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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 르포기자 권터 발라프의 인권 사각지대 잠입 취재기

리뷰 총점9.0 리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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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비평/비판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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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1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700g | 153*224*35mm
ISBN13 9788994963518
ISBN10 899496351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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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 터키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의 가면을 벗기려면 변장을 해야 했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속이거나 위장하는 것도 불가피했다.
매일매일 겪는 멸시와 적대감 그리고 증오를 외국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고 사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이 견뎌내는 것이 무엇인지, 이 나라에서 인간에 대한 모멸이 대체 어느 정도까지 자행될 수 있는지 이제는 안다. 인종차별이라는 작태가 우리 가운데, 이 한복판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 안에서) 자행되고 있다. 이 체험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나의 모든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19세기에 관한 역사책에서나 기술될 만한 상황을 나는 독일연방공화국 한가운데서 경험했다.
일은 너무나 지저분하고 힘들었으며 인간의 마지막 진까지 빨아먹을 정도였는데, 그만큼 멸시와 모욕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경험이 내게 상처만 준 것은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나의 정신을 성장시켜주었다. 공장에서 그리고 건설현장에서 나는 〈빌트 차이퉁Bild-Zeitung〉 편집실에서 일하던 때와는 다른 친구들을 얻었으며 연대를 경험했다. 하지만 신분상의 안전문제 때문에 이 친구들에게 내 정체를 밝힐 수 없었다. ---「들어가는 말」 중에서

변장한 내 모습을 째려보는 눈빛에 주눅 들지 않고 이런 겉모습이 내게 어울리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전에 자주 들렀던 술집 몇 군데를 찾아갔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궁극적인 확신은 들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정체가 탄로 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83년 3월 6일 저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기민련(기독교민주연합CDU,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5년에 창당한 독일의 중도 보수정당―옮긴이)의 거물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이득을 보게 된 사람들과 함께 본에 있는 콘라트아데나워기념관에서 승리를 축하할 때, 이를 실전 연습의 기회로 이용했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나는 주철로 만든 손전등을 준비하고 텔레비전 보도팀에 섞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강당은 대만원이었으며 맨 구석 자리까지 휘황찬란한 조명등이 켜져 있었다. 나는 어느덧 15년이나 된 검은색 단벌 정장을 차려입고 한가운데에 서서 초라한 손전등을 들고 저명인사 가운데 이 사람 저 사람을 비춰댔다. 직원 몇몇이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고는 국적이 어디냐고 물었다. 아마도 이란인들이 예고한 습격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의도 같았다. 우아한 파티복을 입은 한 여자가 경멸하는 투로 힐끗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대체 저 사람은 여기서 뭘 찾고 있는 거죠?” 그러자 직원으로 보이는 나이가 좀 든 남자가 대답했다. “여기는 국제적인 장소입니다. 심지어 코카서스 사람도 축하연에 참석하거든요.” ---「실전 연습」 중에서

거의 1년 동안 나는 온갖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려고 힘겹게 노력했다. 진짜 알리였다면 도저히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자 그대로 모든 일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부퍼탈에 있는 큰 식당과 복합영화관을 운영하는 주인을 위해 의자의 장식물을 교환하고 바를 수리하는 일을 도왔으며, 후줌의 생선가공공장에서는 생선가루를 퍼 담았고, 바이에른 주에 있는 슈트라우빙에서는 오르골을 연주하며 몇 시간 동안 돈 한 푼 벌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이런 일들 때문이 아니었다. 일상적인 외국인 증오는 더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외국인에게 적대행위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주의를 끌 만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린아이들은 “일자리가 없는 터키인입니다. 독일에서 1년 있었고 여기서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쓴 팻말을 들고 오르골을 연주하는 신기한 아저씨를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물론 그 아이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슈트라우빙의 시장 광장에는 한 마술사 부부가 내 맞은편에서 나처럼 오르골을 연주했는데 이 부부가 자신들의 서커스 차 안으로 경쟁자인 나, 알리를 초대해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걸음마를 떼다」 중에서

내가 비어 있는 자리 중 한 곳을 발견하고 간신히 좌석 끝에 걸터앉으려는 순간, 그 옆에 있던 사람이 일부러 다리를 넓게 벌리고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 인사말을 들었다. “야, 대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기어들어와? 니들같이 말썽부리는 족속들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니들이 처박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몰라?”
사방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정치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국민’의 입가에서 맥주가 흘러내렸다. 그는 이미 많이 마신 상태였다. 나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보려고 애썼다. “저는 당신들 슈트라우스의 큰 친구예요. 힘 있는 사람이죠.” 이 말에 대한 대답으로 천지가 진동하는 웃음이 터졌다. “뭐라고, 너희들 방금 이 말 들었어? 이 작자가 슈트라우스의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단다. 그래 좋은 일이지.” 통통한 몸매의 여종업원이 우리 옆을 지나가자 비로소 이들은 나한테서 관심을 돌렸다. 가슴이 푹 파인 그 여자의 디른들(Dirindl,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 의상―옮긴이)과 그녀가 가져온 넘쳐흐르는 맥주가 이들의 관심을 더 끈 것이다.
나도 이젠 맥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마실 수 없었다. 종업원이 나를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카운터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내 주문을 받지 않았다. 세 번이나 주문을 시도하자 주인이 다가와서 소리쳤다. “나가, 꺼져버려, 당장!” ---「정치적 성수요일 집회에 참석하다」 중에서

