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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을 홍 세트

붉을 홍 세트

[ 전3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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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296쪽 | 1448g | 145*200*60mm
ISBN13 9791104920509
ISBN10 110492050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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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냥! 내 열 냥에 저 계집의 초야를 사리다!”
중늙은이의 호기로운 목소리 뒤로 왁자한 웃음소리가 따라붙었다.
“어림없지. 저 계집은 내 것이네! 내 열두 냥을 내겠소.”
“그렇다면 나는 열닷 냥이오!”
멀리 완산칠봉 봉우리가 보이고, 뒤편으로 전주천이 유유히 흐르는 전주 기방 월야관(月夜館).
기방 안에서는 대발식(戴髮式)이 한창이었다.
동기(童妓)는 머리를 얹은 후에야 어엿한 기생이 되는 법. 일패기방에서야 점잖게 머릿값만 내주고 물러가는 군자들도 있다지만, 월야관에서 머리를 얹는다는 건 곧 처녀의 하룻밤을 사는 것을 의미했다. 주객들 사이 경쟁이 붙은 탓에, 해웃값은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
“이러다가 서른 냥까지 가는 게 아닌가?”
“어이쿠, 나는 이만 빠지겠네. 계집 머리를 올려주려다가 대들보가 휘청하겠구먼.”
일찌감치 발을 뺀 사내 하나가 입맛을 다셨다.
검은 너울로 얼굴을 가린 동기를 본 사내가 입 끝을 비죽거렸다. 제깟 게 얼굴을 가리고 앉아 있을 건 또 뭐란 말인가. 아무리 절색이라 한들 결국 몸을 팔러 나온 계집, 천하디천한 창기일 뿐이었다.
“서른 냥!”
우렁찬 목소리에 사내들이 숨을 죽인다.
사내의 손을 타지 않은 처녀래 봤자 결국 천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계집의 머리를 얹어주는 데 서른 냥이라니.
“서른 냥! 우리 나리님들 배포가 어쩜 이리 크실까!”
기생 어미이자 월야관 행수인 옥련이 요란하게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더 부르실 분 아니 계십니까?”
옥련이 흡족한 음성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서른 냥은 그럴싸한 집 한 채의 대들보를 세울 수 있는 돈이다. 게다가 월야관은 어엿한 기방이랄 수도 없는 곳이었다. 기방 흉내를 낼 뿐, 실상은 은근짜(隱君子)를 모아놓고 은밀히 매음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색주가나 다름없는 하류 기방 동기의 초야가 서른 냥에 팔리다니. 전주 어디에도 그런 머릿값을 받은 기생은 없었다.
‘내 확실히 계집 보는 눈이 있지.’
옥련이 뿌듯한 시선을 홍에게 던졌다.
홍.
배(裵)씨 성에 이름은 홍. 동기에게는 아직 그럴싸한 기명(妓名)이 없었다.
“서른 냥, 더는 없으신 게지요?”
옥련이 재차 물었다. 그 이상 돈을 쓸 배짱이 없는 사내들은 눈치만 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서른 냥에 홍의 머리를 올려주겠다 나선 이는 늙수그레한 만석꾼인 박 생원이었다. 그가 주색에 빠져 산 탓에 누리끼리한 눈으로 홍을 바라보았다. 큰돈을 쓴 김에, 제대로 난봉질을 해 볼 심산인 듯했다.
“좋은 것을 어찌 나 혼자 볼 수 있으리? 내 계집의 초야를 샀으니, 일단 그 거추장스러운 너울이나 좀 걷어 올리고 시작함세.”
박 생원의 말에, 좌중의 사내들이 와하하하 웃으며 장단을 맞추었다.
“미색이 대단하다 온 전주에 소문이 자자하다지? 너울을 걷었는데 절색이 아닌 박색이라면, 내 필히 서른 냥을 무르고 말 것이야!”
그 왁자한 소리가 거슬리는 듯 내내 무표정하던 홍의 미간 언저리가 꿈틀했다. 그러나 그녀는 순식간에 표정을 지웠다. 너울 속 눈동자가 차게 얼어붙었다.
