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꽃 나무 아래서 꿈꾸던 아이는 콩이와 복이 할머니가 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어릴 적 보았던 것들이 그리움과 함께 나타난다. 다시 돌아보는 것은 내 앞에 다시 봄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p.14
자라는 복이와 콩이도 꽃을 보며 자라면 좋겠다. 책과 친했으면 좋겠다. 차츰 어눌한 언어에 힘을 실어서 넓은 세상으로 나가겠지만 아름다움과 기본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길을 잃고 혼란스러울 때 꽃을 보며 쉬고, 책 속에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본 걸음걸이를 배워 따라가면 좋겠다. --- p.16
요즘도 혼자 숨바꼭질을 한다. 내게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숨는다. 집 밖에 나를 숨길 수 있는 곳은 많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나를 숨기면 영혼이 자유롭다. 무리를 지어 바쁜 사람들 속에 나는 천천히 나의 리듬으로 흘러간다. --- p.24
내가 좋아하는 향기는 과수원 그늘 속에 있다. 하얀 사과꽃이 가득 피면 그 아래가 지상낙원이다. 바깥 열기와 소음이 모두 차단되어 나 혼자 텐트에 들어간 듯 완벽하게 자유로운 공간이 된다. 드러누워서 일렁거리는 꽃이나 잎 사이로 비치는 하늘에 내 꿈이 열려 있었다. --- p.31
현재의 나는 내 방식으로 수레를 끌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호기심이 줄어든다. 발걸음이 느려지는 만큼, 굳이 남의 수레바퀴가 잘 구르는지 궁금하지 않다. 힘을 아껴서 내 수레를 채우고, 조금씩 끌고 미래를 향해 갈 뿐이다. 내 역사의 역사가는 나다. --- p.41
내가 나다운 것은 중요한 문제다. 나이 들수록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시간이 많아지며 이것이 나의 자존이다. 내가 나의 색깔을 가질 때 내 존재 이유가 있다. --- p.46
지금은 멀리서 아들의 정원을 본다. 아들과 복이 엄마, 또 아들 눈빛까지 고스란히 빼닮은 복이, 웃음소리가 피어오르는 향기 나는 그들의 정원을 즐겁게 본다. --- p.52
복이와 콩이는 내가 보는 세상이 아닌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저 그들이 만든 우주를 구경할 뿐이다. 내 시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며 그들이 물어오는 이야기는 이미 내 생각을 앞지르고 있다. 그 둘은 어느 곳에서 언어를 캐내는지 모르지만 옹알이를 넘어서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 p.60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은 햇빛과 같이 빛을 내며 광채를 내고 있다. 바다가 살아난 듯 파도가 일렁이고 멀리서 밤새워 일한 배들이 형체를 드러내며 가까이 다가온다. 내 눈앞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빛을 발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다. --- p.61
나도 가출을 했다. 육십을 바라보는 지금 생각해보니 싱겁기 그지없다. 그 시절이 책장이 드르륵 넘어가듯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지만, 그 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철없던 시절의 찬란한 몸부림이었다. --- p.73
이제 내가 머무는 공간은 억지스럽지 않은 곳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십 대 혼란스러운 터널을 지나, 관람객처럼 낯선 공간도 두루 둘러보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모든 공간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 p.103
‘공감’은 여행 같다. 낯섦과 익숙해짐 사이를 건너다니고, 편안함과 불편함이 같이 연결된다. 또 격한 감동과 나중에 다시 앨범을 들춰보고 싶은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이 깔린다. 앞으로 내 생에서는 공감의 순간이 많기를 기대한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장소에 나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p.116
