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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터의 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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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37*218*20mm
ISBN13 9788954619448
ISBN10 8954619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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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낭만적인 땅’은 한낮의 햇빛 속에 우리 앞에 새로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머나먼 곳에서 헛되이 찾아 헤맸던 그 ‘태고의 기적’이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면서 이제 아주 가까운 곳, 바로 우리의 코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랄 것이다. 그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기적들은 우리 집 대문에서 열 걸음도 채 안 되는 곳에 놓여 있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떨어진 곳에. ---pp.10-11

냇물은 솨솨 소리 내며 숲으로 흘러가네,
서늘하게 숲을 적시며 솨솨 흘러가네.
난 이 쓸쓸한 물방앗간에
어떻게 오게 된 걸까? ---p.12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방앗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방앗간은 숲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버려진 것도 아니었다. 난 다만 그것을 팔았고, 팔아야 했다. 하지만 여름 사 주 동안 한 번 더 내 소유로 삼을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눈을 뜬 순간부터 알고 지냈고 그것과 더불어 최고의 추억들을 간직하며 자라왔던 것처럼, 그렇게 방앗간을 소유할 수 있었다. ---p.13

해가 떠오른다. ……지금 나는 오늘의 햇빛과 나뭇잎 그늘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아버지의 마지막 단골손님으로 여겨진다. 여기 정원 탁자에서 많은 이가 유쾌하다고 할 수 있는 작은 황홀경을 자아냈다. 하지만 어떤 훌륭한 음료수도 요 며칠 동안 나를 사로잡은 이런 빛과 그림자, 회상에 젖은 도취 상태를 다른 손님에게 느끼게 한 적은 없을 것이다. ---p.22

하지만 오늘은 피스터의 방앗간과 그 주위에 비가 내리고 있다. 그저께와 동일한 액자와 대지. 하지만 이것은 그저께와 동일한 그림일까? ---p.41

날씨가 좋든 나쁘든, 낮이든 밤이든, 집안에서든 집밖에서든, 정원수 아래 조용한 탁자 주위에서든, 시냇물을 따라 펼쳐져 있는 초원에서든, 곡식 들판에서든. 나는 그동안 이 종이 위에 내 인생의 어느 겨울을 위해서 아버지의 방앗간에서 겪은 즐겁고 슬픈 기억, 위안과 경고와 교훈이 될 만한 기억 중 황금빛 액자에 넣어 보존할 그림을 위해 찾고 모아 이 종이 위에 기록한 것을 제법 자세하게 아내의 귀에 대고 직접 들려주었다. ---p.46

나 자신 어떤 솟아오르는 샘물을, 수정처럼 맑은 시냇물을, 장대한 강물, 요컨대 목가적인 독일 제국의 어떤 물길을 최대한 빨리, 최대한 파렴치하게 오염시킬 확고한 의도가 있지만, 그런 나 같은 사람도 저 사람 좋은 늙은 남자에게 그의 방앗간 물을 깨끗한 상태로 보존해주기 위해서라면 내 심장이라도 내주고 싶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 네가 알든 모르든, 피스터 방앗간의 뒤채 골방에서 네게 라틴어뿐만 아니라 인간 지식의 기초단계를 가르친 이래로 난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여러 곳에 다녀봤어. 하지만 주위에서 그분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어. 그의 소원이라면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뭐든지 들어줄 거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 가지 면에서만 그의 뜻을 들어줄 수 있을 거야. 누가 그의 시냇물을 흐리게 하는지 알아낼 거야. 최후의 박테리아까지 학술적으로 알려드릴 거야! 문서상으로도. 그걸 들고 법원에 갈 수 있게 해줄 거야! 그의 물을 들여다볼 거야. 그 어떤 박사도 나보다 더 확실한 진단을 내려주지는 못할걸. 빈둥거리며 놀던, 그의 옛 피후견인이자 총아寵兒인 아담 아쉐보다는. ---p.82

그래, 박사, 한번 둘러보시게. 그리고 수백 년 전부터 여기 물이 크리스털처럼 맑고 신부의 옷처럼 정결하다고 알고 살았던 방앗간 주인이 되어 보시게! 저기 좀 봐라, 아들아. 소매를 걷고 물이 합쳐지는 홈통에 손을 넣어봐. 그리고 네 조상들의 밝고 정직한 방앗간 물이 오늘 어떤 분비물과 기름을 나의 생업과 삶에 침전시켜 놓는지 느껴봐. 그래, 과감하게 방아바퀴에서 한 손 가득 가져오시게, 박사.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없으면 아쉬울 거야. 그리고 자네 젊은 사람들아, 자네들은 그걸 보고 웃겠지. 어쩌면 지금은 감히 웃지는 못하더라도 나를 늙은 바보 취급할 걸세. 하지만 내게 저 물은 생명체와도 같아. 저 물의 맥박을 재기 위해 의사를 불러야만 한다고. 피스터 방앗간의 맥박이 서서히 멈춰가고 있어, 에버트 피스터! 어쩌면 금방이라도 맥박이 멈출지 누가 알겠어! ---p.109

나는 무더위에 지치고 잠에 취한 나의 여자를 업다시피 해서 데려갔다. 한심한 이가 긴 막대기로 처마 밑 제비나 철새 둥지를 헐어버리듯,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영원히 무너져버리고 말 우리의 여름 둥지로. 그리고 오늘 나는 피스터 방앗간에 관한 추억의 기록 중 허리 부분을, 그 중심 부분을 이 따분한 종이 위로 나르고 있는 듯하다. ---p.115

여기 우리 위의 나무도 공연히 또 어린 꽃을 피운 게 아닐 게다. 꽃을 피우면서 내 정원이 최후의 의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명랑한 얼굴을 지어 보인 것만 같구나! 세상과 대학생 양반들이 나를 피스터 방앗간의 정당한 주인으로 평가했다 하더라도, 난 언제나 순리를 따르는 남자였으니 지금도 모든 게 순리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는데도 꽃이 피었으니 말이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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