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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게 길을 묻다

주역에게 길을 묻다

: 인물로 읽는 주역

리뷰 총점8.6 리뷰 10건 | 판매지수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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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570g | 153*224*30mm
ISBN13 9788994054315
ISBN10 899405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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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맹난자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자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국대학교 불교철학과를 수료하였다. 1969년부터 10년 동안 월간 『신행불교』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1980년 동양문화연구소장 약연 서정기 선생에게 주역을 사사하고 도계 박재완 선생과 노석 유충엽 선생에게 명리(命理)를 공부했다. ‘역문관서우회’ 회장으로 『이름 22수의 주술』(중앙일보사, 1995)과 『도계실관』(너른터, 1993)을 펴냈다. 1997년 1월부터 수효문화원에서 『주역』을, 능인선원에서 『명리(命理)』를 강의하며 『수필과비평』에 ‘이야기로 읽는 주역 에세이’와 월간 『까마』에 ‘천지현황(天地玄黃) 주역 에세이’를, 월간 『묵가』에 ‘주역산책’을 2년 동안 연재하였다.
2002년부터 5년간 수필전문지인 『에세이문학』의 발행인과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회장을 역임하고 『월간문학』 편집위원과 지하철 게시판 『풍경소리』 편집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수필집 『빈 배에 가득한 달빛』, 『사유의 뜰』,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기억하라』, 『인생은 아름다워라』, 『라데팡스의 불빛』과 선집 『탱고, 그 관능의 쓸쓸함에 대하여』, 『만목의 가을』과 작가묘지기행인 『그들 앞에 서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진다』(Ⅰ·Ⅱ) 외 공저 다수가 있다. 현대수필문학상·남촌문학상·정경문학상·신곡문학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지금은 『에세이문학』과 『에세이스트』의 편집고문이며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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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신은 이렇게 가혹한가?’ 공자는 운명이 무엇인지를 나이 오십에 깨달았노라, 그리하여 ‘나이 오십에 지천명(知天命)했노라’고 술회했다. 나이 오십이 되어 그는 [주역]을 손에 들고 죽을 때까지 내려놓지 않았다. "나로 하여금 수년을 더 살게 해서 오십에 역(易)을 배우게 한다면 가히 허물이 없을 것이다"([논어, 술이편])라고 했던 것이다. 그는 다시 말한다. 명(命)을 모르고서는 군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이 살고 죽음에는 일정한 명(命)이 있고 부귀(富貴)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다. 군자는 삶과 죽음, 부귀와 빈천의 결정을 진작부터 알고, 명(命)을 바로 알기에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면서 분수를 지킨다고 말했다. 하늘이 정해 놓은 운명을 따른다는 것, 이것이 공자의 ‘낙천지명(樂天知命) 고불우(故不憂)’의 소회이다. 천명을 알고 이에 안도하나니 무슨 근심할 바가 있겠느냐는 심정의 천명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근심하지 않는다는 그의 강렬한 의지의 표현 속에서 ‘고불우(故不憂)’의 연고를, 즉 천명(天命)을 알기 때문이라는, 자기 이해의 변이 왠지 인간적인 연민으로 다가옴을 어쩔 수 없었다. 근심 속에서 근심하지 않는 것, 근심을 해결하지 못한 채, 그 속에서 다만 근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가 고국을 떠난 지 13년 만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미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뒤였고, 외아들 백어마저 그의 앞에서 숨을 거둔다. 손자인 자사(子思)를 데리고 이따금씩 임금의 자문에 응하면서 만년을 오로지 [주역] 연구에만 몰두했다. 이때 주역책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고사가 생겨났다. --- p.26

사람은 다소 불우해져야 도에 다가서게 되는 것 같다. 여기에는 공자 자신의 심정도 은유적으로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한다. 역(易)을 지은 자란, 즉 역(易)의 성립은 약 5,000년 전 문자가 없던 상고(上古)시대에 복희씨가 황하에서 출현한 용마의 등에 55개의 점을 보고 우주 만물의 생성의 이치를 깨달아 8괘를 그으니 시획(始劃) 8괘로써 그는 역의 조종(祖宗)이 되었다. 두 번째는 주나라 문왕이 ‘복희의 역’을 연구하여 64괘에 괘사를 붙이니 문자로 된 역(易)이 시작되었으며, 문왕의 셋째 아들인 주공(周公)이 부왕의 역을 계승하여 각 괘의 효(384효)에 효사를 붙였다. 문왕의 괘사와 주공의 효사를 합하여 ‘주역경문(周易經文)’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자의 해설이 없었다면 [주역]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p.29

