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자아의 실체라고 주장하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無我)를 제시하고 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인 삼법인(三法印)에서 처음으로 주장하는 일체의 모든 존재는 자아의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유심의 철학사상을 토대로 자아의 존재를 부정하는 아공(我空)과 의식의 대상경계도 실체가 없다는 법공(法空)을 제시하며, 일체의 모든 법은 공(一切皆空)하며, 독자적인 실체의 본성은 없다고 무자성(無自性), 무실체(無實體)라고 주장한다.
『금강경』의 법문은 공사상의 실천으로 금강과 같은 반야의 지혜를 깨달아 체득하도록 공의 실천을 강조하는 법문으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자아의식의 관념을 텅 비우도록 설한 것이다. --- p. 53-54
최상제일희유지법(最上第一希有之法)
『금강경』의 법문은 많은 법문 가운데 최상, 제일이며, 이러한 법문을 듣는 일은 지극히 희유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반야경전 가운데 『금강경』은 초기에 성립되었으며, 선남자 선여인들에게 소승법이 설해지고 있는 시대에 처음 대승의 법문을 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15분에 『금강경』의 법문은 불가사의, 무량의 공덕이 있으며 대승의 발심자(大乘者)와 최상승의 발심자(最上乘者)들에게 설법한다고 했다. 큰 원력의 발심을 하지 않고 작은 가르침에 만족하는 소승의 수행자들은 이 『금강경』의 법문을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희유한 법문이라고 한다. 희유한 법이란 21분에서 설하는 무법(無法, 空)의 법을 설하는 법문(無法可說)으로, 일체의 대상경계를 초월하고 반야의 지혜를 구족하여 열반 해탈을 이루는 『금강경』의 법문이다. --- p.143
무소득 무소유 무소구(無所得 無所有 無所求)
중생심의 자아의식과 의식의 대상경계인 번뇌 망념이 텅 빈 진여 본성의 경지이다.
법을 깨달아 체득한 득법(得法)과 제자에게 불법을 전했다고 하는 전법(傳法)의 의미도 불법사상에 의거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 얻을 법이나 전할 법이 있다면 유상(有相)의 종교가 되며, 결국 집착의 대상경계를 만들기 때문에 외도의 가르침이 된다. 무소득, 무소유, 무소구의 경지에서 진여 본성의 지혜가 여법하게 생명활동하는 진여법을 깨달아 체득한 경지가 득법이며, 그러한 사실을 스승과 제자가 확인하고 확신하게 된 사실이 전법인 것이다.
선에서도 ‘마음 밖에서 도를 구하는 자를 외도(心外求法者 外道)’라고 하면서 마음 밖에서 도를 구하지 말라고 주의 주고 있다. --- p.300-301
육체적인 형색과 모양, 혹은 음성을 통해서 유물론적으로 진여 본성의 진아인 여래를 친견 하려고 하는 것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일이다. 불법은 진여 일심의 여법한 지혜작용을 설하는 심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80권 『화엄경』 「십지품」에 '삼계는 오직 일심의 조작이다. 일심 밖에 별다른 법은 없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三界唯一心, 心外無別法,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고 설하는 일체유심조의 유명한 법문이 있다. --- p.321
사람이 살면서 어려운 일이 닥쳐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여법하게 진실을 알지 못하고 보질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점과 사유가 부족한 사람은 부정적인 사고로 판단하여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지금 좋은 해결 방안이 없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영어로는 no where(no way)라고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어려운 일은 나 자신의 일이다, 이 일을 지금 여기서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누가 언제 해결하겠는가? 영어로 now here(now a day)라는 말은 곧바로 지금 여기서 자신의 일을 통해서 새로운 지혜를 만든다는 것이다.
부처의 지혜는 중생의 번뇌 망념의 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의 일(一事)을 통해서 하나의 지혜(一智)는 『법성게』에서 설하는 ‘진여 자성은 시절인연에 따라서 부처의 지혜로 이루어지는 것(不守自性隨緣成)’이다. 불성을 지니고만 있으면 중생이지만, 시절인연에 따라서 여법하게 지혜로 사유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수많은 중생심의 어려운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경험과 체험은 자신을 부처의 지혜를 구족하게 하는 능력이 된다.
부처의 지혜로 불가능은 없다. 원력으로 이루는 긍정의 지혜는 중생을 부처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절망과 무기력의 포기에서 희망과 지혜로운 생명활동을 되살리는 힘이 된다. 선근 공덕을 이루는 원력의 힘은 중생심의 의심을 불심의 신심으로 전환하게 하며, 불가사의한 지혜인 부처를 이루고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도의 회향이 된다.
--- p.467-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