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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졸업하다

엄마를 졸업하다

: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에세이

김영희 | 샘터 | 2012년 11월 2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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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1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56g | 145*198*20mm
ISBN13 9788946418325
ISBN10 89464183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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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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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서의 책임을 벗은 이 시절이 찬란하게 내 앞에 다가온 것이 꿈만 같습니다. 집안일에 대한 부담도,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 초조함도 버리고, 안간힘을 쓰며 달려온 엄마로서의 삶을 졸업함으로써 새 출발을 한 것이니까요. 한층 가벼워진 몸으로 날개를 달고 세상을 날아다니는 기분입니다.
이제야 인생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지요. 진정한 여성으로, 또 진정한 예술가로 다시 태어난 나를 거울에 비추어 보며 “아, 아름답다!” 거침없이 외칩니다. 그렇게 외치고 나면, 얼기설기 짜인 지난 세월도 비단결처럼 햇빛 속에 찬란히 빛나고, 다가올 미래는 더욱 화려하게 느껴집니다. ---p.6

어느 여름날 아침, 수련 꽃이 살포시 눈을 뜨는 것을 보며 나는 결심했다. 프란츠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다른 아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엄마를 ‘졸업’하기로. 그가 다른 형제들과 다르다고 엄마 역할을 길게 늘리는 것은 오히려 그의 성장을 막는 일인 것 같았다. 엄마로서의 삶을 졸업하기가 어디 그리 쉬우랴. 정신적으로 그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하고 나는 매일 연습했다. ‘그는 성인이다! 그는 성인이다!’라고 자꾸자꾸 되뇌었다. ---pp.75-76

“엄마는 행복해야 해. 천사를 낳았으니까!”
그렇다. 프란츠는 가난한 집시 아이에게 자기 옷을 벗어 주고, 반 친구를 대신해서 야단맞던 아이였다. 돌이켜보니 등나무 그늘 아래서 점심을 함께 먹으며, 푸른 바닷가에서 조개를 주우며, 산에 핀 꽃들을 꺾으며…… 나는 누구보다 천사와 대화를 많이 했던 여자였다. 천사를 자녀로 둔 엄마! 점점 자랑스러워졌다. ---pp.77-78

나이 일흔을 두 해 앞두고 난생처음 연애편지를 썼다. 젊은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사춘기는 물론, 첫사랑을 했던 대학교 때도 콧대가 높아,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못 썼던 것을 이제야 쓰다니……. 다 쓴 연애편지를 다시 읽어 보고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 나이에 그렇게 보들보들한 단어들이 내 속 어디에 잠재해 있었나 싶어서.
분홍색 장미꽃밭을 연상시키는, 달콤하면서도 애처롭고 가엾은 글이었다. 살 만큼 살고 억센 세월을 지나온 노년에 맞지 않는 야들야들한 문장이어서 나 자신도 흠칫 놀랐다. ---p.123

내가 인생의 진정한 자유를 느낀 것은 예순을 넘긴 어느 날 잠자리에서였다. 이국 생활을 하는 내내 새우잠을 잤고 늘 마음이 외롭고 초조하고 추웠는데, 그날 처음으로 반듯이 누우며 나는 홀로 감탄했다. “아, 좋다!” 그 순간 섬광같이 ‘자유’라는 폭죽이 화려하게 터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환상의 자유는 아니었다. 그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이제 죽어도 된다!” ---pp.204-205

나는 네 살 끄트머리쯤에 자유를 맛보았다. 색을 통해 자유와 평화를 누린 때였다. 만일 아카사키 항구에서 그 화려한 색의 향연을 보지 못했다면 과연 내가 예술가로서 싹을 틔울 수 있었을까? 혼자 사색하고 느긋이 색의 조화를 감상했던, 하루가 온통 내 것이었던 시간을, 매일매일 다른 얼굴로 다가오던 그 바다를 어떻게 잊겠는가!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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