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선과 악에 대한 갚음이 현세에서 예외 없이 주어지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잠언의 가르침이 헛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지혜 문학 수업 시간에 “착한 사람은 복을 받나요?”라는 질문을 몇 차례 해 보았습니다. 응답에는 매번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늘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착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복을 받는다고들 대답합니다. ‘복’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대답도 있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세속적인 의미에서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껏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과연 어느 만큼의 행복을 얻습니까? 그것이 과연 행복의 길일까요? 선한 삶은 그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분명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 22p '제1부 잠언 스승들이 가르쳐 주는 인생의 지혜' 중에서
욥과 세 친구가 한 차례의 대화를 마친 다음, 욥 13,20-14,22에서 욥은 다시 하느님을 향합니다. 여기에서도 그 첫머리에 욥의 요청이 제시됩니다. “저에게 이 두 가지를 하지 말아 주십시오. …… 당신의 손을 제게서 멀리 치우시고 당신에 대한 공포가 저를 덮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 아니면 제가 아뢰겠으니 저에게 대답해 주십시오.”(13,20-22) 정확히 말한다면 욥기는 고통을 없애 달라고 하기보다 고통에 대한 설명을 요청합니다. 메마른 지푸라기 같은 인생, 곧 죽어 사라져갈 목숨을 괴롭히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욥의 탄원은 하느님이 과연 선하고 거룩하고 정의로우신지를 의문에 부칩니다.
욥이 하느님께 요청 드린 것은 한마디로 “이 고통을 설명해 주십시오!”입니다. 욥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기에, 그의 고통의 원인이신 하느님은 불의하신 분으로 여겨집니다.
― 73p '제2부 욥기 고통의 신비' 중에서
그런데 어떻게 코헬렛은 하느님이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3,11) 만드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태양 아래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과 때의 문제에서도 코헬렛은 인간의 한계에 맞닥뜨립니다. 영원을 알 수 없는 인간이기에, 여기에서도 코헬렛은 허무를 체험합니다. 애쓴 보람도 알 수 없고, 지금 내가 체험하는 기쁨과 슬픔이 과연 영원의 전망에서도 그대로의 가치를 지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딪힌 벽 앞에서 코헬렛은 다시 한번 신앙을 선택합니다. 인간이 알 수 없을 뿐, 하느님은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3,11)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116~117p '제3부 코헬렛 인생의 허무함' 중에서
벤 시라의 시대에, 다른 민족들의 문화를 보면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조상들의 가르침을 따르기보다 새로운 학문과 종교를 추종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 찬란한 지혜를 이루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 욥기, 코헬렛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은 이미 그러한 시도가 어디까지 이를 수 있고 어디에서 멈추는지를 깨닫습니다. 이제 집회서는, 참된 지혜는 하느님께 있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인간에게는 최고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 없이 인간의 지혜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기에, 잠언 첫 장에서 말했듯이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라는 것이 구약 성경의 지혜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준칙이 되었던 것입니다.
― 133p '제4부 집회서 가까이 있는 지혜' 중에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과 의인들의 실제 운명은 대조적입니다. 그래서, 의인이 일찍 죽거나 자식이 없는 것은 전통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설명할 수 없는 불행이지만 이제 지혜서에서는 그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2,16 참조). 이 세상에서 누리는 복만으로 한 사람의 행복을 판단하는 태도는, 내세를 믿지 않는 데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멸성이 전제될 때에는, 의인들에 대한 보상이 현세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그것으로 그의 삶이 실패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로써 지혜서는 기존의 지혜 문학서들과 대화하며, 인과응보의 원칙에 근본적으로 회의를 품지 않고 내세에 대한 희망을 고통받는 의인들을 위한 응답으로 제시합니다. 현세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갚음이 내세에서는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162p ‘제5부 지혜서 불멸에 대한 희망에서 인생의 답을 찾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