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아주 초기부터 이런 분열에 맞닥뜨렸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든다. 간혹 사람들은, 첫 세대 기독교는 순수하고 차분한 허니문 기간을 누리다가 그 이후에 상황이 나빠졌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신약성경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하나도 없다. 첫 출발부터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소환 명령에 순종한 이들을 한 가족으로 결집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처지에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싸움판에 끼어들어 무리하게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바울이 어리석게 처신하지 말라고 말하는 13절에서 그런 기미를 감지할 수 있다. 그들은 메시아가 조각조각 나뉘셨다고 암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바울이 (그는 이 대목에서 지혜롭게 말을 아끼지만, 또한 아볼로와 게바가) 메시아와 상당히 비슷한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하지만 답이 빤한 이런 질문(“메시아께서…나뉘셨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렸습니까?”)도 정곡을 찌른다. 하나의 관점에서 내려다본 이 편지의 전체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메시아야말로 중요한 분이시다. 최고위 사도에서부터 가장 어린 회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분의 몸을 이루는 구성원일 뿐이다.
--- p.26 「고전 1:10-17 분열을 조심하십시오!」 중에서
바울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 관한 메시지가 세상의 눈에는 실로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 같지만,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에 인생의 가장 심오한 신비를 푸는 실마리가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이렇게 말하면서, 여기 7절을 비롯해 다른 곳에서도, 바울은 그들의 문화와 철학이 이교도 풍으로 ‘신비’를 캐내려 했던 방식을 꼬집는다. 바울은 그들을 유대적 토대 위에 단단히 붙들어 둔다.
사실 복음의 신비가 정말 신비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고린도나 대다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 중에, 중동의 반체제적 도시 외곽의 사형 집행장에서 인생과 우주, 하나님, 아름다움, 사랑, 죽음의 신비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바울의 말처럼,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지혜롭지도 유력하지도 않고, 귀족도 아닌 이유가 그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하면서 바울 자신이 두려워 떨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 pp.41-42 「고전 2:1-5 십자가의 강력한 메시지」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는 긴 유월절 축제가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모다. 그리스도인이 내쉬는 모든 숨은, 유월절 양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드리는 조용한 유월절 감사 찬양이다. 그리스도인이 취하는 모든 행동은 무궁한 유월절 축제 의식의 일부다. 이 유월절에 결코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누룩 넣은 빵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은 비유 언어다. 예수님의 백성들이 살아야 할 이 새로운 유월절 인생에서, 누룩에 해당하는 것은 낡은 생활 방식에 따른 행동이다. “옛 생활의 누룩”이란 이교도들이 회심하기 전에 가담한 행동 유형이고, “악행과 사악함의 누룩”이란 그리스도인들이 조심하지 않을 경우 다시 유혹에 빠질 수 있는 행동 유형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인 “누룩 넣지 않은 빵”이다.
--- p.89 「고전 5:6-13 ‘누룩’을 제거하십시오!」 중에서
모든 것에서 자유로우나, 이제 모든 사람의 종이다! 바울이 7:22에서 말했듯이, 그리스도인 종은 주님의 자유인이고, 그리스도인 자유인은 메시아의 종이다. 자유는 중요하다.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그것은, 누가 봐도 제멋대로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소립자의 자유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지향점이 있는 자유다. 곧 메시아를 위한 자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자유,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자유다.
--- p.154 「고전 9:19-23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사도의 자유」 중에서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 생각하라고 바울은 그들에게 촉구한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뿐 아니라, 분파 다툼, 주의 만찬에서 지속되는 사회적 분열, 영적 은사를 자랑하려는 유혹에 맞설 수 있다. 당신은 또 빛 가운데서 영적 은사를 이해할 것이다. 영적 은사는 현 시대에 교회를 세우는 일시적 도움이고, 그런 만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다음 장에서 다룰 주제다. 하지만 사랑은, 지금은 미완성 음계이지만 하나님의 새 세계에까지 이어질 것이다. 어느 날 성자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음악을 완성하실 것이다.
--- p.230 「고전 13:8-13 사랑: 하나님의 미래로 가는 다리」 중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여러 위험에 처해 있다고 여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상황이 어떻게든 해결되기만을 바라며 이리저리 떠밀려 다닐 수는 없다. 다름 아닌 복음의 본질 때문에, 복음 안에 받아들여지고 부름받은 사람들은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바울은 그들이 영적 건강과 복음의 지속적 사역을 위해 그런 책임을 감당하기를 바란다. 단계마다 그들은 이들 명령 하나하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복음이 폭력, 협박, 오만을 통해 전진할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건 사랑으로 하십시오.” 이것이 이 편지 전체의 요지였고, 바울은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그들에게 이 점을 주지시키고자 한다.
--- p.297 「고전 16:10-14 디모데와 아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