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우리 가게의 상품도 보고 가십시오.”
판매원들이 활기차게 말을 건다. “시장 가방은 필요 없습니까”라며 젊은 여성이 다가온다. 체육관을 세 개 붙여놓은 정도의 넓은 부지 안에 식료품, 일용품, 의류 등의 매장으로 구분된 시장에는 고기와 생선, 채소와 과일, 떡과 도넛 등의 과자류, 김치 등의 반찬, 의류와 속옷, 구두, 식기, 중국산 전자제품, 조미료 등의 생활용품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북한에 물자가 부족하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다.
2008년 여름, 평양시 낙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 종합시장을 방문했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여기가 과연 평양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활기 넘치는 광경이었다.
--- 「1장 ‘할인 협상’」중에서
이와 같이 다른 곳보다 임금이 현저하게 높은 공장이 있으면 그곳에 취직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공장에서도 더 높은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재를 영입, 확보할 필요가 생긴다. 전술한 문호일 씨에 의하면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에서는 취업을 원하는 사람에게 10일간 실습을 하게 하고, 그 실습기간의 성적에 따라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 공장의 지배인과 기사장技師長(책임 엔지니어)은 사장이 직접 헤드헌팅한 인재다(《계간조선경제자료》 2015년 2호). 지금까지 개인이 일할 곳을 ‘배치’라는 형태로 국가가 결정하고 있었던 북한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가 도입된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한다.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개개의 기업이 책임을 가지고 자신의 직장을 관리하는 제도다. 이 제도에 따라 기업에는 기획권과 무역권, 인재관리권, 가격제정권, 판매권 등 합 12항목의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 제도는 김정은 정권 발족 당초인 2012년부터 일부 기업과 공장에서 실험적으로 도입하였다. 그 과정에서 성과가 있는 것을 실감한 정부는 이 제도를 전국에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 단, 이때에는 아직 제도의 명칭은 확정하지 않았다.
--- 「2장 ‘현장에 경영권을 넘기다’」중에서
맥주는 한국보다 북한이 맛있다 ─ 2012년 11월 24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전자판)에 ‘영국에서 수입된 장비를 사용해 만든 북한의 대동강맥주는 놀랄 만큼 맛있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북한 맥주에 대한 기사였다. 이 기사가 한국의 맥주업계에 충격을 주었다.
북한 맥주가 확실히 맛있다. 맥주를 좋아하는 나도 북한에 갈 때마다 즐겨 마셨다. 북한에는 평양, 룡성, 봉학, 금강 등 맥주의 종류도 제법 많다. 당초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은 룡성맥주였지만, 2002년에 대동강맥주가 등장하고 나서는 그 지위를 양보했다. 이제 “대동강맥주”는 북한을 대표하는 상품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코노미스트〉가 전하듯이 대동강맥주공장에는 영국의 설비가 도입되어 있다. 북한은 180년 전통을 자랑하면서도 채산이 맞지 않아 폐쇄된 영국의 어셔즈Ushers 양조장(맥주공장)의 설비를 독일 에이젠트를 통해서 사들였다. 매수금액은 174억 원(중앙일보 일본어판·전자판, 2015년 4월 14일자)이라고 한다. 2002년 4월에 본격적으로 생산을 개시했던 초기에는 호주산 맥아를 비롯한 원료도 수입했지만, 2007년부터는 북한 국내에서 조달하였다. 보리는 곡창지대인 황해도, 홉hop은 중국과의 국경인 양강도에서 생산, 물은 대동강의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다(《조선신보》 조선어판·전자판, 2017년 3월 13일자).
--- 「4장 ‘맥주는 남보다 북’」중에서
북미 군사적 충돌의 긴장이 고조된 2017년과는 돌변하여 김정은 정권은 2018년 초부터 대화공세로 전환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연초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표명하였고, 남북은 ‘코리아(남북단일팀)’로 입장하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출석한 여동생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면회하고 방북을 촉구하였다.
3월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한국 특사단이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하였다. 직후에 방미하였던 정의용 씨 등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즉석에서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되었다. 월말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 첫 북중정상회담이 실현하였다. 직후인 3월 31일~4월 1일, 폼페이오Mike Pompeo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당시)이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하였다.
4월 20일, 북한은 핵실험, ICBM시험발사의 중지와 북부 핵 실험장 페기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7일 후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에는 순풍이 되었다. 정상회담을 통해 발표된 ‘판문점선언’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시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 「7장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중에서
침체된 북미 협상이었지만 협상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9월 9월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측과 마주 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미국측에 협상 개최를 요구했다. 최선희 제1부상은 8월 30일에는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떠밀고 있다.”고 말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선희 제1부상의 협상 개최 요구에 트럼프 대통령은 “만남은 언제나 좋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비핵화와 관련한 북미 실무 협상 재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최선희 제1부상은 이렇게 덧붙여 강조했다.
“만일 미국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 실무 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낡은 각본이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선행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라고 북한의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올해 말이 하나의 기한인 것으로 보인다.
--- 「보론 ‘하노이 북미회담 이후의 한반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