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이 어떠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아무렇지 않게 “좋은 것 같아요”라고 했다가 “좋으면 좋은 거지, 같은 건 뭐냐. 좋은지 아닌지 네 생각도 똑바로 말 못 하냐.”라는 추궁으로 눈가가 촉촉해지게 면박을 당한다거나, “사람들이 그걸 많이 좋아하더라고요”라고 했다가 “이랬더라고요, 저랬더라고요, 하지 말고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고 말하란 말이다”라는 말과 함께 번개의 섬광과 같은 아버지의 눈초리를 마주하게 된다거나, […] 한동안 아버지를 피해 다니게 된다. 그러면 또 이 아버지는 서운해진다. “요즘 수상한데. 윤경이가 왜 이렇게 슬슬 아빠를 피해 다니는 것 같지?”
--- p.57~59
“네가 이러면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하는 거야. 알고 있지?” 모르고 있었다.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한 일이라고 알고 있지는 않았다. 이 일로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한 가지 이유는 선생님의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다음 이유는, 내가 책임감을 느끼고 감당해야 할 질책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명성에 내가 그런 식으로 책임져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 p.70
“네, 네…… 예스 걸이 되지 말고, 윤경아. 씩씩하게. Girls, be ambitious. 소녀여, 야망을 가져라.” 말하면서 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똑똑히 기억해라, 부디 내 말이 그 거죽을 뚫고 들어가 네 영혼의 뼈까지 들어가 박히기를 바란다, 하는 바람과 당부가 눈에 쟁쟁 울리는, 빤히 들여다보는 아버지의 그 눈빛과 눈빛과 눈빛. 그러나 아버지가 소녀에게 야망을 가지라고 외칠수록 나는 어쩐지 더 작아지기만 했다.
--- p.105
“평생을 괴로워해도 다 알 수 없었는데.”
“그게 괴로우셨어요, 평생?”
“지금도 괴로워, 제일.”
“뭐가요?”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건가. 그게 제일, 괴롭지.”
‘제일’이라고. 아버지는 괴롭고 어려운 말을 한다. 거실 빈 구석으로 돌리는 아버지의 시선이 가여웠다. 자식으로서 부모가 가여워질 때 그 사이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 아버지는 어쩌자고 지금도 그게 제일 괴로운 평생을 살아온 걸까. 지금도 괴롭다는 아버지의 외로운 말은 이후로 나를 여러 날과 밤 동안 힘들게 한다.
--- p.108
나는 아버지 인생에서 큰 사건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을 나에게 물려주려고 애썼지만, 나는 나를 알았다. 내게는 아버지가 풀 수 없는 문제를 이어 풀 만한 역량이 없었다. 아버지는 너무 컸고 나는 너무 얕았다. 애초에 그러고 싶은 의지도 없었다. 다만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강의는 계속되었다.
--- p.135~136
늦은 아침을 먹고 시작한 자전거 배우기가 북한산 언저리로 해가 빨갛게 넘어갈 때까지 성과 없이 계속되는데도, 아버지는 좋은 표정으로 나를 도왔다. […] 그날의 아버지가 내게 평생 따뜻하고 든든한 모습으로 남았으니. 한번 배운 자전거 타기는 평생을 간다. 깊게 새겨진 인상도 평생을 간다. 엄격한 아버지의 나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도 그날의 아버지만 생각하면 와장창, 하고 의심이 산산조각나곤 했으니, 내 기준으로 부모 자식 간에 자전거 가르쳐주고 배우기를 넘을 만한 정은 없는 거다.
