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술에서 감탄하는 것도 다르지 않네. 우리는 한 인간의 정신이, 비록 실수투성이이긴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고 숭배하는 대상을, 우리가 이성으로 파악하려고 애쓰는 그 무언가를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점에 탄복하네. 여기서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한정된 사랑으로는 도저히 품을 수 없지만, 자세히 알아나갈수록 그 장엄함에 눌려 경배와 겸허함의 전율을 점점 크게 일으키는 신적인 영역이네.” ---1권 p. 456
“한때는 세계가 아름답고 분명했어요. 나는 많은 것을 알고자 했고, 많은 것을 그리고 많은 것을 기록했어요. 그 시기가 지나자 모든 것이 점점 어려워지더니 학문적 과제들이 더 이상 쉽게 풀리지 않고 복잡하게 뒤엉키면서 계속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냈어요. 그런 다음 다른 시기가 찾아왔죠. 학문이 더 이상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고, 개별적인 것을 알고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은 듯했어요. 그와 함께 세계가 잘게 나뉘지 않은 상태에서 한꺼번에 포착해야 할 내적 아름다움으로 불타올랐죠. 나는 경탄하는 심정으로 그 세계를 사랑했고, 그 세계에 다가가고자 했으며, 거기에 내재하는 위대한 미지의 것을 동경했어요.” ---2권 p. 63
“물질의 우위는 정신 앞에서 단순한 힘으로 전락하고 말 걸세. 결국 승리하는 것은 정신이고, 그 정신이 물질을 부리게 될 거라는 뜻이네. 그리고 정신이 인간에게 새로운 이득을 안겨줌으로써 일찍이 역사에 없었던 위대함의 시대가 도래할 걸세. 나는 수천 년 동안 그렇게 단계별로 발전해왔다고 믿네. 그것이 어디까지 전개될지, 어떤 모습을 띨지, 어떻게 끝날지는 인간의 오성으로는 밝혀낼 수 없네. 다만 다른 시대와 다른 삶이 찾아올 거라는 점은 확실해 보이네.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내재하는 마지막 토대가 아무리 완강하게 버티더라도 말이네.”
부유한 상인의 아들 하인리히 드렌도르프는 지리학에 관심이 많아 알프스로 연구 여행을 떠난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피하러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교양 있고 학식이 높은 리자흐 남작을 만나게 된다. 하인리히는 그때부터 리자흐 남작의 저택에 머물며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을 통해 학문과 예술, 자연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리자흐 남작은 어느새 하인리히의 선생님이 되어 있다. 한편으로 하인리히는 리자흐 남작과 친밀한 관계인 마틸데 부인과 그녀의 딸 나탈리에와도 친분을 쌓는다. 또한 젊었을 적 리자흐 남작과 마틸데 부인이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각자 다른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리자흐 남작은 마틸데 부인과 헤어진 후 마음을 추스르고 나라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가이자 재력가가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잊지 못하고 각자의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 후 재회한다. 한편 하인리히는 마틸데 부인의 딸 나탈리에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슈티프터는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특이하고 대담하며 기괴한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꾼 가운데 한 사람이다. 토마스 만
흔히 슈티프터의 『늦여름』을 오스트리아의 『빌헬름 마이스터』 『친화력』이라고 말하는데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책은 독일 정신계에도 무척 중요한 의미가 있는 지극히 특별한 작품이다. 후고 폰 호프만슈탈
『늦여름』은 성장소설 그 자체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나왔지만 독일적인 이 책은 독자에게 인간됨을 보여주려는 감동적이면서도 섬뜩한 작품이다. 발터 킬리
아달베르트 슈티프터는 독일 문학사에서 흔치 않은 위대한 소설가다. 그의 작품은 그 순수한 행복과 지혜 그리고 아름다움에서 19세기 어떤 작가의 작품과도 비교될 수 없다. 슈티프터는 문학의 위대한 풍경화가가 되었다. 그는 보이는 모든 것을 언어로 바꾸고, 보이는 모든 순간을 문장으로 바꾸는 마법의 지팡이를 가졌다. 한나 아렌트
내 책은 시대와 유행에 구애받지 않고 영원할 것이다. 나는 세속의 욕구나 단순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글을 쓰기 때문이다. 아달베르트 슈티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