노자는 도에 이르른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하였으며, 현덕을 갖춘 그 성인은 자신의 총명을 나타내지 않고, 그 빛을 안으로 싸서 부드럽게 하며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의 티끌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화광동진(和光同塵)’하고, 겉으로는 허름한 베옷을 입고 안으로는 옥[玄德]을 품듯이 하며 내면은 무위(無爲) 무사(無事)를 행하며 도와 합치된다는 것이다. 노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 p.41

성리학의 사상적 구조나 논리의 뼈대는 처음에는 허약했다. 이런 유교가 만약 노장이나 불교를 들여와 새로운 이해의 틀을 짜지 않았다면 아마 주자학은 탄생하기 어려웠을는지도 모른다. 동진(東晋) 이후 불교에서는 반야를 설명함에 도(道)의 본체를 이(理)로 보고 당대(唐代)의 화엄학에서는 이사무애(理事無碍) 또는 이법계(理法界) 등의 논리와 분석을 통해 진여(眞如)를 이(理)로 해석했다. 주자는 불교에서 이(理)와 체용(體用)의 개념을 도입했다. 불교는 또한 도교에서 무(無), 현(玄) 등의 용어를 차입해 공(空)에 대입시켰다. 주자는 한때 대혜종고 선사 밑에서 선(禪) 수행을 한 적도 있었으며 그가 지은 [참동계고이(參同契考異)]도 도교에 대한 관심을 증명한 책이었다. 그의 노장과 불교는 성리학의 바탕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도(道)는 ‘이(理)’로 번역되었다. --- p.77

주자는 본디 [역경]을 ‘점치는 책(易本卜筮之書)’으로 규정했다. 그는 [주역]의 성립 과정에 대해 복희(伏羲)가 괘(卦)를 그리고 문왕(文王)이 괘풀이(卦辭)를 지었으며, 주공(周公)이 효풀이 글(爻辭)을 쓰고 공자(孔子)가 십익을 지었다는 전통적인 해석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에 따르면 복희 당시에는 문자가 없었으므로 괘와 효를 그려서 천하의 사물을 개통시키고 그 사물들의 직무를 이루게 하였으며, 문왕이 괘 전체의 모습을 보고 괘풀이 글을 짓고 주공이 괘효의 변화를 보고 효풀이 글을 써 길흉의 모습이 더욱 분명해졌으며 문왕과 주공의 괘효(卦爻) 풀이 글은 다만 점치기 위해 쓴 것이나, 공자에 이르러 비로소 의리(義理)로 역(易)을 말하게 되었다고 [주자어록(朱子語錄)]에서 밝히고 있다. --- p.83

토정은 [대인설]에서 말한다. "신령스러움은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신령스러움이 없다. 알지 못하면서 능히 신령스럽고, 다투지 않으면서 능히 강하며,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 능히 부(富)하고, 벼슬하지 않으면서 능히 귀한 것은 오직 대인(大人)이 할 수 있는 것이다."([토정유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능히 신령스러운 경지. 그것은 허령(虛靈)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무심(無心)이 아니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거울이 형체에 응하고, 종(鍾)이 소리에 응하는 것은 모두 무심(無心)이 그냥 지나가는 흔적일 뿐. 배워서 도달하는 앎[有心]이란 무심만 못하다는 것을 토정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 p.129

화담은 [귀신생사론]에서 생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정이천은 죽음[死]과 삶[生], 사람[生]과 귀신[死]은 하나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라 했으니 이것으로써 다 말한 것이다. 나도 사(死)와 생(生), 인(人)과 귀(鬼)란 다만 기(氣)의 뭉침과 흩어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어 흩어짐은 형체만 흩어질 뿐이요, 담일 청허한 기운의 뭉침은 끝까지 흩어지지 아니 하느니 흩어진다 해도 태허(太虛) 담일한 안에 있어 그와 동일한 기이다. (생략) 눈앞에 사라져 버림을 보지만 그 나머지 기운이야 마침내 흩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니 어찌 이것을 다 없어진다고 하겠는가?" 화담은 계속 생사를 촛불에 비유하면서 촛불이 타서 없어지는 것 같지만 그 기는 우주 안에 그대로 있는 것과 같이 사람도 죽으면 보이지 않는 우주 속에 그대로 있다고 하였다. --- p.137