분을 바른 탓에 밀기울처럼 새하얀 얼굴, 세필로 한 올 한 올 새긴 듯한 눈썹, 감정이 보이지 않는 검은 눈, 연지로 물들인 붉은 입술.
정교하게 빚은 듯한 용모였으나 또래 여인다운 생기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홍의 모습은 대단히 아름다웠지만 또 어딘지 기묘했다.
“자자, 오늘 밤 내 수청을 들 계집 얼굴 좀 보자!”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동한 모양. 제 흥에 취해 떠들어대던 박 생원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것도 아닌 제 처녀를 사겠다는 사내 아닌가. 아무리 냉랭한 성정인들 호기심에 얼굴이라도 훔쳐보기 마련이거늘, 홍은 박 생원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지. 얼굴 따위야 언제든 볼 수 있잖은가! 서른 냥이나 주고 계집을 샀으니, 얼굴보다 더 좋은 걸 보아야겠다.”
박 생원이 실실 웃으며 홍에게 다가섰다. 당장에라도 옷고름을 낚아챌 듯 손을 들이미는 그를 옥련이 슬쩍 밀어냈다.
“성격도 급하셔라. 생원 나리, 일단 머릿값 먼저 치르고 시작하시지요.”
혹시라도 해웃값을 못 받으면 큰일이다. 그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더 몸값을 올릴 수 있을까 싶어 옥련은 좌중을 바라보며 물었다.
“서른 냥 이상 내실 나리님은 안 계신 거지요? 그럼, 홍의 초야는 생원 나리께…….”
순간 덜컹- 분합문(分閤門)이 활짝 열렸다. 요란한 문소리에 방 안에 늘어앉아 있던 사내들과 옥련, 홍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공자님!”
옥련이 당황한 듯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문을 연 것은 관례를 치른 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젊은 선비였다. 기껏 스물이나 되었을까. 선비는 아직 수염조차 자리 잡지 않은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키가 유난히 큰 탓인지, 혹은 긴 듯한 눈매에 서린 매서운 기색 때문인지 그에게서는 제법 위압적인 기운이 풍겼다.
“고, 공자님께서 어인 일로…….”
옥련이 당황한 듯 말끝을 흐렸다.
기방에 난입한 젊은 선비의 성은 김이요, 이름은 시헌. 그는 전주 향교 안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다 소문이 난 유생이었다.
문지방에 버티고 선 채 방 안을 응시하던 시헌의 냉한 눈길이 홍에게 닿았다.
쩔그렁!
노끈에 꿴 묵직한 엽전 더미가 방바닥 한가운데 던져졌다. 시헌에게 향해 있던 좌중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돈더미로 옮겨갔다.
“백 냥.”
열린 문 사이로 들이치는 바람에 홍의 얼굴에 드리워진 너울이 펄럭였다.
“백 냥을 내지.”
삽시간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배, 배, 백 냥.”
옥련이 제 치마폭을 꽉 틀어쥐었다.
“백 냥. 백 냥! 정녕 진심이십니까?”
듣고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옥련이 되물었다. 시헌의 형형한 눈을 마주한 옥련이 입술을 핥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분명 진심이다. 진심이다마다.
“공자님께서 백 냥을 부르셨습니다! 더는 없으시지요?”
그제야 고요가 깨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들의 입에서 탄식 같은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뒤늦게 난입하여 이게 무슨 강짜인가! 백 냥이 뉘 집 애 이름도 아니고, 말장난을 하자는 게야 뭐야?”
박 생원이 버럭 성을 내었다. 방 안에 앉아 있던 이들 역시 아들뻘 되는 젊은 선비의 난입이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불만을 내뱉는 이들 사이에 앉아 있던 옥련이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일. 백 냥이 어디 보통 돈인가. 박 생원 패거리가 기방에 쓰는 돈이 암만 많아봤자 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옥련이 냅다 선언했다.
“공자님께서 홍의 초야를 사셨소이다!”
기방 안에 기묘한 웅성임이 일었다. 본디 기방에서 패싸움이 나는 일은 흔하디흔했다. 자칫하다간 박 생원 패와 시헌 사이에 드잡이가 생길 수도 있었다.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나가십시다. 별당에 신방을 차려놓았습니다, 공자님.”
