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9월 24일 |
---|---|
쪽수, 무게, 크기 | 634쪽 | 742g | 142*210*35mm |
ISBN13 | 9788952766519 |
ISBN10 | 8952766512 |
발행일 | 2012년 09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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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34쪽 | 742g | 142*210*35mm |
ISBN13 | 9788952766519 |
ISBN10 | 8952766512 |
추리 소설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많이 등장한 단골 메뉴는 밀실 살인 사건이었다. 엘큘 포와로나 홈즈는 밀실 살인 사건 해결의 귀재였다. 밀실이 주는 흥분과 카타르시스는 추리·스릴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주 등장한다.
《쿠퍼 수집하기》는 뉴질랜드 산 〈범죄 스릴러〉라는 특이점 외에도 〈밀실〉이라는 공간을 전면에 등장시켜 고전적인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도시 크라이스트 처치. 연일 4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범죄의 도시라는 오명에 어울리게 매일 신문 지상에는 살인, 납치 사건이 오르내리고 있다.
멜리사 X라는 별칭을 얻은 여성 살인마가 어느 덧 이 도시의 어둠을 장악해 버렸다.
전직 형사 테이트는 교통사고를 내고 4개월의 복역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그의 옛 동료 슈로더는 일련의 살인 사건 해결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고, 설상가상 그가 차로 친 여자의 아버지가 나타나 실종된 딸(엠마 그린)을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 테이트는 홀로 얼굴도 모르는 살인마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어느 날, 자기 집 차고에서 납치된 범죄 심리학자 쿠퍼.
그를 데려온 에이드리언은 정신병력이 있다. 오랫동안 쿠퍼를 지켜 봐 왔다.
범죄자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그래서 그를 〈수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이 《쿠퍼 수집하기》가 된 연유다.
그런데, 단순치가 않다. 누가 누구를 수집한 것인지, 누가 연쇄 살인범인지, 이들 사이에 숨겨진 사연은 결코 녹록치가 않다.
에이드리언이 수집한 것은 쿠퍼 뿐만이 아니었는데...
에이드리언이 쿠퍼를 수집했다면, 엠마 그린은 누가, 왜 납치했을까?
베일에 가려진 멜리사 X에 숨겨진 비밀은?
“인생은 여러 가지 유혹으로 가득 차 있어요. 신이 베푸신 아이러니 중의 하나죠.
우릴 가장 강력하게 유혹하는 것들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들이니까요.“
사건은 일견 복잡한 듯 보이면서도 명쾌하고 단선적이다.
이 책은 추리물로서의 성격은 약한 편이다.
여타 스릴러물에서 볼 수 있는 잔인함도 약한 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추리 소설, 스릴러 소설 이라고 부르기 보단 범죄 소설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릴 듯 하다.
저자는 말한다. 진정한 ‘호러’는 범죄 그 자체 라고.
치밀하고, 간담을 서늘케 하는 범죄는 그 자체가 호러이고, 공포 인 것 이다.
600 페이지가 넘는 두께를 자랑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혀지는 것은 잔인함이 아니어도 스릴러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내 컬렉션이 된 걸 환영해"(P. 74)
폴 클리브의 데뷔작 '쿠퍼 수집하기'는 이 스릴러가 뉴질랜드 산(産)인 것만큼이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두 가지나 되는데 하나는 위에 인용한 말처럼 이 소설이 '연쇄 살인마'를 모으는 사람의 이야기 라는 것입니다. 연쇄 살인마를 사냥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미드로도 만들어진 '덱스터'를 통하여 본 적이 있지만 정말로 그가 왜 연쇄 살인을 하며 그런 일을 하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듣기 위해서 그냥 모으는 사람의 이야기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이 작품엔 또 하나의 독특성이 있는데요. 그것은 보통 스릴러의 경우 쫓기는 자와 쫓는 자가 일대일로 겨루는 이를테면 '톰과 제리'식의 게임인데 반하여 이 스릴러 '쿠퍼 수집하기'는 그 구도에 앞서 말한 연쇄 살인마를 수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끼어드는 '3파전'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지운 감독의 영화 중에 세 명의 캐릭터가 서로 물고 물리는 레이스를 펼쳤던 영화가 있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같은 게임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소설을 주로 이끌어가는 그 세 명을 잠깐 소개해 본다면,
PROFILE NO.1 : GOOD GUY