만고(萬古)로써 자신의 영토를 삼으니 누항은 그의 봉토가 아니었으며 도덕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삼으니 그의 봉토는 얼마나 넓고 또한 얼마나 큰가? 그러나 그는 여전히 누추한 마을에서 살았다. 남명은 자신의 심정을 그를 통해 대변한 것이리라. 안연처럼 영원한 세월로써 자신의 영토를 삼고, 도덕으로써 그의 지위를 삼고자 한 것이었다. 남명은 스스로 [주역]에 의거하여 곤궁과 통달의 논리를 사색하며 [누항기]를 지었다. 곤궁과 통달이란 ‘궁한즉 통한다(窮則通)’는 그것인데 이는 [주역] ‘계사전’의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에서 비롯된다. 곤궁함은 오히려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에 의거하여 통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주역]의 지혜로 그는 비로소 다양한 곤궁을 통달할 수 있었다. --- p.146

주역의 64괘 중 학문과 교육에 관련된 대표적인 괘로는 산수몽괘를 꼽을 수 있다.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서도 산수몽괘가 등장한다. 몽괘에는 각 효(爻)마다 구체적인 교육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엄격히 하다가 차츰 부드럽게 가르칠 것을 권유한다. 발몽(發蒙)·포몽(包蒙)·곤몽(困蒙)·동몽(童蒙)·격몽(擊蒙)으로 율곡은 여기서 몽매함을 격파한다는 ‘격몽’을 취해 [격몽요결(擊蒙要訣)]이라 책이름을 붙였다. 조선 중종 때 박세무가 지은 [동몽선습(童蒙先習)]도 이 몽괘에서 연유된다. --- p.171

[주역]이 서양에 전해진 것은 17세기 말(강희 연간), 중국에서 선교하던 예수회를 통해서였다. 쿠프레, 부베, 앙리, 르기 등이었는데 프랑스 신부 부베(1656~1730)가 라이프니츠에게 르기의 라틴어 번역본 [역경]과 [역경]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적어 보낸 것이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687년 교황의 명으로 중국에 체재하면서 [주역]을 배우기 시작한 부베는 이미 만주어와 한문에도 능통했다. 두 사람의 서신은 계속되었고 라이프니츠는 부베에게 수 혹은 대수(代數)를 이용하여 추상적·필연적 진리를 증명하려 한다고 했다. 그는 중국 문자 속에서 철학 부호를 찾아냈으면 했는데 이것이 부베로 하여금 [주역]의 상수학 방면을 연구하게 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 p.177

라이프니츠는 역의 음양을 각각 기호화하여, 구체적인 현실계를 기호로 환원하여 기호로써 세계를 내다보려고 했던 것이다. 세계가 단지 음과 양의 2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통일적인 원리, 즉 무수한 구체적 현상계를 형성하고 있는 보편적인 논리적 근원이 음과 양이라는 이원적 전개에 연유되어 있다는 것과 이것을 상징적인 기호로 환원해서 이 기호를 논리연산자(論理演算子)로 하여 구체적 사물의 세계를 파악하려 했던 것이다. --- p.185

20세기의 대표적인 과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자연의 본질적인 질서를 파악하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며, 그 질서는 수학적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세계가 수학적인 질서를 지닌다’는 피타고라스의 주장과도 상통하며 라이프니츠 역시 수학을 연구한 것은 인간의 사고를 합리적으로 표현하는 원리의 보편 수학, 즉 보편적인 기호법을 탐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라이프니츠는 해석의 비밀은 그 기호 표시 방법에 달려 있다고 하며, 그 방법이란 개념이라든지 연상의 본질을 보다 완전하게 나타낼 수 있는 기호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기호로 간단히 표현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가장 잘 찌를 때이고 그럴수록 생각하는 수고는 놀랄 만큼 감축된다"고 하였다. --- p.194

