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인 나를 부르시는 방법으로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렇다면 왜 질문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선포하시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치시기도 하고, 권면하거나 도전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질문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가 대답하게끔 인도하십니다. 스스로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변화의 자리로 자발적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질문은 우리를 살리는 질문입니다.
--- '프롤로그'중에서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 하며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와 질문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찾아와 영적 현주소를 끊임없이 물으십니까? 죄에 대해 심판하시기 위해서, 저주하시기 위해서, 죽음을 주시기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이유는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기를 바라시고, 죄를 이길 수 있다는 소망의 길을 제시하고자 끊임없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 '죄 사함의 은혜'중에서
우리는 너무 어리석어서 자기가 자기 생명의 주인이라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동일하게 질문하십니다. “오늘 밤에 내가 네 생명을 취하면 네 인생은 어떻게 되겠느냐?” 안개같이 사라져서 영원한 형벌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에 정말 소망이 있습니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소망이 있습니다.
---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중에서
우리의 신앙고백은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가운데 드려지는 신앙고백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의 인생에서 나는 누구냐?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이 가득하고, 하나님보다 자녀, 성공, 돈, 건강, 인간관계, 여가 활동 등 세상 것들을 더 우선하는 네 삶의 한복판에서 나의 존재는 무엇이냐?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님은 지금 우리의 고백을 듣기 원하십니다.
--- '나의 신앙고백'중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도 바꿔 주십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고 세상을 붙들고 씨름합니다. 이제는 그런 싸움 말고, 하나님과 씨름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눈물과 통곡, 아픔이 있다면 하나님께 매달려야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내가 속이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 봐야 남는 것은 목숨의 위협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기도하고, 부르짖으십시오. 우리가 살길입니다.
--- '하나님이 부르시는 이름'중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물 위로 걸어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하셨다는 의미요, 기대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며,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주십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되지 않아 고통스럽고 어렵지만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믿어 주십니다. “너는 풍랑 이는 물 위를 능히 걸을 수 있다”고 하시며 신뢰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이처럼 놀라운 기적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납니다.
--- '믿음의 확신'중에서
제자라는 신분이 신앙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직분이나 신앙 연륜이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기도와 말씀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생의 말씀에 붙잡혀 내 삶을 통해 주님께 보답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영생을 받은 우리는 정욕과 욕심대로 살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나를 사랑하신 주님, 나를 위해 생명을 바치신 주님께 우리의 모든 인생을, 생명까지도 드려야 합니다.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 '십자가의 길'중에서
마리아는 죽어서 무덤에 머물러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 예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죽어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찾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부활하신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 안에 능력과 치유와 영생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 '소망의 이유'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 죄 사함의 은총을 받은 우리 모두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주님의 물음 앞에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결단하고 주의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애타게 부르시는 외침을 듣고 도전받아 응답하는 자들을 통해 놀라운 복음의 열매를 맺으십니다.
--- '사명의 자리'중에서
성령을 받고 성령과 동행하는 인생은 삶의 태도와 의미, 목표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거나 강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표와 비전,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드리고자 하는 결단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 '변화'중에서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라는 예수님의 질문대로,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됩니다. ‘보는 것’을 달리 말하면 ‘비전’(vision)입니다. 이 땅을 보면서 이 땅의 것만 집착하고 사모하는 인생은 이 땅에서의 인생만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비전을 보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을 삽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 '하나님 나라의 비전'중에서
사명 이전에 사랑입니다. 사명 이전에 관계가 중요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외에 다른 이유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면 그 사명은 변질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로 족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