먼저 '좋은 놈'인 테이트 전직 형사가 있습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하고 범인 체포에 아주 능력있는 형사였지만 자신의 딸과 아내를 차로 들이받고 그 때문에 딸을 죽인 자를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사로이 처형한 일로 죄의식을 느껴 결국 형사를 그만두고 경력을 살려 사립탐정을 했으나 딸 아이는 영영 떠나버렸고 사랑스러웠던 아내는 그 사고로 거의 식물인간이 되어 요양원에 있어 그 괴로움에 거의 삶을 포기하듯 살아가다 결국 음주 운전으로 한 여자아이를 들이받고는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이제 막 풀려난 자입니다. 출감하자마자 예전 그의 형사 동료 슈로더가 그들이 살고 있는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를 가장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는, 제복 입은 사람만 살해한다고 해서 '제복살인마'란 별명이 붙은 여성 연쇄살인마 '멜린다 X'를 추적하는 걸 도와달라고 의뢰해 옵니다. 하지만 그 의뢰에 채 뛰어들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변호사 도노반 그린의 방문을 받습니다. 사실 그는 테이트가 음주운전으로 들이받았던 여자, 엠마 그린의 아버지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원수와 다를바 없는 테이트의 변호사가 된 건 그 역시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테이트를 직접 처단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죽이려는 찰라 테이트의 간곡한 설득으로 딸 아이의 생사여부를 지켜보고 결행하기로 작정하게 되었고 결국 기적적으로 딸 아이가 살아나자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죠. 그렇게 도노반 그린과 테이트는 같은 죄의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테이트의 처단을 도노반 그린만 유일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찾아와 말합니다. 엠마 그린이 사라졌으니 찾아 달라고. 그 때 살려준 빚을 그것으로 갚으라고.
PROFILE NO.2 : BAD GUY
그리고 나쁜 놈, '쿠퍼'가 있습니다. 그는 엠마 그린도 다니고 있는 대학의 범죄 심리학 교수입니다. 주로 연쇄살인마를 상담하여 정신분석을 하고 있는데 책도 한 권 저술했지만 그리 빛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도 수집하는 게 있습니다. 연쇄살인마의 신체 부위 입니다. 그는 그러한 병적인 수집욕을 범죄심리학자로서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언제 돌출될지 모르는 살인 충동을 그것으로 애써 잠재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 그 연쇄살인마의 엄지손가락을 페덱스로 받았던 날 그는 테이져를 맞고 납치됩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한 남자가 '내 컬렉션이 된 걸 환영해'라고 말하더니 사람을 죽일 때의 느낌을 들려줘 라고 말하죠. 가까스로 살인 충동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스스로는 선량한 시민이라 여기고 있는 쿠퍼로서는 정말 미치고 펄쩍 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PROFILE NO.3 : STRANGE GUY
쿠퍼를 가두고 광기로 몰아가는 사람. 그가 바로 '이상한 놈', 에이드리안입니다. 그는 오래도록 살인 병력을 가진 이들과 함께 정신병원에 있었고 그 때문에 연쇄살인마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관련된 책도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정신적 성숙은 채 자라지 못해 자신의 욕망을 어디까지 실현해야 하는지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상한 놈'입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뿐이니까요. 책으로만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연쇄살인마의 병적인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연쇄살인마의 신체 부위를 수집하는 '쿠퍼'를 수집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에이드리안은 그 쿠퍼가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읽은 대로 그의 살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그의 기호에 맞는 여인까지 납치해오는 성의를 보이죠. 그는 쿠퍼에게 연쇄살인마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 집요하게 묻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비극적인 과거와 관련된 것이었죠. 그가 쿠퍼를 수집해 알고 싶어했던 건 그 과거와 관련해서 자신의 진짜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쿠퍼는 에이드리안에게 있어 일종의 대차대조표와 같은 것이었죠. 그에게는 살인도 수집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자신이 진짜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었죠.