시헌에게 말을 건네는 와중에도, 옥련의 눈길은 방 한가운데 번쩍이는 은자 더미를 떠나지 못했다.
대답 대신 시헌은 저벅저벅 문지방을 넘어 방으로 들어왔다. 순식간에 그는 홍의 앞으로 다가왔다.
“가자.”
너울 속에 감춰진 홍의 얼굴이 미동했다. 그러나 웃는 것인지, 난감한 표정을 띤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제 표정이 어떻든 간에 시헌이 전혀 상관치 않을 것임을 홍은 안다.
그녀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시헌이 홍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색색 비단 천에 감싸인 몸뚱이가 속절없이 일으켜 세워졌다. 우악스러운 손길 탓에 홍의 잇새로 아으, 하는 낮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가자고.”
홍의 신음에도 시헌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쥔 채, 시헌은 걸음을 옮겨 문지방을 넘었다.
시헌과 홍이 떠나간 자리. 풀어진 도포 사이 바지춤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욕망들은, 헛기침 소리에 파묻혀 슬금슬금 제자리로 기어들어 갔다.
휑하니 열린 문짝이 덜컹 소리를 내며 닫혔다.

홍등이 꺼진 바깥은 벼루처럼 새카맸다. 그러나 시헌은 마치 제집처럼 뜰을 가로질렀다. 홍은 시헌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 종종대며 끌려가듯 그를 따르고 있었다.
월야관 뒤편으로 향하는 그들의 등 뒤로 기생들의 분주한 발소리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이 되었을 박 생원과 패거리들을 위한 여흥이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아파요.”
뒤뜰에 위치한 별당에 당도해서야 홍은 작게 내뱉었다.
시헌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었다. 손아귀의 힘을 푼 그가 홍의 팔을 당겨 흐릿한 달빛에 비춰보았다. 홍의 손목에는 불그죽죽하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그리 꽉 잡으니 아프다고요.”
홍이 팔을 비틀었다. 그러나 제 손목을 틀어쥐고 있는 시헌의 손가락은 굳건했다.
“아으…….”
홍이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잡힌 손목이 시큰거렸다.
“놓아주세요, 라고 살갑게 부탁하면 어련히 알아서 놔줄 것을.”
탁, 시헌이 손을 뗀다.
“그리 고집을 부려 벗어나려 애쓰니 점점 더 옥죄고 아픈 것이다.”
홍이 시헌을 노려보았다. 제 어리석음에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문간에 서 있던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속아 잠시 넋을 잃었던가. 시헌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 무언가를 기대했다니.
홍이 잘근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본 시헌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이제 무얼 하실 것입니까?”
“무얼 할 거냐고?”
시헌은 정녕 몰라 그러냐는 듯 되물었다. 홍이 고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잊었나 보구나. 내가 너를 샀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니 무엇을 할 것인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여전히 시헌은 웃고 있었다.
“네 몸을 희롱하며 긴 밤을 기쁘게 보내야겠지.”
홍이 시헌을 노려보았다. 능글맞고 얄미운 웃음을 짓는 그를 보자니 속이 뒤틀렸다. 손톱을 세워 저 허연 얼굴을 피가 나도록 쥐어뜯어 주고 싶었다.
“어찌 내 눈을 보지 못하는 게야. 부끄러우냐?”
갑자기 시헌이 허리를 숙여 홍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숨결까지 느껴지는 거리. 그러나 심장은 뛰지 않는다. 그저 저 반반한 낯짝에 침이라도 퉤 뱉을까, 라고 생각할 뿐.
“어차피 돈푼에 팔리는 몸뚱이, 부끄러울 리가요.”
홍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그래. 참으로 훌륭한 창기의 자세가 아니랄 수 없겠구나.”
“예. 창기답게 잘 모시겠습니다. 백 냥을 내셨으니 돈값을 해야 할 터인데, 미천한 계집의 몸뚱이 따위 흡족하실까 걱정입니다.”
