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대통령이 못된 남자

대통령이 못된 남자

: 고성국의 대선리뷰

리뷰 총점8.2 리뷰 6건
정가
14,000
판매가
12,600 (10% 할인)
구매 시 참고사항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9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80g | 148*210*20mm
ISBN13 9788996575870
ISBN10 899657587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정주영의 공약은 국가경영 전반에 대한 방향성과 균형감각을 갖고 제시한 게 아니다. 그냥 국민이 원하는 것을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그의 공약이 그럴듯하게 보인 이유는 그가 돈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정주영이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007년에 이명박이 “내가 대통령이 되면 주가가 3,000까지 오른다”고 호언했을 때 사람들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느꼈던 것처럼. 일종의 ‘착시효과’였던 셈이다.

정주영이 388만 표나 얻은 것은 그가 정치에 뛰어들기 전부터 인기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에서 1980년대를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정주영과 이병철은 ‘이만큼살게 해준’ 경제성장의 두 주역이다. 정치의 주역이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이었다면. 많은 사람이 박정희, 정주영, 이병철을 같은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이유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1992년, 정주영은 이미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제작됐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그러므로 오히려 역의 질문이 가능하다. “왜 정주영이 인기가 있었냐?”가 아니라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왜 400만 표에도 못 미쳤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정주영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았고, 때문에 국민은 그를 대선후보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장 기업 CEO에서 국가 CEO로」중에서

사적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이니까 잘할 거로 생각해서 공적 영역을 맡기는 거야말로 황당한 얘기다. 공적 영역에서 일할 사람은 공적 영역에 맞게 교육되고 정치 사회화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사적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일수록 공적 영역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훌륭한 기업인이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훨씬 더 어렵다는 의미다. 성공한 기업인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사적 동기와 사적 행동양식을 충분히 ‘세탁’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이동할 때 충분한 ‘정치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불쑥 공적 영역으로 건너오면 위험하다. 바람직하지도 않고. 이명박 사례에서 보듯이.

안철수는 2011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나는 공적 개념이 있는 CEO”라고 했다. 사기업의 CEO지만 공공의 이익, 공동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좋은 일이다.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처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고 공동선을 주요가치로 생각하는 기업인들이 좀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안철수는 컴퓨터백신을 무료로 나눠준 데서, 안랩의 지분 50퍼센트를 사회에 기부한 데서 이미 공적 개념, 즉 공공의 이익과 공동선의 가치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CEO임을 입증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민간기업의 CEO라는 존재론적 사실이다. 그가 CEO로 성공하고 존경받는 것은 민간 영역, 사적 영역에서의 성공 때문이다. 사적 영역에서 통용되는사적 동기에 충실한 결과다. 따라서 그가 공적 개념을 가진 CEO가 될 수 있는 근거 자체는 사적 동기에 충실했던 데서 주어졌다. 공적 동기로 행동하는 공인과 출발점이 다른 것이다. 훌륭한 기업가가 곧 훌륭한 정치가가 될 것이라는 가정이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강조하는 이유다. ---「 1장 기업 CEO에서 국가 CEO로」중에서

정치, 특히 선거에는 폭로가 난무한다. 네거티브 공세인데, 그 후보가 가진 기존 이미지와 상충되면 정치적 파급효과가 꽤 크지만 그렇지 않으면 별로 효과가 없다. 김영삼은 26세에 국회의원이 돼서 9선을 할 때까지 평생 한량처럼 살았다. 돈도 많고 미남이고 말도 잘해서 여성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요정정치 시대였다. 정치인이 단골로 가는 요정이 많았고 거기서 정치회합을 자주 해서 스캔들도 많이 났다. 그래서 ‘김영삼한테 숨겨둔 자식이 있다더라’는 식의 폭로는 당시 사람들한테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김영삼도 별일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었다. 어느 기자가 숨겨둔 자식이 있다던데 사실관계를 밝혀달라고 질문하자 한참 쳐다보다 “쓸데없는 소리” 해버리니까, 사람들은 ‘역시 김영삼답다’며 웃고 넘어갔다. 지금이라면 어림없지만 그땐 그런 대응방식이 통했다.

반면 순백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 룸살롱의 ‘룸’자도 모를 것 같은 사람이 룸살롱에 다녔다면 어떨까? 그 자체가 법률적으로는 전혀 하자가 아님에도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받는다. 이회창은 이미지 자체가 ‘대쪽’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편법을 썼다거나 불법을 저질렀다는 얘기만 나와도 사람들이 실망하고 돌아섰다. 기존 이미지하고 전혀 다르니까. 자식들이 편법으로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순간,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이회창은 발목이 잡혔다. 이회창은 정치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평생 법관을 지냈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법 마인드로 무장되어 있었다. ---「 2장 무너진 대세론」중에서

2인자는 1인자가 물러나야 1인자가 될 수 있다. 박정희는 쿠데타가 성공하자 “1963년에 민정이양하고 군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군으로 돌아가는 대신 군복을 벗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한다. 이때 김종필은 한번 참는다. 그런데 1967년에 박정희가 대통령을 또 하겠다고 나선다. 김종필은 갈등하지만, 다시 한 번 참는다. 당시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제였다. 박정희에게 더 이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1969년에 3선개헌을 들고 나온다.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의 요건을 강화하는 한편 국회의원의 행정부 장·차관의 겸직을 허용하는 것이 개헌의 핵심내용이었다.