소설은 이렇게 세 명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면 떠오르는 의문은 이것이죠. 왜 작가 폴 클리브는 이런 설정을 택했던 것일까? 그러게 정말 왜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잠시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 영화로 돌아가보죠.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유명한 서부 영화 'GOOD, BAD AND UGLY'에 대한 오마쥬이기도 합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그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이었습니다. 북부의 산업자본주의가 남부의 전통적인 농경자본주의를 대체하던 순간이었죠. 그렇게 현대 자본주의의 한 원형이 만들어지던 시기였습니다. 레오네는 일부러 그 시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영화에 나오는 'GOOD, BAD AND UGLY'의 세 사람을 모두 지금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들의 원형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죠. 거기엔 타인이 어떤 처지에 빠져있던 아무런 관심없이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돈만 추구하는 'GOOD'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타인의 삶 따윈 파괴해 버리는 BAD'이 있으며 있는 거라곤 오로지 돈에 대한 저급한 욕망 밖에 없어서 신념도 없고 용기도 없어서 그저 비굴하게 이리저리 오고가면서 돈 벌 궁리만 하는, 그래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렘의 후예라고도 할 수 있는 'UGLY'도 있습니다. 즉 레오레는 보여주려 했던 것이죠.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이 셋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김지운 감독도 비슷한 생각에서 그 영화의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그가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은 굳이 웨스턴 틀을 가져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은유였습니다. 레오네의 미국 남북전쟁과 똑같이 일제라는 돈에 종속된 한국 사회를 나타내는. 그러니 거기에 나오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사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은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많이 이상화되고 키치화되어 본래의 그 뜻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아무튼, 폴 클리브가 하고자 하는 것도 레오네와 김지운과 비슷합니다. 그 역시 이 세 인물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투영하려 한 것이죠. 특히 이 '신자유주의'라는 지옥 속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을 말이죠.
네, 이 소설 '쿠퍼 수집하기'는 이 지옥을 견뎌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크라이스트처치'에 대한 묘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소설의 '크라이스트처치'는 어떠한 도시입니까? 폴 클리브는 소설 초반에 그 곳이 어떠한 곳인지 꽤나 공들여 묘사합니다. 그를 통해 밝혀지는 그 도시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그 곳은 '도살자'나 '멜린다 X'와 같은 연쇄살인마들이 활보하는 도시이고 테이트가 교도소에 4개월 가량 갇혀있는 동안 범죄율이 50%나 증가한 도시이며 엠마 그린의 사소한 친절조차 범죄로 오해되어 따귀를 얻어맞는 그렇게 타인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도시였습니다. 테이트가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이렇게 바로 대답할 정도로 말이죠.
"이 도시 말이야. 아니, 사회라고 해야 하나? 나도 잘 모르겠어. 자넨 이 크라이스트처치를 어떻게 생각하지?"
"이전보다 아주 나빠졌지."
난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즉시 대답했다. (P. 21)
폴 클리브는 이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얼마나 지옥인지 보여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결정타까지 날려줍니다.
이제 그들은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라는 글자가 가로로 새겨진 2미터 높이의 회색 벽돌담을 지나쳤다. 이 도시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환영합니다'란 문구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가 처치(CHURCH)에 스프레이로 X 자를 긋고 '도와주소서(HELP US)라고 적어놓기까지 했다.(P. 22)
'크라이스트처치'는 이런 장소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중에 밝혀지는, 에이드리안도 있었던 '그로버 힐스'와 닮았죠. 겉으로는 사회의 부적응자를 요양하고 치료하는 병원이었으나 그 실상은 수감된 자들에게 가족을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그 사적인 복수를 허용해 주었던 그 '그로버 힐스' 말이죠. 그렇게 '그로버 힐스'는 '크라이스트처치'의 원형과도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늘로부터의 구원이 필요할 수 밖에요. 하지만 신은 죽었고 구원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사적 복수의 공공연한 실행은 이것을 뜻하는게 아닐까요). 자신이 저질렀던 사적 복수로 인한 죄책감을 이제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갚으려 하는 테이트, 오로지 혼자 살아남는 것에만 전념하는 쿠퍼 그리고 사회가 가한 억압 속에서 정말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려 자기 존재의 진실을 알기 원하는 에이드리안은 어쩌면 우리의 것과도 닮아있을지 모르는 각 자가 만들어가는 그 구원의 궤적을 보여주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쿠퍼가 에이드리안에게 대차대조표였듯이 테이트, 쿠퍼 그리고 에이드리안 역시도 우리의 대차대조표인 것이죠.