홍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그녀가 여염집 여인이었다면 사내 앞에서 나신을 드러내는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불그죽죽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월야관 은근짜들의 삶은 보통의 여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사내의 욕정이란 그네들에게 있어 생계의 근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홍 역시 초야를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처음 월야관 문지방을 넘었던 열 살 시절부터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어오지 않았는가. 해웃값에 팔린 기생의 몸뚱이는, 제 것이 아닌 돈을 낸 사내의 소유라는 사실을.
“그래. 그러하면 어서 신방으로 들어가자. 하, 신방이라니. 누가 들으면 혼례라도 치른 줄 알겠군.”
“웃기지 마십시오.”
홍이 쏘아붙였다.
“선비님이 사신 것은 이년의 하룻밤일 뿐입니다. 마치 제 서방이라도 된다는 양 굴지 마십시오.”
“설마 그럴 리가. 네 스스로 미천한 계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았느냐? 내가 누군지 정녕 잊었나 보구나. 천한 네가 나에게 가당키나 할까. 꿈도 크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시헌의 잇새로 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홍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시헌이 전주의 어떤 양반도 감히 맞설 수 없는 귀한 집안의 공자임을 잠시 잊었다.
“개돼지처럼 팔려갈 것을 사주셨으니, 무어라 비아냥대시든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겠지요?”
“그래. 그게 몸 파는 계집의 본분 아니더냐?”
가뜩이나 흰 홍의 얼굴이 더욱 파리해졌다. 시헌의 말투는 바스러질 듯 건조하여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박 생원에게 팔려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지 그러셨습니까? 저를 경멸하시면서 어찌 그 큰돈을 내셨답디까? 아, 저를 조롱하고 모욕하고자 머릿값을 내신 것이었습니까? 백 냥쯤이야 선비님께는 그저 푼돈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네 좋을 대로 생각해라. 어차피 말을 섞으려고 너를 산 게 아니다.”
그때였다.
“홍아!”
타다닥 들려오는 바쁜 발소리. 옥련이 엉덩이를 실룩대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본래 기분파인 탓에 홍을 아끼다가도 버럭 성질을 부리곤 하던 옥련의 눈길에 애정이 그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옥련은 방금 시헌이 내던진 엽전의 개수를 확인하고 온 참이었다. 세상에 손바닥에 고인 돈 냄새처럼 향기로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니 세상 모든 것이 아리따워 보일 수밖에.
“홍아, 어찌 뜰 가운데서 이러고 있는 게냐. 내 오래도록 첫날밤의 예에 대해 가르쳤지 않아! 뭐 하느냐? 어서 공자님을 안으로 뫼시지 않고! 고뿔이라도 걸려 바들대며 밤일을 치를 셈이냐?”
옥련이 호들갑스럽게 일장 연설을 했다. 그녀가 시헌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자, 어서 가시지요, 선비님. 정성껏 준비한 주안상을 들여놓았습니다. 방을 화려하게 단장해 두었으니 마음에 드실 겁니다.”
신방이라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래봤자 홍이 내내 사용하던 별당 구석방에 지나지 않았다.
성큼 앞서간 옥련이 방문을 열어젖혔고, 시헌이 문지방을 넘어섰다. 그러나 그의 뒤에 멈춰 선 홍은 묵묵부답이었다.
“어서 들어가지 않고 뭐 하느냐. 선비님, 우리 홍이가 부끄러움을 타는가 봅니다.”
옥련이 홍의 등을 떠밀었다. 얼굴은 웃고 있으나 힘이 실린 매서운 손길이었다.
“공자님. 이년이 오래도록 방중술(房中術)이며 비방을 많이 가르쳤습니다. 홍은 명기를 타고났답니다. 분명 흡족하실 겝니다.”
홍에게 들릴 것이 자명함에도 옥련은 굳이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주절거렸다. 마치 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처럼.
“그러나 아직 사내를 모르는 계집이니, 너무 거칠게 다루지는 마소서. 부디 고이 품어주십시오.”
당부를 마친 옥련이 홍에게 잠시 시선을 던졌다.
“명심해라. 잘 모셔야 한다!”
덜컥, 문이 닫혔다. 오호호호, 하는 경박한 웃음소리가 문밖으로 멀어졌다.
닫힌 문 안, 숨 막힐 듯 짙어진 향내에 홍과 시헌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곳곳에 둔 향낭에서 농염한 향기가 진동했다.
