사랑과 연민을 보인다는 당혹스러운 사실을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그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칼리굴라와 말, 바그너와 뉴펀들랜드 개가 그렇다. 니체는 매 맞는 말을 보고 정신이 무너졌다. 전설이 맞는다면, 히틀러는 사랑하는 독일셰퍼드 블론디를 지옥 같은 벙커에 들여보낼 때 눈물을 흘렸다.
우리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거나 평등해야 한다는 것도 이성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 기록된 최초 시기부터 이런 주장은 유토피아적 공상이었다. 부와 권력을 지닌 자들은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과 똑같은 법적 잣대를 적용받지 않았다. 가혹한 법이건 문명개화한 법이건, 모든 법에는 절충과 불평등이 가득하다. 글을 알고, 적절한 도움을 받고, 설득력을 발휘하는 자들은 가난하고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법을 경험하고 이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인 요구와 이상은 의미가 있다. 어떤 사회는 다른 사회보다 그것을 달성하려고 더 성실하게 노력한다. 하지만 신학적 원리나 사법적 원칙 바깥 어디에 평등이 있는가?
제3제국에서도 예술사, 고전, 음악학, 의학 연구는 지속되었고, 또 많은 경우 뛰어난 수준을 유지했다. 스탈린 독재 치하에서 음악 교육, 연극 공연, 수학과 물리학 연구의 성과는 대단했고, 체육의 성취도 높았다. 검열이 진정한 천재성의 불길을 지피는 경우도 많다. 조이스는 “쥐어짜봐라, 우리는 올리브다”라고 말했다. 일상적 규모에서 사람들이 영위하는 평범한 생활은 그다지 독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히틀러 치하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스탈린, 무솔리니, 프랑코 치하 평범한 사람들의 많은 영역이 그랬다. 핵심 요소는 가정생활이다. ‘기거할’ 영역, 가정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정신은 견디고, 사람들은 정치적인 것을 피한다.
언어가 불가항력적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종교 담론, 형이상학 및 신학적 논쟁의 최정상부다. 그런 곳에서는 은유, 비유, 상징, 유추가 (단테의 [천국편]이나 시편처럼) 황홀경을 이룬다. 위대한 작가와 사상가들, [욥기],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신곡] 또는 [팡세]를 탄생시킨 이들, 키르케고르와 홉킨스 같은 이들을 통해서 언어는 스스로를 추월하고 한계를 ‘돌파’해서 다른 방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에 가닿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추월은 착시다. 그것은 수사와 문체의 독창성이 안겨주는 효과다. 언어는 종교적 경험에 관한 한 새로운 것을 말할 수가 없다. 존재론적 긍정, 초월적 존재에 대한 찬양은 동어반복이다. 그것은 아무리 빛나게 표현한다고 해도 시작한 그곳으로 돌아간다.
비유와 형상화의 수단이 아무리 많아도, 언어적 도구는 스스로의 어휘와 문법의 범위를 초월할 수 없다. 또 그 어휘와 문법은 역사적, 사회적, 형식적으로 생성되고 제한된다. 언어가 ‘신’을 말하려고 하면, 그것이 반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가장 기쁨에 넘친 기도에서도 깊은 데서 올라오는 둔탁한 슬픔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일지 모른다. 형이상학적-시적 정상부에서도 신적인 것을 정의하는 표현은 숭고한 잡담―하이데거가 ‘게레데(Gerede)’라고 부른―뿐이다.
질문은 언어가 스스로에게 제기하고, 정신이 내적 대화로 구성하는 것이다. 답은 이미 언어 자체에 프로그램되어 있다. 어쩌면 대뇌피질의 지도에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질문을 제기할 때 우리는 이미 답을 안다. 랍비 같은 변증가 칼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인류는 이미 답이 있거나 생겨날 질문만을 제기한다.
말은 말로 끝난다. 그림은 그림이다. 그 너머로 가는 암호는 없다. 논박 불가능한 논리학자 고르기아스가 보여주었듯이, 자기 부정의 역을 수반하지 않는 명제는 있을 수 없다. 또는 칸트와 비트겐슈타인이 (안타까움 속에) 가르쳐 주었듯이 합리적 논쟁, 인간의 담론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부조리로 전락하고 만다. 엄격하게 보면, 아무리 심오하고 설득력 있더라도 모든 신학은 장광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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