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손에 쥐어진 이 책엔 위대한 신학자 그레고리오스 성인의 삶과 업적이 실제 있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자세하게 서술 표현되었다. 이전 연구서에선 언어적 표현 방식이 지금과는 달랐다. 그때의 연구 방식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선 더 자유로운 표현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일종의 문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p.14
그레고리오스와 바실리오스는 보통 주일 예배에 참석한 후에는 영적이고 신학적인 대화와 토론을 즐겼다. 이렇게 함께 영적 동행을 하던 중, 어느 주일 저녁, 두 사람에게 기묘하게도 동시에 “서로가 도우며 함께 수도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이 서로의 영적 진보에 대해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순간 두 젊은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꿇고서 스스로에게 또 하느님께 약속했다. 수도사가 되어 함께 수도할 것을 말이다. 그레고리오스가 교회 안에서 독신의 삶을 살 것임은 이미 정해졌다. 이것은 하느님의 징표를 통해 예시된 것이고 그 자신도 결단하고 굳게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바실리오스와 함께 고행수도사가 되어 속세에서 멀리 떠나 살기로 약속한 것이다.
--- p.63
“내 속마음을 알고 싶다면, 제 말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나는 다른 사제들에 대해 망했었습니다. 나의 눈은 비참한 상황을 많이 보았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제는 어디 있습니까? 너도 나도 다 사제가 되려고 합니다만, 어떤 사람은 영광을 위해, 어떤 사람은 돈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악한 과거 행적을 감추기 위해 사제가 되려 합니다. 그들은 어디서 목자의 일을 배웠습니까? 언제 한 번이라도 금욕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사기꾼처럼 그리스도교를 이용할 따름입니다.”
--- p.91
자기를 낮추고 비우는 겸손의 날개를 달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의 빛으로 무장하여 신학의 거룩한 영역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당시엔 성 삼위 하느님 그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을 특별히 ‘신학’(Θεολογιiα)이라 불렀다는 점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신학은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경륜’(Θειiα Οικονομιiα), 다시 말해서 하느님이 피조세계에 행하신 모든 일, 특히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시어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 말하는 것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 p.203
“이보게. 그들은 바뀌지 않을 걸세. 그들은 내 설교의 힘을 증오했어. 성 삼위 하느님 신학을 펼쳐 보이는 나를 증오했지.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고 칭송하는 것을 그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네. 이해가 가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것일까? 그렇지 않다네.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이 주신 것이야. 나는 그분의 도구일 뿐일세. 내가 말하고 설명하는 것은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란 말일세. 그분의 영광이 지 결코 내 영광이 아니란 것일세. 신학은 또 어떤가? 그것도 내 것이 아닐세. 성령이 내게 밝혀주신 것을 나는 말할 뿐일세. 결코 내 이론과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란 게지.”
--- p.353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는 인성을 수용하셨고 이를 통해 사람을 치료하셨습니다. 사람은 조상 아담과 함께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은 자기 의지와 생각을 따라 하느님을 버리고 허무(虛無)와 죄 속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너무도 사람을 사랑하셨기에, 성 삼위의 두 번째 위격, 성자이신 말씀으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 말씀이 사람의 존재 전체를 수용하심으로써, 사람 전체와 연합하고 사람 전체를 신화시켜 구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p.435
“내 영혼아, 놓치지 말고 꼭 붙잡아라. 끝까지 깨끗하게 머물러라.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거라. 이제 곧 고통은 끝나고 말리라. 강도도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갔는데, 우리라고 들어가지 못하겠느냐? 그리스도가 결코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니, 조금만 더 싸우자, 더 힘을 내자.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구나.”
--- p.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