방을 화려하게 꾸몄노라는 옥련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방에는 대체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휘황찬란한 금침이 깔려 있었고 벽에는 새빨간 휘장까지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화려함에 앞서 천박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홍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 이름도, 옷도, 요와 이불도, 밖에 뜬 달도, 그리고 돈푼에 거래되는 제 처연한 청춘마저도 어찌 이리 사무치도록 붉은 것이냐.
“백 냥을 들여 너를 산 까닭이 무어냐고 물었지.”
홍이 낯선 제 방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시헌은 성큼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홍은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호리호리했다. 그러나 시헌은 사내치고도 보기 드문 장신이었다. 하여 고개를 들어 올려봤자 보이는 건 그의 예리한 턱선뿐이었다.
“돈이 썩어나신 탓에 재미 삼아 계집을 사신 것 아닙니까?”
“네가 생각하는 내가 어떤 자인지 모르겠지만, 고작 말장난을 하고자 백 냥을 쓸 만큼 미련한 취미는 갖고 있지 않아.”
시헌의 시선이 홍의 얼굴에 머물렀다. 입술을 깨무는 습관 탓에 붉은 연지가 낙조처럼 번진 홍의 입가를 향해 그가 손을 뻗었다. 얼룩진 입술을 닦아주려는 요량이었으나 홍은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연지는 더욱 번져, 그녀의 입가에는 선홍빛 물이 들고 말았다.
시헌이 피처럼 붉은 물이 든 손끝을 도포 자락에 쓱 문질렀다. 그러나 지문 깊이 스며든 홍색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하면, 왜 굳이 난입하여 제 초야를 사신 겁니까?”
홍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차라리 박 생원이나 그 패거리 중 하나에게 팔렸더라면 저런 질문 따위 하지 않았으리라. 그들이 홍의 머리를 얹어주겠다며 백 냥이니, 이백 냥이니 흥정을 붙인 이유는 묻지 않아도 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욕망, 정욕. 누구도 가지지 못한 어린 계집을 제 것으로 만들겠다는 늙은이의 역한 허영심.
그러나 시헌은 젊고 수려한, 누구라도 눈길을 빼앗길 법한 사내였다. 시헌에게 한눈에 반해 그를 치마폭에 담고 싶어 하는 여인이 기방 안에만도 여럿이었다. 게다가 그는 평범한 생원이며 기생 따위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지체가 높은 사람이기도 했다.
말인즉슨, 시헌은 돈을 주고 계집을 살 이유 따위 없는 이였다.
“사내가 계집을 사는 이유가 달리 있더냐?”
갓끈을 풀어 헤친 시헌이 갓을 툭 내던졌다. 색색 구슬 끈이 부딪치는 청량한 소리는 끈적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내 푸르스름한 도포 역시 바닥에 떨어졌다.
기생이라면 응당 사내의 의관을 벗겨주고 고이 개켜 정돈하는 것이 도리이리라. 그러나 홍은 움직이지 않았다.
“돈에 팔린 계집이 아직 제가 팔린 까닭을 모르다니 한심하기가 짝이 없다. 내 똑똑히 가르쳐 줘야겠군.”
냉랭한 시헌의 음성에 홍의 눈꺼풀이 아스라하게 떨렸다. 시헌을 처음 만났던 날의 풍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나간 겨울의 일. 그를 처음 보았던 날에도 홍은 이 방 안에 있었다. 그날 방문을 연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눈송이 한가운데 서 있는 젊은 공자였다. 눈발이 휘날리는 후원에 고고하게 서 있는 선비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이 기억에 스쳤다.
코끝을 마비시켰던 차디찬 설원의 향기. 선비의 도포 소맷부리에 점점이 튀어 있던 먹물자국은 쏟아지는 눈 속에 서글프도록 검었다.
그윽한 묵향을 풍기던 그 선비가 지금 그녀를 모욕하는 이 사내란 말인가.
“홍이라는 계집의 색(色)이 휘황하다 전주 일대에 명성이 자자하더구나. 내 너를 알았음에도 미처 몰랐다. 네가 그리도 유명한 계집인 줄은.”