당시 박정희가 제일 먼저 설득한 사람이 김종필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박정희 정권의 2인자인 김종필이 3선개헌을 반대하고 나선다면 아무리 박정희라도 정면 돌파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박정희의 설득 앞에 김종필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쿠데타를 함께하고 그동안 대통령으로 깍듯하게 모신 박정희가 직접 설득한 데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에 김종필은 모질게 반대하지 못했다. 야당은 당연히 3선개헌 반대투쟁에 돌입했고 여당 내부에서도 헌법을 고쳐서라도 장기집권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당신이 나서야 하지 않느냐’며 모두 김종필을 쳐다봤지만, 김종필은 고민하다 그만 주저앉았다.---「 3장 1인자가 되지 못한 2인자」중에서

이미지 정치라는 게 사실은 긍정적인 현상일 수 있는데 굉장히 부정적으로 사용된 책임의 일단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대선주자들은 이미지를 안 쓸 것인가? 이번에도 후보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그만큼 파괴력 있는 무기가 이미지다. 이미지가 강력하게 힘을 발휘할 때는 후보의 삶의 이력과 그가 제시하는 이슈, 그리고 그의 캐릭터가 맞아떨어질 때다. 이미지를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될 수 있다. 자신에게 안 맞는 이미지를 고집하는 것은 차라리 이미지 정치를 구사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가장 좋은 이미지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이미지다.

미디어 정치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면서 이미지 정치는 좀더 다양한 수단을 갖게 됐다. 그중 영향력이 큰 것이 TV토론이다. SNS가 주로 일방적 주장들로 이루어지는 반면에 TV토론은 후보들이 모두 나와 직접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TV토론은 경쟁후보를 상대로 토론하는 것이지만 메시지는 TV를 시청하는 국민을 향해 던져야 한다. 스튜디오현장의 토론에만 매몰되면 토론에서는 이겼으나, 미디어 정치에서 졌다는 평가를 듣기 쉽다. 닉슨과 고어가 케네디와 부시한테 진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 4장 이미지 정치」중에서

당시 「사상계」의 영향력은 지금으로 치면 조중동, 한겨레, 경향, KBS, MBC, SBS에 SNS를 모두 합친 정도로 보면 된다. 말 좀 하는 사람들도 「사상계」를 읽지 못하면 입조차 열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민주화나 재야운동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상계」를 거쳤다. 「사상계」에서 일하거나 글을 기고하거나 혹은 감명을 받거나. 「사상계」는 보물과 같은 존재였다. 1960년경 판매 부수 5~8만 부에 이르며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다 1967년 장준하가 국회의원이 되면서 발행인이 부완혁으로 바뀌었고 1970년 5월에 김지하의 정치풍자시 ‘오적五賊’을 실었다는 이유로 통권 205호로 강제 폐간됐다. 「사상계」 때문에 장준하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은 국회의원 몇십 명보다도 더 컸다.

1975년 장준하는 의문의 실족사를 당했다. 장준하의 의문사는 유신정권하에서 자행된 인권유린과 민주세력 탄압의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장준하의 큰아들인 장호권은 주장한다. ‘중앙정보부 요원이 장준하를 산으로 데려가서 밀어서 죽였다’고. 당시 중앙정보부는 장준하가 등산하다가 실족사했다고 발표했다. 얼마 전까지도 정부의 공식 입장은 ‘장준하 실족사’였다. 반면 유가족의 주장은 ‘중앙정보부 암살’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이루어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는 ‘의문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 5장 진보의 파수꾼」중에서

1956년 조봉암의 216만 표가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면 1971년 김대중의 94만 표 차이는 박정희가 유신을 서두르게 만들고 장준하의 의문사를 발생시켰다. 박정희는 선거를 여러 번 했는데, 가장 어려웠던 때가 처음에 치른 1963년 선거였다. 박정희는 1961년 5·16쿠데타를한 후 군으로 복귀하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며 군복을 벗고 선거에 나섰다. 1963년 5대 대통령선거다. 그때 상대가 윤보선이었다. 이 선거에서 윤보선은 박정희를 집요하게 빨갱이라고 공격한다. 남조선노동당 전력이 그대로 남아 있고 형 박상희가 핵심 당원이었음을 알 만한 사람은 알 때였으니 윤보선이 박정희에게 색깔론을 덮어씌우려 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색깔론’이다.

이 선거에서 윤보선은 15만 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진다. 박정희는 색깔론에 맞대응하지 않고 ‘경제만이 살길이다’를 외쳤다. 5?6쿠데타 당시 내세웠던 혁명공약이 있다. 대한민국 국시는 반공이다, 경제 발전시키겠다 등등. 반공과 경제성장이 박정희의 슬로건이었다. 그런 박정희였건만 윤보선으로부터 빨갱이라고 공격받았다. 박정희는 이를 철저히 무시해버린다.
---「 5장 진보의 파수꾼」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6건) 회원리뷰 이동

한줄평 (0건) 한줄평 이동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2,500원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품절 상태입니다.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