일한 지 사흘째 되는 날부터 튀기는 일과 그릴 작업, 카운터 근무, 즉 숙달된 ‘런치맨’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또한 나는 포장지와 음식물 찌꺼기를 식탁에서 치우고 닦는다. 청소할 때 우리는 행주를 두 개 사용하는데 하나는 식탁을 닦는 용이고, 다른 하나는 재떨이를 닦는 데 쓴다. 바삐 서두르다 보면 식탁용과 재떨이용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행주로 변기청소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정말 소름이 끼쳤다. 다른 행주를 달라고 했더니 그냥 가진 것으로 쓰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한번은 매니저가 그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막힌 변기를 뚫으라고 한 적이 있다. 시키는 일을 재빨리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 그는 그릴 도구를 집어 들었다. 물론 부매니저에게 엄청나게 혼이 나긴 했지만 말이다. 매장 입구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은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입구 오른쪽과 왼쪽 50미터까지는 항상 깨끗하게 청소해야 하는데, 고객들이 엄청나게 많은 포장재를 그곳으로 던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얇은 셔츠 차림으로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종종 내보내졌다.
휴게실에서 우리는 더이상 쫓아낼 수 없을 것 같은 바퀴벌레에 관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 녀석들은 처음에는 지하실에서 기어 다녔으나 이제는 주방에서도 발견된다. 어떤 바퀴벌레는 직접 그릴 위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한번은 빅맥 위에 제법 큰 바퀴벌레가 있는 것을 고객이 발견하기도 했다. ---「즐겁게 드세요!」 중에서

쉬는 시간에 우리 팀 15명은 12제곱미터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트레일러에 빽빽이 끼어 앉아 있어야 했다. GBI 쾰른사무소에서 이리로 알선되어온 어느 목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30년 동안 건설현장에서 일했는데, 현장감독이 나한테 더러운 꼴을 당하기 전에 알아서 그만두라고 말하더군. 여태까지 그런 꼴은 당해보지 않았는데!” 몇몇 사람들은 일하러 오고 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매일 15시간씩을 정신없이 시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받는 돈은 여기서 일하는 10시간뿐이란 말이야! 차로 이동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한 푼도 못 받거든.”
쉰 살가량 되어 보이는 한 터키인 동료는 WTB 현장감독에게 유독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그는 독일인 동료들에 비하면 적어도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일을 하는데도 작업반장은 “병신 같은 터키 놈”이라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네가 더 빨리 일하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공사장 돌 더미를 치울 때 너도 함께 갖다버릴 거야!” ---「건설현장에서」 중에서

겉모습만 봐도 알리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입은 옷은 남루했고 어깨에 걸친 가방에는 보온병이 삐져나와 있었다. 잠깐 동안의 방문. 멋진 주택가에 위치한 사제관, 정원은 마치 공원 같았다.
예순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신부가 쇠창살로 된 사제관의 육중한 문을 삐쭉 열고 신중한 눈빛으로 알리를 쳐다보았다. “여기선 아무것도 얻어갈 게 없으니 사회복지국으로 가보쇼.”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신부는 내가 당황한 것을 알아차리고는 내가 사정을 설명하기도 전에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뭘 좀 얻어갔으면 하고 원하지만 여기서는 원래 해줄 게 아무것도 없소. 여긴 사제관이고 아무것도….”
나는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나 동전 한 푼도 원하지 않아요. 그저 세례만.”
문이 조금 더 열리고 그 신부는 호기심과 비난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며 말했다. “아, 여긴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워낙 많이 찾아오지. 모두 다른 사람한테 빌붙어 살기를 바라는 자들이라오. … 어디에 사시오? 애는 몇 살이고 세례는 언제 받으려고?”
나는 그에게 “내”가 사는 집의 주소를 말했는데, 그곳은 알리가 일주일치 집세도 내지 못할 상류층 지역이었기에 이렇게 덧붙였다. “그곳 살아요, 거기 지하실에서. 어린이 세례 아니고. 나 터키인, 지금까지 이슬람교에 있었어요. 나 위해 세례 원해요. 그리스도 더 좋아요. 그런데 빨리 해야 해요. 그건….”
마치 내가 세례성사가 아니라 할례를 해달라고 매달리는 것처럼 그는 약간 황당해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조그만 틈새만 남겨두고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프로이센 사람들도 그렇게 빨리 총 쏘듯 하지는 않소. 그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일단 여러 전제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 해요.” 그리고 얕보는 듯한 눈빛으로 해어진 내 겉옷을 훑어보았다. “누구나 우리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오.” 내가 국외로 추방당할 위협 때문에 사정이 시급함을 강력히 말하려 했지만, 신부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렇게 유대인처럼 서두르지 마시오. 무엇보다 그 문제는 교회 행정위원회와 상의해봐야 하오. 일단 합법적으로 당국에 제출한 신고서를 나한테 갖고 오시오.” ---「세례는 안 됩니다」 중에서

