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역사에서 소설로 - 발자크를 읽는 하나의 관점」으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상명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인간극》과 가상의 통일성」, 「발자크 문학의 환상과 현실」, 「발자크, 모호성의 의미」 등이 있다.
만일 그대가 나를 소유하면 그대는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 하지만 그 대신 그대의 목숨은 나에게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신이 / 그렇게 원하셨느니라. 원하라, 그러면 그대의 소원은 /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대의 소망은 / 그대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 그대의 목숨이 여기 들어 있다. 매번 / 그대가 원할 때마다 나도 줄어들고 / 그대의 살날도 줄어들 것이다. / 나를 가지길 원하는가? / 가져라. 신이 그대의 / 소원을 들어주실 / 것이다. / 아멘! --- p.70
내 자네에게 단 몇 마디로 인간 삶의 위대한 비밀을 가르쳐주겠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원천을 고갈시키는 두 가지 본능적인 행위에 의해 기력이 소진되지. 두 개의 말로 죽음의 그 두 이유를, 그것들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모두 표현할 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바람과 행함이라는 말이네. 인간 행위의 이 두 항 사이에는 현자들이 주로 취하는 다른 방식이 있는데 내가 행복과 장수를 누리는 것은 바로 그 방식 덕이네. 바람의 행위는 우리를 서서히 불태워 없애고 행함의 행위는 우리를 일거에 파괴시키지. 하지만 앎은 유약한 우리의 심신 구조를 항구적인 평온 상태로 유지시킨다네. 그러므로 나에게 욕망이나 바람은 죽음을 의미하기에 사유를 통해 그것을 근절시켜버리지. 운동이나 힘은 내 신체 기관의 자연스런 작용에 의해 해소되고 말이야. 간단히 말해, 나는 내 삶을 쉽사리 망가지고 마는 심장에도 맡기지 않고 쉽사리 무뎌지고 마는 감각에도 맡기지 않는다네. 내 삶을 맡기는 곳은 쇠약해지지도 않고 어떤 것보다도 오래 사는 두뇌라네. 과도하게 욕심을 부려 내 정신과 육체를 해친 적은 전혀 없네.
1830년 10월의 어느 날 오후, 20대 후반의 젊은 귀족 라파엘은 유일하게 남아 있던 금화를 도박장에서 잃고 절망에 빠져 자살을 결심하는데, 실행에 옮기기 전 수수께끼 같은 골동품상 노인에게서 신기한 힘을 발휘하는 나귀 가죽 한 조각을 건네받고 자신의 삶을 이어가게 된다. 가죽을 손에 쥔 라파엘은 그것을 이용해 부자가 되고 다시 폴린을 만나 한동안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소원이 이루어질 때마다 가죽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 그는 가죽이 줄어들지 않도록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