시헌의 입에서 나오는 제 이름이 어찌 이리 낯설까. 홍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내 너를 샀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우리 사이에도 나름의 연이 있지 않더냐?”
“연이라니요. 악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악연도 인연이다. 하여, 다른 사내가 올라타기 전에 내가 먼저 갖는 것이 그 연에 대한 보답인 듯하여.”
시헌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그의 손이 홍의 옷고름을 채갔다. 속절없이 풀어진 붉은 옷고름이 먹먹하게 가라앉자, 그 무게 탓에 저고리가 양쪽으로 활짝 벌어졌다.
반사적으로 가슴팍을 가리던 홍의 손이 툭 떨어졌다.
동기이던 홍의 몸의 굴곡이 유려해지고, 가슴에 몽우리가 잡히고, 분홍빛으로 부푼 여인의 상징 위에 소록소록 솜털이 솟아나기 시작하자 옥련은 그녀에게 밤의 일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초야를 치르기 전까지 제 몸을 어찌 관리해야 하는지, 사내와의 교합(交合)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사내를 기쁘게 해야 하는지 따위의 일들이었다.
어린 소녀였던 홍에게는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사내를 모르는 몸이라 하여 수치심까지 모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육은 끝났다. 홍은 오늘부로 동기를 벗어나 머리를 얹은 기생이 될 것이다.
나신을 드러낸다거나, 사내와 교합한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하는 것은 천기(賤妓)인 홍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것은 수치가 아닌 풍류. 그것이 기생이라 불리는 자들 중 가장 하급의 창기가 모여 있는 기방 월야관의 법도였다.
“……명성이 자자하다 한들, 계집의 몸뚱이야 거기서 거기 아니오리까.”
칭칭 동여맨 치마끈 위로 불룩 솟아오른 가슴 둔덕이 시리다.
“그래. 여느 계집처럼 거기서 거기일지, 아니면 내 혼을 쏙 빼놓을지 오늘 마침내 확인할 수 있어 기쁘구나.”
번진 연지로 얼룩덜룩 붉은 홍의 입술이 앙다물렸다. 드러난 속살에 스미는 바람 탓인가. 푹한 봄날이거늘 이상하게 오한이 들었다.
돈푼깨나 있다고 고깃값을 흥정하듯 제 몸에 값을 매기는 사내. 세 치 혀로 끊임없이 저를 농락하는 사내.
그 앞에서 드는 감정이 화가 아닌 회한이라는 것이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었다.
“왜. 할 말이라도 있느냐?”
한참이나 제 얼굴을 올려다보는 홍에게 시헌이 물었다. 앙칼지게 대꾸하던 모습과는 달리 홍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냐. 울기라도 하려고?”
“안 웁니다. 그저…… 예전에는 이럴 줄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다시 생각해도 기막힌 일이잖습니까.”
“예전?”
“선비님을 처음 만났던 날.”
“눈 오던 날 말이냐?”
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시헌의 눈빛은 지금과는 완연히 달랐다. 붉지도, 저렇게 번질대지도, 갈 곳 없이 헤매는 온갖 욕망과 악에 차 있지도 않았다. 그게 고작 지난겨울이었다.
홍은 시헌과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날 시헌의 눈동자에는 쏟아지는 눈발과 홑처마 아래 매달려 달랑이는 풍경이 비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 담긴 홍은 화장기 없이 말갛기만 했다.
저 사내가 저를 얼마나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뜨릴지 조금도 알지 못한 채.
“내가 이럴 줄 꿈에도 몰랐느냐? 한데 이를 어쩐다.”
시헌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너를 보자마자 하룻밤 안으면 딱 좋을 만한 계집이라 여겼거늘.”
“……그러셨습니까.”
제까짓 게 무슨 주제라고. 그래, 그랬던 거구나.
회한이 쓰디쓰다고 생각한 순간 시헌의 입술이 밀어닥쳤다.
그는 아무런 예고 없이 그녀의 입술을 범했다. 갑자기 덮쳐 들어 입술을 덮는 미끌미끌한 감촉에 홍은 몸을 움츠렸다.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려 했지만 시헌은 그녀의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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