--- p.160
나의 부모는 자식들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한 적도 없다.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가 매일같이 출근하는 대신 집에서 책 읽고 글만 쓰는 생활을 얼마나 바랐는지도 알고 있다. 치우침은 있었지만, 마음의 다함, 정성의 부족은 없었다. 아버지는 2017년 여름에 어떤 일로 나와 통화하면서 “어릴 때 너에게 그렇게 희생을 강요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미안하다. 너도 그냥 어린아이였는데.” 하고 사과했다. 이런 말은 어려운 말이다. […] 잊고 살았던 일들은 내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기억이 되어서 새로 불어왔다. 아이들의 입학식에 가면서, 졸업식에 가면서, 학부모 상담에 가면서, 학교 시험을 챙겨 도우면서 솔솔 여기저기가 꺾였다. 자라면서 부모에게 이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거구나. 부모에게 이런 일을 도와달라고 말해도 되는 거구나. 뒤늦게 억울한 마음에 다 지난 고릿적 일을 쓸데없이 돌아보게 되면서 좀 쓸쓸했다. […] 아프면서 달래지기도 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기울이지 않았던 방향의 관심을 손녀들에게는 기울였다. 손녀들의 입학식과 재롱잔치, 졸업식, 전시회와 생일모임을 비롯해 이름 붙이기도 뭣한 온갖 기념과 행복의 자리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었다. 이럴 때는 무언가 보상을 받는 마음과 함께 아이들이 부럽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 p.169~170
“에에에이! 거 무슨 바보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사는 건데!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나!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의사가 시골에서 요양할 것을 처방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며 크게 화를 냈다. 나는 화내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내가 뭘 크게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화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짐작은 간다. […] 당신의 어린 딸에게 스트레스가 있다는 것과 스트레스가 그 정도로 심하다는 것과 그것이 몸의 증상으로까지 나타난다는 것, 의사에게서 나온 대처법이라는 게 시골 목장의 요양밖에는 제시된 바 없다는 상황에 대해 불안하고 속이 상했던 것이다. 불안하고 속이 너무나 상한 나머지 그만 화가 나버렸던 것이다.
--- p.189
정상적 사고가 가능한 상태라면 나는 아버지와 독립된 인격체고, 나에게 그런 대우는 부당한 일이다, 그렇게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고 매번 넘겼겠지만, 또 가끔은 실제로 그렇게 넘기기도 했지만, 이미 아버지의 이름값을 다 못 하는 부끄러운 딸이라는 열등감과 죄책감에 한껏 마음이 작아진 지 오래였다. […] 더구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닥쳐 번뇌해본 적도 없으므로,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으며 힘들었다고 말하면 정말 매일의 생계가 고민이고 내일이라는 미래가 절망일 정도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짓는 셈이 되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벼락이나 맞는 게 아닐까 싶어 겁이 나도록 많은 혜택도 누리며 살았다. 그래서 더 선뜻 누구에게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 일로 괴롭다고 하는 것에 또 다른 죄책감을 느꼈다. 온실 속의 화초가 마냥 어리광 부리고 투정하고 보채는 양 느꼈다. 구체적 현실이 아닌 추상적 현실로 괴롭다는 배부른 고백은, 차마 할 수 없었다. […] 나도 산골짜기에서 나오고 싶었다.
--- p.202
어린 딸에게 문학론을 설파하던 아버지는 ‘밥풀 같다’라는 말로 끝을 맺을 때가 많았다. “요 밥풀 같은 게 뭐라고 윤경이한테 이렇게 길게 얘기를 하고 있는가 말이다, 아빠는.” […] 제자분들이 다녀가고 나서도 밥풀이 등장했다. 신춘문예에 당선한 제자분들의 당선 소감 같은 것들을 읽다가도 “밥풀 같은” 하며 조용히 웃었다. TV에도 밥풀들이 있었다. 신문에도 밥풀들이 있었다. 책에도 밥풀들이 있었다. “밥풀 같은” 하고 말하는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가보면 늘 작은 것, 어린 것, 미성숙한 것, 닳지 않은 것, 나이든 것, 숨겨진 것, 억울한 것, 소중한 것, 슬픈 것, 안타까운 것, 잊혀진 것, 잊혀질 뻔한 것, 말하지 못했던 것, 그러나 다시 살아난 것, 허무한 것, 그러나 무시할 수 없고 자꾸 생각나는 것, 잊으려 해도 기억나는 것, 기억하고 싶어서 기억나는 것들이 있었다.
