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그 결과는 역사의 우연이 아니다. 이익이 어떤 다른 인간적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경제체계에서 그것은 예측 가능한 결과이다. 자본주의의 먹을거리 체계는 노동 및 다른 모든 비용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값싼 먹을거리를 엄청나게 과잉공급한다. 그리고 그 결과 저주받는다. --- p.16
전 지구적 규모로 진전된 신자유주의는 지구화로 알려졌다. 지구화는 우리가 오늘날 ‘1%’라고 부르는 막강한 국제자본의 소유자들이 증진시킨 계급프로젝트이다. 신자유주의는 우리 자신이 경험해 온 그 어떤 삶의 결과도 전적으로 우리(즉, 우리 각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관념을 강화한다. 이 관념은 우리를 가능한 한 취약하게 만들어서 더 쉽게 착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p.21
1970년대 후반에 미국과 영국은 기업과 부자에게 감세정책을 실시하고, 공공재를 민영화하고, 환경·노동규제를 풀고, 무역을 자유화했다. 그러한 정책들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자유시장’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 것의 규칙―거대 기업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생산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부터 수입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이윤을 은닉하는 자유를 누리면서, 조세 책무를 회피하고 환경과 건강의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는 것―을 장려했다. 이러한 일련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로 알려졌다. --- p.21
경쟁, 그리고 자신의 자본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충동, 즉 더 많은 돈과 부를 창출하고자 하는 충동은 자본주의에 본질적인 것이다. 경쟁을 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보다 효율적인 기술 또는 공정을 이용하고/하거나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덜 지급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해야만 한다. 이것은 그들의 경쟁자가 똑같이 하기 전까지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경쟁자를 전적으로 능가하는 유일한 방법은 몸집을 더 불리고 새로운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항상 팽창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기업은 왜 동일한 규모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 없는가? 자본주의는 왜 소기업들을 더 큰 기업들에 합병하는 대신 많은 소기업을 만들어낼 수 없는가? 단순하게 답하자면, 그것은 자본주의 기업들이 결국은 자신들의 시장을 포화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본가들이 제품을 생산하는 것만큼 빠르게 소비할 수 없다. 그러면 재화와 저축한 돈이 쌓이고, 자본은 정체된다. 노동자들은 해고되고, 그리하여 수요는 더욱 줄어든다. 유일한 해결책은 새로운 시장을 찾거나 다른 누군가의 시장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쟁의 토대이다. --- pp.48~49
이것이 바로 “고장 난 먹을거리 체계를 수리하라”라는 요구가 잘못인 이유이다. 체계가 고장 났다고 칭하는 것은 그 체계가 한때 사람, 경제, 환경을 위해 잘 작동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먹을거리 레짐 이후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를 특징지은 폭력과 파괴의 세 세기를 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먹을거리 체계는 고장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자본주의 먹을거리 체계가 작동하기로 되어 있는 대로 정확히 작동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먹을거리 체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우선적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 p.80
그러나 자본주의 먹을거리 체계에서 먹을거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거리가 단지 먹는 것만이 아니라 잠재적 자본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하나의 상품이라는 사실이다. 먹을거리는 (사람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사용가치와 (하나의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시장이 활성화되기 전에도 사회적 필요노동 시간의 양이 먹을거리 가격의 한도를 정해 왔다. --- p.86
자본주의의 재주는 이러한 무형의 가치들을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교환가치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과 음료에서부터 자동차와 주택단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팔기 위해 노력하는 마케터들은 이 고수익전략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제품과 브랜드에 건강, 희망, 행복, 심지어는 인간 영혼의 개선과 같은, 무형이지만 감정적으로 강력한 ‘가치’를 주입함으로써 그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 p.105
자본주의는 임금을 줄이는 데 필요한 절약 요인을 어디에서 발견했을까? 여성의 재생산 노동(가사노동, 돌봄노동)에서 찾았다. 여성이 수행하는 청소, 급식, 신체적·감정적 돌봄은 노동인구―그리고 노동력의 원천―를 유지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생산에 대해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자본가들에게 항상 무료였지만, 경쟁과 기술 발전이 기업으로 하여금 이윤추구과정에서 비용을 줄이고 절약할 곳을 찾아 나서게 함에 따라 더욱 중요해졌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공장 노동자로서의 여성 착취에서 전업 주부로서의 여성 착취로 전환한 것을 상당 부분 설명해 준다. --- p.214
인종차별주의는 단지 사고방식에 의거한 편견이나 개인적 행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제도에 깊숙이 뿌리내린 역사적 유산의 하나로,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 비해 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특권을 부여한다. 인종차별주의―개인적, 제도적, 구조적―는 또한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선의의 노력들을 방해한다. --- p.222
우리는 자본주의를 변혁시키지 않고서는 먹을거리 체계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먹을거리 체계를 바꾸지 않고서는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가부장제, 인종차별주의, 계급주의를 종식시키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먹을거리 체계 그 어느 것도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더 나은 먹을거리 체계를 원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바꿔야만 한다. 이것은 어떠한 사회운동에도 아주 어려운 요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먹을거리 운동에 대해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모든 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체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먹을거리 체계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배치해야 하는가?”이다. --- p.248
먹을거리 체계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에서 먹을거리 운동이 갖는 전략적 이점은 그 체계 내의 주요 억압들이 자본주의 자체의 주요 억압들이라는 것이다. 기아, 먹을거리 불안정, 빈곤, 사회적 권리 박탈을 기존 먹을거리 체계 내에 ‘고착된’ 문제가 아니라 젠더·인종·계급 억압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구축된 자본주의의 일부로 바라볼 경우, 먹을거리 체계 내에서의, 그리고 그 체계를 넘어서는 변혁적 변화의 길이 무엇인지가 점점 더 분명해진다. --- p.249
생물영양강화의 개척자와 최신 기술에 정통한 식품회사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기아 종식은 단순히 과학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고 믿게 만들고 싶어 한다. 이것은 기아가 어느 누군가에 의해 그리고 무엇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발생하는 것이며, 과학과 산업이 기아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이 굶주리는 까닭은 과학이 그들을 먹여 살릴 그 무엇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먹을거리를 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농부들에게서 영양이 부족한 까닭은 그들에게는 균형 잡힌 먹을거리를 재배할 충분한 땅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다. --- p.280
쓰레기는 자본주의 과잉생산에 고질적인 것이다. 음식 쓰레기를 상품으로 전환시키거나 푸드 뱅크에 기부하는 것은, 음식 쓰레기에 의존하는 새로운 경제활동을 창출할 수는 있지만, 쓰레기의 원인을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음식 쓰레기를 종식시키는 열쇠는 과잉생산을 끝내는 것이다. --- p.286
이 책은 당신과 늘 함께하기를 바라는 두 가지 가르침을 담고 있다. 하나는, 우리의 먹을거리 체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본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그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많은 잉크를 엎질렀다. 당신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다른 하나는, 사랑만으로는 우리의 먹을거리 체계를 변혁시키지 못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세상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 pp.343~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