“가격에 관해 서로 이야기해볼 수는 있습니다. 단, 당신이 미리 계약하고 돈을 낸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저희가 당신에게 5퍼센트를 양보하면 5,700마르크밖에 안 되는 금액이군요. 그렇지만 당신이 즉각 돈을 낸다는 전제에서만 그렇습니다.”
놀라는 척하며 내가 물었다. “그럼, 나중 나 안 죽으면, 돈 돌려줘요?”
“아니요. 환불은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특별할인 가격은 저희가 양보하는 호의밖에 안 되는 거죠. 제가 정확히 이해했다면 그런 겁니다. 당신이 아주 확실하게… 두 달밖에 안 남았다면….” 그가 더듬거렸다. 내 면전에서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가 껄끄러운 것 같았다.
“… 그러니까 저희가 알고 싶은 건 ‘터키 어느 곳으로 관을 운송해야 하느냐’입니다. 운송 문제를 위해 몇 가지 계산을 해봐야 하거든요.”
“우리 아주 높은 곳 있어요. 러시아 쪽 산, 그곳 경치 아름다워요. 당신 가족 구경할 수 있어요, 돈 안 받고.”
이 말에 그는 꿈쩍도 않고 전혀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어차피 갈 계획은 없어요. 저희가 운전기사 한 사람을 불러야 하고… 아, 킬로미터당 1마르크 30페니히를 미리 지불해야 해요. 물론 왕복으로.” ---「장례식 혹은 생매장」 중에서

제철소에는 사방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마치 강력한 폭탄을 실어 나르는 듯한 거대한 운반차 속으로 불덩어리가 쏟아졌으며, 불에 타는 띠처럼 미리 파놓은 홈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처럼 고층건물 높이의 용광로 안에서는 강한 불길이 활활 일고 있지만, 여기 운반탑 위에서는 작은 불꽃을 피우려 시도하는 것조차 온갖 노력과 상상력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컨베이어벨트 사이에서 코크스 파편을 주워오고 서너 개의 나무판자(쉬는 시간에 다른 동료들은 이 나무판자를 의자로 사용한다)를 드릴로 잘게 쪼갰다. 처음에는 종이가 없어서 불이 붙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는 서너 개의 빈 담뱃갑과 쓰고 버린 종이손수건 두어 개를 찾아내어 쇠로 만들어진 손수레 안에서 불을 붙였다. 하지만 몸을 따뜻하게 녹이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작업조장이 나타나 “모두 내려가, 작업공구 들고서. 빨리빨리 서두르란 말이야”라고 명령했다. 우리는 불을 살려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나는 소중하고 성스러운 재산처럼 불을 애지중지했던 석기시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낡은 버스에 기어올라 만원인 차 안에 끼어서 쪼그리고 앉았다. 공장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이따금씩 밝아지는 어둠을 헤치고 우리는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여전히 공장단지 안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구역이자 코크스공장이 있는 슈벨게른에서 내렸다. 여러 개의 지하 계단을 내려갔는데 빛은 점점 희미해져 더 캄캄해졌으며, 먼지는 점점 더 자욱해졌다. 참을 수 없을 만한 지독한 먼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압축공기 송풍기를 들고 기계 틈새에 손가락 두께로 덮인 먼지층을 바람으로 날려서 올려보내야 했다. 순식간에 눈앞에 있는 먼지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진한 먼지가 일어났다. 먼지를 들이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꿀꺽 삼켰다. 목구멍이 먼지로 막혀 구역질이 났다.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중간 중간 숨 쉬는 것을 멈추려고 했지만 작업을 해야 하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작업조장은 죄수 부대의 감시자처럼 시원한 바람이 약간 들어오는 계단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서둘러! 2~3시간 안에 끝내야 다시 맑은 공기를 마실 것 아니야.” ---「가장 더러운 쓰레기 속에서」 중에서