그런 나는 주로 책 속에 빠져 있거나 글쓰기를 하며 내 마음이‘딸깍’열리는 순간 만나게 된다. 어제보다 좀 더 차분하게 가라앉은 나를 만나고자 푸른 카페 문을 두드린다. --- p.128
앞이 환하게 보인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달렸을까? 지치면 어두운 곳으로 숨고, 누가 나무라는 것도 아닌데 어깨를 활짝 펴지 않고 주눅 든 것은 왜 그랬을까? 젊다는 것은 처음 맛본 커피 맛처럼 시커멓게 쓰기만 쓰고 맛은 없었다. --- p.133
요즘은 하루하루가 소풍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삶 자체가 소풍이다. 지나가는 사람의 엷은 미소 하나가 종일 내 가슴에 들어와 즐거운 마음의 요기가 된다. 어제보다 더 짙은 나뭇잎은 내 눈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멀리 있는 친구가 고단한 삶 한 틈에서 찍어 보내준 사진은 몸을 들뜨게 한다. 복이와 콩이가 밖에서 새로 물고 온 말 보따리가 그대로 선물이 된다. 현관문을 열면 꽃들이 일제히 나를 올려다보며 까르륵거린다. --- p.145
여행을 꿈꾸는 것은 미지의 세상에서 알 수 없는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낯선 세상에 동그마니 노출된 나를 보기 위함이다. 여행지와 동반자 등 계획된 행보를 하고 있지만, 낯선 침대에서 불쑥 눈이 떠진 날 나는 새로운 생각을 한다. 나는 내 영혼을 오래 가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 p.160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들어오면 엄마가 해주는 저녁 밥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냉이무침, 우엉조림, 보글보글 데운 찌개가 김을 올리는 밥상 앞에 엄마와 마주 앉아 있고 싶다. 지금의 나는, 기억에 남아있는 엄마 얼굴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그래도 엄마와 마주 앉아 입으로 들어가는 밥숟갈과 입에서 나오는 투정을 번갈아 가며 하고 싶다. --- p.191
피아노 음률이 내 마음을 파고들며 위로를 건네는 시간, 내 감정의 배가 솔직하게 그 속을 드러낸다. 오늘 햇볕이 나면 가슴 밑바닥을 헤집어서 말리고 싶다. 며칠 동안 축축하게 움츠려왔던 속을 확 뒤집어서 강렬한 햇볕에 바짝 말리고 싶다. --- p.226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을 글로 풀어서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 모든 사실이 눈으로 볼 때보다 더 예쁘다. --- p.231
나는 글로 기억할 때 하늘과 구름을 더 진하게 느낀다. 그래서 어떤 날은 내 한 줄 메모지에서 기억과 풍경을 그대로 건져낸다. 약한 무릎처럼 글쓰기도 나와 같이 가야만 한다. 지치고 답답해도 그냥 써 볼 뿐이다. --- p.231
아름다운 것만 삶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아름다움, 못생김 모든 게 조화롭게 얽혀서 삶이라는 바퀴가 지나가고 있음을. --- p.253
글쓰기와 마주 앉아본다. 처음 문을 두드리기가 쉽지 않다. 어린아이의 낯가림처럼 좀체 얼굴을 드러내어 웃지 않는다. 조금씩 걸음마 수준으로 글자를 이어 나가면 어느새 문장이 되고 단락이 되고, 글이 모습을 드러낸다. --- p.255
글쓰기도 좋은 방법이다. 화난 가슴에서 먼저 튀어나오려 아우성치는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겨보면 사실 싱거워진다. 거름망을 한 번 거쳐 나온 내 감정들은 뿔을 감춘 온순한 동물이 된다. 내 마음을 끄집어내 종이에 옮겨 보면 감정은 스스로 희망을 찾아 움직인다. --- p.258
세상은 아름답다. 나도 아름다워지고 싶다. 욕심을 더 낸다면 나만의 향기를 폴폴 내고 싶다. 아름다운 시간에 좋은 글, 향기 나는 글을 읽고 싶다. 보석처럼 주머니 속에 넣어 만지작거리며 오래 간직하고 싶을 것들을 쓰고 싶다. 내 글은 잘 쓴 건 아니지만 오직 나 자신만의 향기가 담길 것이다. --- p.262
모든 것이 퇴색되고 생기를 잃어가도 가슴속엔 용광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짝이는 새벽 별 같은 빛을 품고 싶다. 나이 들수록 눈에 힘을 주지 말고 부드러움이 스며 나오도록, 손은 끊임없이 자라는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야지. 혼자인 시간에는 가슴에 있는 별을 꺼내 다듬고 싶다. 아침 햇살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저녁노을처럼 주변과 어울리는 색으로 물들어 있었으면 한다.
--- p.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