융은 무의식 안의 내용을 의식화 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주역]을 주목했고, 주역 점(占)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융의 심리학 전반에는 주역 사상이 농축되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말대로 빌헬름에게서 힘입은 바가 컸다. 리하르트 빌헬름(1873~1930)은 독일에서 문학과 수학을 공부한 뒤 철학, 신학을 전공하고 선교사로 중국에 건너가 중국학 연구에 몰두하며 반평생을 보냈다. 그는 주역의 대가인 공자의 후손으로부터 주역을 사사 받았고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스승의 도움을 얻어 독일어판 [역경]을 펴냈다. 융과의 만남은 1920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자 고국에 돌아갔을 즈음인데 1922년 융에게 초대되었을 때 빌헬름은 취리히의 심리학 클럽에서 [주역] 강의를 맡고 있었다. 융은 빌헬름이 번역한 [주역] 책을 자주 이용했다. 1929년 빌헬름이 번역한 [황금꽃의 비밀]은 역(易)이라기보다는 도교의 내단(內丹)에 관한 책인데 그의 권유로 융은 그 책에 ‘제2판을 위한 서문’을 쓰게 된다. 융은 이 책이 자신의 심층심리학의 구상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2년 동안 영국인 포로수용소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매일 아침 만다라를 그렸다. 그 그림으로 융은 자신의 정신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 p.215

도(道)라는 존재는 어렴풋하니 분명치가 않다. 다만 그 가운데 무형의 존재의 모습을 느껴 알 수가 있다. 앎의 작용을 끊고, 멍한 상태에서 느끼는 생의 충만감. 경지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속은 깊고 어두워진다. 이러한 상태를 ‘요명(窈冥)’이라 한다. 어두컴컴한 속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또 하나의 노인, 노자에 이어, 이번에는 융을 바라보게 된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요, 인류의 원초적 상징의 해석자이며, 무의식의 언어를 해독하고 개체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지도한 영혼의 의사. 인간 심리의 전체성, 심리의 양극성과 그것의 통일의 경향을 재발견한 사람, 그의 심리학은 심리학을 넘어서 의학, 교육, 문화철학, 물리학, 신학 등 많은 학문에 영향을 미쳤다. --- p.251

흐르고 변화하는 것[變易] 가운데, 변화하지 않는[不易=道] 확고부동한 것을, 즉 [주역]의 ‘변역’과 ‘불역’의 이치를 내포한 정신적인 삶 자체의 지속적인 일관성을 헤세는 크네히트의 환생으로써 설명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다생의 윤회를 거쳐 변화하되 변화하지 않는 정신과 신체가 죽음을 거쳐 변화하되 죽지 않는 것들을 톺아낸다. 그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카스탈리엔이라는 교단조차도 과거의 지배하에 있는 역사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러나 앞으로 보존과 유지를 위해서 변화와 전진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도달하고 성취한 것마저도 ‘더욱 생성과 변화를 계속할 능력을 잃게 되면 사멸을 선고받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통고한다. 변화와 전진, 생성과 변화, 이와 같이 때를 따라 바뀌고 변화하여 도(道)를 따르는 것이 [주역]의 원리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음이 양을 낳고 양은 다시 음을 낳고 순환해서 끝이 없다. 여환무단(如環無端)이다. 이와 같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여러 번에 걸쳐 다시 태어난 크네히트의 영혼. 영혼의 불멸성과 지속적인 변화에 대한 헤세의 믿음은 작품 [유리알 유희]에 서술된 ‘이력서들’에서 볼 수 있었다. --- p.256

유희의 명인 크네히트가 [역경]의 괘사와 그 조직을 연구하고 있을 때, 그는 ‘이러한 법칙의 신비로운 질서와 의미를 우주와 세상에 대한 인간의 배열을 나타내는 아주 적절하고도 정다운 비유’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가옥 건축의 이러한 전통에서 아주 오래된 신비로운 국민정신이 사색적이고 학구적인 중국의 고관(高官)정신과 유희의 명인 정신과도 놀랄 만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중국적 도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유희는 명인의 기질과 ‘지나치게 총명한 환상’을 통해 변화되고 풍부해져서, 마침내는 완벽하게 조화로운 [유리알 유희]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완전하게 아름다운 [유리알 유희]란 크네히트가 [역경]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그에 통달한 다음에야 가능해진 것이다. 유희의 하나하나가 그 어떤 주제나 원칙에 따라 수행된다고 할지라도, 전체적 [유리알 유희]는 조화로운 대우주의 질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즉 이 [유리알 유희]는 바로 대우주의 총체적 본질이 되고 있는 것이다. --- p.277