장장 631페이지에 걸친 여정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접해보는 뉴질랜드산 스릴러에다 연쇄살인마를 수집하는 이야기에다 3파전으로 전개되는지라 더욱 흥미를 느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특히나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고조되어 더욱 읽을 맛이 났습니다. 그러니 이 흥미로운 '대차대조표'를 여러분도 한 번 보심이 어떨까 싶어요. 어쩌면 이 소설을 읽고나서 쿠퍼를 수집한 에이드리안이 그에게 처음했던 말을 여러분 역시도 하게 될 지 모르겠네요.
"내 컬렉션이 된 걸 환영해!"
엄청난 두께의 책을 만나게 되면 늘...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이 책의 내용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어떤 내용들이 숨어 있기에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스노우맨’, ‘레오파드’, ‘악녀를 위한 밤’. 책은 두껍지만 앉은자리에서 숨넘어가도록 호기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 만난 책은 과연 그렇게 읽을 수 있을지 기대가 컸다. 무엇보다 뉴질랜드 작가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본, 중국, 미국, 영국,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북유럽 국가의 책. 이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많은 나라들의 책 중 뉴질랜드 작가의 책을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들 나라에서의 범죄 소설은 다른 나라들과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호기심을 자극하게 될지 읽기 전부터 기대 만발이다.
38도의 고온에 육박하는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지. 범죄 심리학 교수 쿠퍼는 출근길에 모르는 사람에게 납치된다. 그는 깨어나자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비슷한 시각. 음주 운전으로 4개월을 복역하고 나온 테이트는 막 출소하여 집에 돌아왔다. 그를 반긴 사람은 음주 운전으로 자신이 죽을 뻔하게 만든 소녀의 아버지. 소녀의 아버지는 테이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소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 아직 죽지 않은 것 같으니 아이를 찾아 달라 부탁하게 된다. 소녀 납치 사건을 파헤치던 테이트는 그 사건이, 단순 납치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된다. 사건으로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더 많은 죽음과 더 많은 사건과 만나게 되는데....
이만한 두께의 범죄 소설은 단순히 한 사건만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갈 수 없다. 지금 발생한 사건 이외의 다른 사건들이 줄줄이 사탕인양 연결되지 않으면 이렇게 방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없으니까..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좀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들이 사건과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이 사건들이 앞으로의 내용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의문을 가졌었지만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속도감이 장난 아니다.
범죄심리학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쿠퍼 교수의 이중성에 놀라게 되고, 쿠퍼 교수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수집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에이드리언은 어쩜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평범하게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쿠퍼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경악할 만하지만, 어린 시절 정신 병원을 들락거린 에이드리언과 그 남자의 어린 시절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엄마에게서 버림받고, 동급생들의 따돌림과 무시가 훗날 이 사회를 경악하게 할 범죄자를 키웠다는 것. 그 분노와 창피함을 어디에도 풀 수 없었던,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면서 ‘비명의 방’에 감금되어 죽지 않을 만큼 맞아도 호소할 수 없었던 그들의 아픔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의 잔혹함만 크게 부각시켜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자라야 했던 사회적 구조 변화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지금 당장 그들에 의한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고 무시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사회에 불만이 많고, 사회에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감정이 억눌린 사람들이 난동을 부린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테니까...
인종을, 나라를 막론하고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어느 나라의 범죄소설이든 점점 더 잔혹하고 무서워지는 것 같은 느낌은 나만 그런 것일까? 뉴질랜드를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청정지역이라고 말하는 나라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이렇게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인간이 가진 잔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보통 따돌림이라는 건 항의를 하면 할수록 더 커지고 선생님들은 손도 쓸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에이드리언의 반 친구들은 그가 좋은 학생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걸 뭉개버렸다. (137)
가장 예민할 청소년기에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무시했다면 어쩜..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괴물을 키워버렸는지 모른다. 따돌림을 당한 친구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다면, 그 작은 괴물은 서서히 작아져 가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마음속에 괴물들이 점점 커져가는 지도 모른다. 혹.. 우리도 무심코 친구의 마음에 괴물을 키우게 만든 것은 아닐까?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