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들어온 지 약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변한 건 한 가지도 없다.
할머니와 새아빠, 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쌍둥이 의붓 남동생 둘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할 때면 변함없이 싸늘한 공기가 내려앉는다.
나와 함께 있을 땐 곧잘 웃으며 조잘거리는 엄마도 할머니의 매서운 눈초리가 또 어떤 트집을 잡아 자신을 괴롭힐지 몰라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말 한마디 꺼내지 않는다.
엄마와 새아빠를 제외하곤 이 집안에 말을 섞고 싶은 사람이 없는 나 역시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게 된다.
가장 걸작은 이 집안의 쌍둥이, 나와는 한 살 터울이지만 빠른 입학으로 인해 나와 같은 고등학교 2학년생인 서문현과 서문진이다. 할머니가 우리 엄마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면, 이 형제는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녀석들이다.
말수가 적고 도무지 감정이라고는 드러내지 않는 형 서문현은 아예 나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곤 했고, 말 많고 탈 많은 망나니 동생 서문진은 새아빠가 없을 때면 할머니와 합세해 나를 괴롭히곤 했다.
물론 내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착하디착한 우리 엄마처럼 조용히 웃으며 참아 내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똑같이 되갚아 주고, 무시해 주고, 면전에서 쌍욕도 많이 했다.
할머니 앞에서야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지만 새아빠가 내 편을 들어줄 때면 과장되게 상처받은 연기라도 해 보이며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앙갚음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이런 나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와 쌍둥이 형제의 모진 구박에도 엄마는 그저 웃기만 한다. 그동안 엄마의 저 성격을 이용해서 제 이익을 챙기려 든 사람이 한둘인가.
상처를 받으면 나는 악으로 깡으로 살아남고 버텨서 결국 그대로 갚아 주곤 한다. 그게 천사 같은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내가 터득한 생존 방법이었다.
“연아야, 학교생활은 어때? 적응이 좀 되니?”
“……아, 네. 다닐 만해요.”
무겁고 답답한 식탁 위의 공기를 걷어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단란한 척 둘러앉은 여섯 식구 중 새아빠가 유일하다. 뻔하고 지루한 내용이긴 하지만 나는 나름 성심껏 새아빠의 질문에 대답해 준다. 우리 엄마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데다가 어떻게든 내 편이 되어 주려는 새아빠를 나는 차마 진심으로 미워할 수가 없었다.
“진이랑은 같은 반이라면서? 진이가 겉은 저래 봬도 마음은 따뜻한 아이니까 혹시 어려운 일 생기면 꼭 도움 청하고.”
아무리 새아빠라도 이건 좀 너무했다. 서문진은 어떻게 하면 나를 산 채로 뜯어먹을까 하는 고민밖에 없는 녀석이라는 걸 새아빠도 알아야 하는데. 따뜻한 마음 놔뒀다가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나한텐 보여 주지 않는 거냐며 당장이라도 녀석에게 따져 묻고 싶은 걸, 그저 조용히 숟가락만 내려놓았다.
살짝 서문진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녀석 역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딴 곳을 쳐다볼까 하다가 도전적으로 나를 쏘아보는 놈에게 질 수 없어 나 역시 녀석을 똑바로 바라봐 주었다.
“필요한 건 없니? 학용품이나 문제집 뭐 그런 거. 아빠가 도와줄 거 있으면 바로 말하고.”
새아빠의 따뜻한 시선이 내게로 향하는 게 느껴지자 더 이상 서문진과의 불필요한 눈싸움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새아빠를 바라보며 억지로나마 작게 웃음을 만들어 보였다.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아빠 눈엔 저 계집애밖에 안 보여? 누가 보면 저 계집애가 친딸인 줄 알겠네.”
“서문진!”
“재수 없어.”
“너, 너, 이 녀석!”
눈을 먼저 돌려 버린 게 실수였을까. 아니면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거침없이 쏟아지는 서문진의 폭언에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의기소침해져서가 아니다. 아침부터 지긋지긋한 싸움이 시작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결국 상처받는 건 마음 여린 우리 엄마뿐일 테니.
“말을 그렇게밖에 못 해? 이 자식이,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그리고 누나한테 계집애가 뭐야?”
“애비야, 식사 중이다. 그만해라. 진이가 철이 없어서 그런 게지. 그리고 뭐 우리 진이가 틀린 말이라도 했더냐? 따지고 보면 네가 연아 저것을 너무 감싸고도니 그런 게지.”
“어머님!”
똑같은 레퍼토리. 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뜬금없이 걸어오는 쌍둥이 형제의 시비와 그런 형제를 혼내는 새아빠의 불호령. 하지만 결국 쌍둥이 형제를 감싸는 할머니가 개입하면 거기서 상황은 종료된다. 아무리 나와 엄마를 감싸고 싶어도 좋은 집안에서 잘 자란 새아빠는 할머니 앞에서까지 큰소릴 내진 못했다.
“아, 밥맛 떨어져.”
거칠게 의자 빼는 소리가 나더니, 한바탕 소동을 벌인 본인은 훌러덩 나가 버린다. 휴, 화가 나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진짜 밥맛 떨어지게 한 게 누군데?
“저도 일어날게요.”
눈앞에서 벌어진 소동은 자신과는 별개의 일이라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방관하던 장남 서문현께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남은 건 아직도 얼굴이 붉어져 있는 새아빠와 그런 새아빠와 우리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며 혀를 차고 있는 할머니, 그리고 나.
“쯧쯧. 화상 둘이 굴러들어 오니 집안에 바람 잘 날이 없구먼.”
다 들으라는 듯 할머니의 마지막 일침이 가해지자, 아무렇지도 않으려고 애쓰던 엄마의 얼굴까지 파리해진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