파스는 [활과 칠현금]에서 "언어가 원래 말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를 통하여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의 경지를 보여 주기 위해 작업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주역]에서는 가능하다. 이 점을 파스가 놓쳤을 리 없다. 우리가 궁금한 사항을 주역의 시초점(占)에 물으면 신명(神明)은 말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괘(卦)라는 이미지를 통해 그 답을 알려준다. 괘를 통해 언어를 배제한 수작(酬酢)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인이 객에게 술을 따르는 것을 ‘수’라 하고 객이 주인에게 답하는 것을 ‘작’이라 한다. 점치는 자[筮者]가 시초에 길흉을 묻는 것이 ‘수’이며 시초로부터 그 길흉을 아는 것이 ‘작’이다. 글자가 없던 시대에 음양의 부호로 된 괘의 이미지를 통해 이렇게 문답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 p.296

겸재는 주자의 [묘암도기]를 읽고 그대로 그림에 옮겼다. 석축으로 높게 쌓은 단, 띠집에는 세 개의 창문과 앞문. 그는 주역 괘로 창문을 달고 복숭아나무, 매화나무, 오얏나무, 대나무 울타리, 그 정원을 거니는 주자의 모습까지 그려놓고 나니 주역의 이법(理法)이 갖춰진 질서 정연한 묘암이 되었다. 그러나 겸재는 주자가 제시한 네 괘 중에서 ‘태(泰)’괘와 ‘복(復)’괘만을 뽑아 좌우의 창문에다 상징적으로 배치하였다. 역리에 밝은 영조도 그의 뜻을 짐작하니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배제시킨 ‘천지비’와 ‘산지박’괘는 상서롭지 못한 괘였다. 영조는 화폭 맨 위에 글을 지어 넣고 가운데는 [주자어류]의 본문을 적어 넣고 맨 아래에 겸재의 [묘암도] 그림을 배치하게 했다. 겸재는 그 후 [주자대전(朱子大全)] 전85권의 [취성정화병찬(聚星亭畵屛贊)]에 나오는 고사를 대폭의 채색화로 그렸다. --- p.329

역(易)에 통달하면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에 통해 우주의 법칙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안다고 한다. 지혜가 완성되면 천지(天地)의 법칙과 같아지기 때문이니 노자(老子)는 이것을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고 하였다. 원래 주역의 괘는 어떤 모습을 형상(形象)한 것이며 괘에는 수(數)가 붙게 마련이다. 괘상과 괘수, 즉 상수(象數)는 원래 자연의 원리를 표현한 것으로 위로는 천문(天文)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알며 상(相)을 보고 점을 치기 전에 미리 아는 것을 말한다. --- p.361

연명(淵明)은 그의 자(字)요, 본명은 잠(潛)이다. 누가 그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던 것일까? 왜 하필 허구 많은 글자 중에서 물에 잠긴다는 ‘잠(潛)’ 자를 썼던 것일까? 그의 명조(命造)를 훤히 알기 때문에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아니면 ‘잠길 잠, 숨을 잠’이란 이름 때문에 그의 운명이 숨어서 은둔해야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인지 나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잠룡(潛龍)과 도연명을 연관지어 생각하게 된 것은 그의 이름이 ‘잠(潛)’인 것뿐만 아니라 그의 자서전 [오류선생전]에서 만난 그의 생애와 인품이 실제로 주역의 건(乾)괘 초 9의 효사와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p.372

경학(經學)의 전성기이던 후한(後漢)은 유교의 윤리를 준수하는 도덕 중의 사회였다. 그러므로 유비의 인(仁)이나 공명의 충(忠)은 나관중에 의해 한껏 빛을 발(發)했던 것이다. 120회의 장(章)으로 나뉘어 씌어진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읽고 제출해야 했던 독후감 쓰기는 중학교 2학년 때의 방학 숙제였다. 그 후로 두 번을 더 읽었으나 감명 깊게 남아 있는 장면은 주유가 이끄는 3만 수군이 80만 명의 조조 군사를 무찔러 양자강의 고기밥이 되게 하는 적벽대전의 쾌거와 적벽 움을 앞에 둔 제갈공명이 칠성단을 쌓고 동풍을 기원하는 대목이었다. 칠성단 주위에는 주역의 64괘를 본뜬 64개의 황색 깃발이 꽂혀 있고 그 깃발이란 8괘를 상징한 가로 세로 여덟 개씩 정팔각형으로 배치된 이른바 마법진(魔法陣)의 배치라는 것이다. 이 비책을 구사한 덕분에 제갈공명은 겨울철에 불 리가 없는 동풍을 불러일으켜 오나라 장군 황개의 조조 본진에 대한 기습 화공이 성공을 거두게 한다. 초자연적인 신통한 그의 능력이 어린 마음에도 몹시 우러러 보였다.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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