--- p.222
문학은 언제고 마지막 한 겹을 끝내 펼쳐 본디 몸을 만나고자 하는 노력이다. 울보의, 바보의, 보통 사람의 깊은 인생을 부르는 마음이다. 울보 공주는 무엇이 그렇게 슬펐을까, 바보의 관은 왜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고 그이들의 눈물과 관을 더 높은 데서 그러나 더 깊게 들여다보려는 까치발이다. 울보와 바보와 밥풀이 신화가 되는 세계. ‘자기들이 주체 못 하는 허무한 세계를 살았던’, 고비마다 모퉁이마다 어리둥절해하며 살았던 밥풀 같은 사람들의, ‘그러나 신화보다 더 신화적이고 더 전설적’인 세계와 그 세계의 기억을 덜 슬프고 덜 안타까워지도록 비춰보려는 애씀. 내가 아는 아버지의 문학은 언제고 그런 것이다. 밥풀들의 신화이다.
--- p.223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가 이미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버린 존재같이 무섭고 낯설었다. 마지막 기간에, 나는 낯설고 멀게 느껴졌던 병상의 아버지보다도 활자 모양의 아버지가 내가 알고 기억하는 아버지 같았다. 병원에서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온 날은 잠이 올 때까지 아버지의 책을 읽었다.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 어느 순간부터, 육신이 아닌 글자가 곧 아버지로 느껴지는 감각적 현실이 슬퍼서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 아버지가 마시다 두고 간 빈 술병을 보아도, 책장에서 책을 찾다가 아버지에게 선물받았던 책에 눈길이 멈출 때도, […] 한구석씩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닿아 있는 물건들로 혼자 있어도 집이 시끌시끌했다.
--- p.239~240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남은 사람의 마음은 무엇과 만나도 시끄럽게 마련이기에 제사를 올리고 기도를 하는 것 같다. 건너간 이의 마음만은 나와 달리 평안하고 고요하기를 소원하기에. 그것이 시끄러운 기억과 싸우는 이 세상 사람이 저 세상의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이라고, 약해진 마음에는 여겨지기에.
--- p.242
쓰기는 읽기와 달랐다. 읽기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왔지만 쓰기는 언제나 마음을 달래주었다. 아버지와의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며 자식으로서 아버지에게 작은 보답을 하는 기분도 들었다. 생전의 아버지에 비추어 짐작할 뿐이고 아버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할지 알 길은 없지만, 나에게 그 기분은 아주 중요했다. […] 하루가 지나면, 하루보다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기억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사라졌고 마음에는 자꾸 덧붙여진 생각이 끼어들었다. 며칠 전에 적어둔 글을 다시 읽으면 그 글을 적던 때와는 이미 달라져 있는 내 머릿속 기억의 무력함에 당황했다. 겁이 났다. 기억이 믿을 곳은 기록뿐이었다. […] 봄의 한가운데였다. 두 달 동안 적은 글의 분량이 꽤 되었다. 작은 마을에, 내려서 다녀갈 정거장이 세워진 것 같았다. 추상적 현실의 세계였다. 다급하게 받아 적은 기억과 마음이 거기에 살고 있었다. 옛적의 아버지와 내가 두런거리고 있었다.
--- p.279~280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기억에는 힘이 있다. 추상적 현실에는 힘이 있다. 아니라도 믿겠다. 나에게는 힘이 되니 믿겠다. 아버지가 깃들인 영원한 이야기를 허공에 묻어두고 힘들 때마다 별을 보듯 성스럽게, 아니 울면서 쳐다보겠다. 아버지는 내게 영원한 신화이다. 극복하고 싶으면서 간직하고 싶은 신화이다.
--- p.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