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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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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296g | 110*190*22mm
ISBN13 9788972759980
ISBN10 897275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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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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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S를 피해 여기까지 왔다. 단순한 이름 이상의 S!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많은 것, 생각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모든 것을 넣어두는 문 닫힌 골방 같은 것? 무엇이건 그 골방에서 찾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지지 않는 꿈속의 미로 같은 것. 그 문을 열기만 하면 기억의 잡동사니 사이에서 무언가 실마리가 찾아질지도 모르지만 골방 앞을 매일 외면하고 지나간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 나올까봐 다가가기 두려운 그 문.
--- p.64

어릴 적 우리는 구름샘 마을의 3형제, 그 이상이었다. 자라면서 친구가 되었고 나와 그녀는 성인 문턱에서 결혼했다. 우리에게는 연애의 과정이 없었다. 그녀와 S 사이에는 간단히 요약할 수 없는 역사가 있다. 나와 S 사이에도 많은 상처를 남긴 가족사가 있다. 어느 집엔들, 어떤 가족 사이엔들 전쟁이 없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결과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와 S의 사이에는, 나와 S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놓이게 되었다. 누구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말자. 우리 각자의 실수가 모여 우리의 운명을 만들었다.
--- p.68~.69

트럭에 대강 짐을 챙겨 야반도주해 큰아버지네 마당에 도착한 날 아침을 나는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다. 짐 사이에 끼어 누나 옆에서 잠을 깨니 생소한 곳에 와 있었다. 스산한 아침, 겨우 눈을 떴을 때 눈에 들어온 굳게 잡은 작고 통통한 두 개의 손. 잡은 손에서 갈라지는 두 가지를 따라가 보니 이쪽저쪽에 두 얼굴이 있었다. 미소를 띠고 사촌을 맞기 위해 달려 나온 한 소년. 그 소년의 손을 힘주어 잡고 새로운 마을 식구가 될 트럭 위의 소년을 큰 눈망울로 집중해서 바라보던 한 소녀. 선잠에서 깨어 투정할 나이 일곱 살 때였다.
--- p.96

사실은 우리 이리로 도망 왔어. 대안이 없어서. 너도 눈치챘겠지만 아기가 죽었어. 10년 만에 생겼는데 말이야. 다시 뺏긴 거야. 당연해. 우리는 둘 다 자격이 없었거든. 아기를 잃고 난 다음에야 알았어. 그런데 대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네가 알다시피 시작이 잘못되었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겠어. 그게 다가 아니거든…….
--- p.118

S가 건사하는 부친의 유업은 번창했다. 그의 말더듬증이 비결인 듯, 주변에는 속이는 사람 못지않게 그를 돕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을 잃은 대신 새로운 재능을 부여받은 것 같았다. 그의 소유가 된 물려받은 땅만은 유독 값이 치솟아, 건축업을 하던 지향이네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 전원주택 단지를 짓게 되었다. 대성공이었다. S는 그중의 한 채를 우리들을 위해 남겨두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집 이름을 지었다. ‘파랑대문 집’.
--- p.123

이것을 내가 너희 둘에게 전할 때가 언제가 될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이 녹음 파일이 네게 먼저 도착할지 내가 그 전에 네 앞에 나타날지 그건 잘 모르겠어. 그 전에 내가 이 파일을 모두 삭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볼 수 있겠지. 나는 가끔 이 파일을 듣고 있을 너와 상미를 생각해. 그러나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어. 너, S의 얼굴도, 상미의 얼굴도 떠오르지가 않아. 블랙아웃이야.
--- p.146쪽

“너와 약속한 것 이제 실행하려고 해.”
걸으면서 나는 소리 내어 그 문장을 발음해본다. 천천히, 외국어를 처음 배운 사람처럼 어색하게. 그래 이 문장은 내게는 외국어다. 외국어처럼 반복해본다. 우선 상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 상미가 요청한 단 하나의 결혼 조건은 내가 S에게 가서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얻어오라는 것이었다.
--- p.165~166

“성호야 나는 고향에 가도 갈 데가 없어. 아니지 누구네 집에나 갈 수 있지만 그래도 그건 좀 그렇잖아.”
애를 셋이나 키우다 보니 성호에게는 자면서 듣는 기술이 생긴 모양이다. 그는 조금도 창피해하거나 미안한 기색도 없이 부스스 깨어나 대답했다. 마치 자기 집이니 가라는 듯이.
“뭐 걱정이야. 파랑대문 집에 가면 되잖아.”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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