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은 부드럽지 않다. 다시 읽어 보아도 억센 글이다. 무엇을 찾으려 했다기보다 버리려 했던 쪽이고, 시가 무엇인지 생각하기보다는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 것이 다. 할 수만 있다면 시의 갑옷을 벗어 버리고, 시에 대한 생각 에서 멀어져 시를 생각해 보려 한 책이다. 모여 있는 글들이 각각 다른 동작을 하면서도 시의 비무장지대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보여 주는 까닭이다.
--- 「펴내며」 중에서
소용이 없다. 소용이 없이 이루어지고 다시 소용없는 것으로 회복된다. 너는 이러한 종류의 순수한 타락에 들러붙어 있다. 이 타락을 설명할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유리되어 있다. 모든 것이 동시적이다. 한 무리의 열렬한 부재가 뚫고 지나가는 벽을 너는 지금 보고 있다. 관통된 벽, 너는 그것을 쓴다. 그것을 만든다. 쓰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만드는 것으로 이해의 길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너는 너 자신과 아무 관련도 없는 관련을 만드는 데 너 자신을 남용하고 있다. 어둠인지 빛인지 알 수 없는 세계의 번쩍거림이 네 안에서 번들거리는 파편들을 명령하지만 너는 그 명령을 자극할 뿐 부르지 않는다. 너를 무관하게 만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하여 너는 존재하는 것이다. 쓴다는 것, 그것은 볼 수 없는 것이다.
--- 「말한다는 것, 그리고 쓴다는 것」 중에서
시를 쓰는 일은 무엇을 원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일이다. 혹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일이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눈앞에 펼쳐지는 시간과 공간, 사물들, 현실의 이름들을 거부하고 그것들로부터 멀어지기를 계속해야 한다. 그들과의 밀착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들과의 사이에 틈을 만들어야 한다. 일종의 공황 상태다. 의식은 무력증을 드러내고, 두뇌는 기능을 잃는 듯이 여겨진다. 지각, 감각, 기억, 연상 등은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급속히 둔화되어야 한다. 정신이 무장해제되는 것, 바로 이것이 시의 토대이다.
--- 「시론2」 중에서
미래파는 너무 늦게 문화 운동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 이런 느낌은 이들 문학의 새로움으로 이야기되는 것이(적어도 소재의 측면에서는) 다른 장르들을 통해서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었다는 당혹감으로 배가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미래파는 너무 빨리 주목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비주류성이 자체적으로 강력하고 진정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은폐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숙성에 필요한 무관심이라는 존귀한 선물을 받지 못했다. 그런 여유 없이 곧바로 주 목을 받았고 그들의 비주류성은 평단의 환호 속에 장식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너무 빨리 주류가 되어 버린 것이다
--- 「미래파를 위하여」 중에서
예술은 손상을 받은 것, 더러워진 것이다. 뒹구는 것, 뒤집어쓴 것, 무언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이다. 예술은 어떤 추가적인 무게를 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 치명적인 관여를 품고 있는 것, 휩쓸림 속에 변형된 것이다. 원형이 사라진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몸이 없어진다. 미 속으로 파열하는 것이다./ 이 파열은 예술의 발생을 인증한다. 예술은 미를 상상하고 깨우는 것이 아니라 미의 침입을 받음으로써 발생한다. 동 시에 이 침입으로 예술은 소멸한다. 예술의 발생은 예술의 소멸로 나타난다.// 예술은 미에 의해 대체된다.
--- 「미의 침입」 중에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모든 예술가들은 전위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가장 멀리 나아가는 부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생의 한 시기를 자신을 사로잡은 기존 예술의 완성된 형식을 실험하고, 그 실험이 끝난 후에는 실험실을 빠져나오게 된다. 실험실을 나온다는 것은 그들이 어떤 곳에서 든 전통의 부정이라는 역학 위에 서야 하는 운명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실험실 밖에서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새로운 감각, 새로운 방법, 새로운 미학을 수립하는 데 일생을 바친다. 그것은 때로 새로운 색상을 찾는 일과 같은 측정할 수 없는 작업에서부터 빛의 산란과 사물의 형상을 추적하는 보다 미시적인 방향, 또는 색과 형체를 일그러뜨리거나 극도로 단순화시킴으로써 스스로 극지에 이르게 되는 경향과 같은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이 각자의 방식에서 전위라는 프리즘을 통해 나타날 수 있다.
--- 「나는 늘 자신으로부터 달아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