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엔데라 선생님이란다. 오늘부터는 플라츠 선생님 대신 내가 가르칠 거야.”
“플라츠 선생님은요?”
앞줄에 앉은 여자아이가 묻자 엔데라 선생님이 말했다.
“플라츠 선생님을 직접 보여 줄까? 마법 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렴.”
아이들이 번쩍번쩍 손을 들었다. 영어 문법보다는 마법이 훨씬 끌렸다. 엔데라 선생님은 검은 가방을 뒤지더니 실크 손수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왼손에 손수건을 올려 두고 다른 손으로 그 위에 원을 그리며 속삭였다.
“페인 킨터 렙틸리아.”
손수건을 휙 잡아당기자 손바닥 위에 통통한 초록색 도마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도마뱀은 붉은 혀를 날름거렸다. 선생님이 도마뱀을 높이 치켜올리자 교실 안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쳤다.
“자, 여기 플라츠 선생님이 있다. 너희들이 보다시피 누군가가 선생님을 도마뱀으로 만들어 놓았단다.”
아이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샘은 고개를 쭉 뻗고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 도마뱀의 두 눈이 너무도 불쌍해 보였다. 샘은 정말 그 도마뱀이 사라진 플라츠 선생님이라고 믿을 뻔했다.
--- pp.13-14
“이 사람은 누구지?”
샘이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의 그림을 가리켰다. 근육질의 두 팔로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노인이었다.
“오딘이야.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강력한 신.”
오딘이라는 말을 듣자 샘은 심장이 잠시 멈추는 듯했다. 엔데라 선생님이 뭐라고 했더라? 오딘의 후손을 찾는다고 하지 않았나?
“오딘에게 아들이 있었어?”
“그럼, 오딘에게는 아들도 많고 딸도 많았어. 토르에 대해서 들어본 적 없어?”
샘은 키득키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엔데라 선생님이 영화 속 스타를 찾고 있는 거라면 사람을 잘못 보셨는데.”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서 나온 거야. 토르의 아버지가 오딘이야.”
킬리가 강하게 말했다.
“그럼 오딘의 후손 가운데 아직까지 살아 있는 후손이 있어?”
“엄밀히 말하자면 북유럽 신화의 신들은 모두 죽었어. 라그나로크라는 최후의 전쟁이 벌어진 뒤로는 이 땅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어.”
“다른 영역이라니?”
킬리는 골똘히 생각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오딘은 아홉 개의 영역을 창조했어. 세상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이 있고…… 이런 식으로 말야. 그렇지만 한 영역만이 다른 영역에서 분리되어 있지. 지하 세계는 낮은 영역에 속해 있어. 우리가 사는 세계, 그러니까 인간 세계는 중간 영역에 있고, 신들의 고향 아스가르드는 가장 높은 영역에 있지.”
신난 킬리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 pp.31-32
“너를 잘 알고 있지, 새뮤얼 바르코니언. 나는 지혜의 여신, 보르라고 한단다. 네 안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구나. 어느 혈통이 이기게 될까? 모두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질문이지.”
“무슨 말씀이세요?”
여인은 한 팔을 내밀고 손을 펼쳤다. 손바닥에서 하얀 나비가 날개를 퍼덕였다.
“네 아버지의 피가 너를 한쪽 길로 이끌고 있지.”
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여인이 이어서 할 말이 두려웠다.
“그럼 우리 엄마의 피는요?”
“네 어머니의 피는 너를 또 다른 길로 데려갈 거야.”
보르는 다른 쪽 손을 펼쳤다.
“때가 되면, 누굴 구하고 누굴 희생해야 할지 네가 결정해야만 할 거야. 세상의 운명이 네 결정에 달려 있단다.”
샘은 보르를 돌아보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보르는 부드럽게 손을 저었다.
“우리는 네 결정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단다.”
“우리? 그 우리가 누구죠?”
“신들을 말하는 거란다,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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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옳은 일을 하려고 죽을힘을 다 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하위가 여전히 엔데라에게 잡혀 있단 말이에요.”
샘이 울먹이며 말했지만 레고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위는 중요하지 않아.”
“나에게는 중요해요. 하위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혹시라도 네가 눈치채지 못했을까 봐 이야기하는데, 날이 갈수록 붉은 태양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농작물은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어. 스카라 브레이에서는 식량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광장에 늘어서 있단다.”
“정말 안 됐군요.”
“정말 안 됐다고?”
레고는 성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어떻게 마녀들이 태양을 저주할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을까? 모두들 궁금해 하며 자기 머리를 긁어 대고 있지. 하지만 최고 의회 의원들이 그게 모두 너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야. 그때 너를 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그게 나 때문이라는 걸 안 지 얼마나 되었죠?”
“태양에 붉은 핏줄이 처음 생겼을 때, 마녀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했다며 자랑했단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어. 그래서 기록을 찾아보았지. 붉은 태양이 다시 나타난 건 바로 너의 열두 번째 생일날이었더구나.”
“최고 의회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나요?”
“알았다면 네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것 같니? 최고 의회에서는 너를 다시 스카라 브레이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가엘과 에이팔리언 함대는 너를 빼고 아스가르드로 떠날 것이다. 가엘은 자기가 간청을 드리면 오딘께서 만나 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레고가 대답했다.
“안 돼요. 내가 아스가르드에 가야만 해요. 제발,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세요.”
샘은 레고에게 애원했다.
--- pp.22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