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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권은 밤에게

우선권은 밤에게

[ 양장 ] 작가정신 소설락-003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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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9월 1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90g | 126*198*20mm
ISBN13 9788972884200
ISBN10 89728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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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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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의 시간 안에 있다. 이삿짐 박스처럼 가득 채우는 시간, 영수증처럼 무심히 구겨지는 시간, 빈 시소처럼 갑자기 기울어지는 시간, 낮 동안 흐른 시간을 잼처럼 저어 묵처럼 굳히는 시간, 밤의 시간. --- p.43-44

누군가 나를 본다면, 나는 그저 하나의 검은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나는 그저 하나의 검은 덩어리로 보이는 커다란 검은 외투를 입고, 그 외투에 달린 커다란 검은 모자를 덮어 쓰고 밤의 거리를 걷는다. --- p.45

봄날의 얼마 동안, 마치 나무가 심한 병을 앓는 것처럼 보였다. 펄펄 열이 끓어오르고 괴롭게 뒤척이고 혼잣말을 횡설수설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붉은 꽃송이가 불쑥불쑥 돋아나 무거워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나뭇가지를 감쌌다. 이내 알전구가 깨지듯 펑펑 꽃이 피었다. 꽃을 피우느라 힘겨워 보이는 나무를 바라보는 일이 힘겹게 느껴졌다. 목련은 예쁘고 환하고 아름다웠지만, 뜨겁고 어지럽고 무서웠다. 그리고 얼마 후 골목길 바닥은 잔인한 전쟁터처럼 변했다. 검붉게 시들어 짓이겨진 목련꽃잎들이 온통 핏자국처럼 바닥을 뒤덮었다. 그게 또 그렇게 힘겨워 보일 수 없었다.(……) 봄이면 피할 수 없는 한바탕 요란한 사건. 마음을 졸이며 담장 너머 자목련을 올려다보던 기억. 그러나 힘겹고 버겁다 생각하면서도,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 차라리 빨리 지나갔으면 바라면서도, 나는 그 압도적인 봄의 사건을 내심 기다렸던 것 같다. --- p.104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야 해요."
“……."
“사람은 잘 먹지 않고 잘 입지 않고 잘 자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잘 살 수는 없어요." --- p.159

여름과 겨울, 방학 때면 나는 할머니가 있는 T읍의 미니슈퍼로 돌아갔어요. 내내 할머니와 지내다 개학이 다 되어서야 서울로 돌아왔죠. 열세 살의 여름방학. 나를 할머니에게 데려다주고 엄마와 계부는 휴가를 떠났어요. 일주일이 흐른 뒤, 계부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어요. 엄마가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이었어요. 엄마는 사흘 뒤에 사망했어요. 병명은 급성 패혈증. (……) 계부와 나와 할머니는 그렇게 엄마를 잃었어요. 태어나지 않은 아기도 잃었어요. 얼마 뒤 나는 다시 양 씨에서 권 씨가 되었어요. 나는 가끔 그때의 내 이름을 중얼거려보곤 해요. 오래전의 일이에요. 나는 이제 온밤 내내 잘 수 있어요. 밤이 되었으니 그럴 수 있어요. 아주 오래전의 그때처럼요. --- pp.161-162


부슬부슬 분무기를 뿜어대는 것처럼 비가 내리고 있다. 해가 뜬 걸까, 어둑어둑 흐린 하늘 탓에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밤이 완전히 지난 걸까, 이제 밤이 아니라면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이트룸에 가도 되는 걸까. 나는 장독대집 앞 골목을 몇 번이나 왕복하며 날이 더 밝기를 기다린다. 구겨지고 뜯겨진, 딱 알맞은 옷들이 비에 젖는다. 나는 춥고 뜨겁고 아프고 무섭다.
--- p.170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스물두 살, 어린 여자"나"는 계부가 운영하는 서울 어느 동네의 작은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일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집을 소개해주며 조금씩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아직은 많은 것들이 낯설고 서툴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집을 남다르게 느낄 수 있는 재능이 있다."나"는 어느 날 자신만의 방 한 칸을 찾고 있는 남학생을 만난다. 또 어느 날은 나이트룸과 함께 집을 옮겨 다니며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쌍둥이 여사님들을 만난다. 그리고 나이트룸 속으로 들어가 온전한 밤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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