다음 날은 정말 끔찍했다. 부작용에 대해서 전부 알고 있기에 실험 자체가 무의미했다. 이제 비로소 부작용을 겪는 것이다. 심하게 멍해지고, 극심한 두통이 오고, 넋이 나간 상태가 되면서 심각한 감각장애, 수면 상태가 지속되었다. 더욱이 잇몸에서 피가 나는 고통에 시달렸다. 피를 일곱 번이나 뽑고 몸을 계속 실험에 내맡겨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다른 이들도 모두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한 사람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다음에야 비로소 거의 모든 사람이 두통을 앓고 있음이 밝혀졌다. 사람들은 공개적으로는 침묵하는데, 그것은 다른 실험을 받지 못할까봐 겁이 나서 그런 것이다. 3년 전부터 실업 상태인 어느 실험용 인간(39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난 훨씬 더 심한 실험도 견뎌봤어. 중환자실에서 온몸에 튜브를 연결한 상태로 말이야. 거기서는 우리 그룹 모두가 질질 끌려다녀야 했고 몇 사람은 침대에 실려 갔어.” 그는 특히 위험한 실험은 밤에 실시한다는 뮌헨의 한 연구소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어서지. 그들은 언제나 실험대상자들을 찾고 있었어.” ---「인간실험에 지원하다」 중에서

알리는 가끔 이른 아침인 7시나 8시에 아들러의 부름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럴 때에도 30분에서 1시간가량이 지난 후에야 주인을 태우고 출발할 수 있었다. 대개 10∼11시 전에 아들러의 일이 시작되는 법은 없었으며 오후 2시나 3시경, 아무리 늦어도 4시에는 그의 일과가 모두 끝났다. 중간에 점심시간 1시간을 포함해서 말이다. 아들러의 일일 업무는 오버하우젠과 딘스라켄에 있는 여러 은행을 방문해 입금 내역을 체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특이하게도 아들러가 찾는 은행들은 모두 거주지 외각에 있었다. 중간에 그는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인 렘메르트를 찾아가기도 했다. 거의 항상 자신의 노동자들이 작업교대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 시간을 이용했는데 ‘염치없는 질문’과 ‘뻔뻔한 임금 요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면서 그는 거의 매번 자동차의 경보장치를 켜두라고 명령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종종 뒤스부르크에 있는 레스토랑이 딸린 테니스클럽에 들러 자신의 ‘탈세자’, 즉 사이가 아주 가까운 조세 자문관을 만나 ‘법적인 문제를 검토’하곤 했다. 아들러가 당국에 신고하는 공식 매출액은 연 ‘50만∼100만 마르크’인데 그렇게 해도 실제 사업비용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그의 영업방식에 비춰볼 때 실제 매출액은 그 네 배는 될 것이다. 신고하지 않은 불법노동자들의 임금만 따져보더라도 계산이 나왔다. ---「알리의 승진」 중에서

그는 티센에서 현재 “매달 3,000시간은 확실하게” 받았고 별도의 특별 작업도 있다고 설명하면서 경기가 지금처럼 잘 돌아가고 티센이 예기치 않게 이젠 끝이라고 통보하지 않는 한 매년 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알리에게 종업원을 부르라고 하고는 생색을 내며 말했다. “자, 모든 사람에게 마실 거, 레몬이나 콜라, 맥주 한 잔씩 돌려. 여기 테이블 전체에, 내가 사지.” 그러고는 의심쩍은 표정으로 마지막까지 불안하게 앉아 있는 “친애하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해명했다. “모두 주목하세요! 이제 임금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마치 노조와 공식적이고 의무적인 협의를 한 것처럼, 자기가 제멋대로 정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기아임금을 그는 “협정임금”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협정임금은 분명히 말해 열여덟에서 스물한 살인 사람은 8마르크 50페니히, 그리고 미혼과 스물한 살 이상인 사람은 9마르크, 결혼한 사람은 10마르크입니다”(우리 가운데 결혼한 사람은 극소수다). “내가 등급을 좀 매겼는데,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결혼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지출이 더 많아서 그런 겁니다. 협정임금은 예컨대 여러분 뜻에 따라 사회적 관점에 의해 등급을 정했습니다.” 아들러가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일어나서 나가!” ---「직원 총회를 열다」 중에서

1982년 8월 20일, 폐기가스실 안에 있는 이른바 ‘모래필터’ 교체작업을 하던 열네 명의 외부 회사 노동자들이 방사능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뒤셀도르프 관할 방사선클리닉으로 후송된 사건이 벌어졌다. 공장 관리국은 이 사건에 대해 발설하지 말 것을 엄격하게 지시했다. 다음은 뷔르가센에서 이 일을 경험한 어느 노동자의 기록이다.

“그 안에서 일할 때에는 항상 불안했다. 특히 사고가 난 후에는 더욱 그랬다. 사건 당시 이들은 처음으로 일시적인 폐업을 명령했다. 그런 후에도 인부들이 30분가량 안에서 작업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완전 폐쇄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우리 연마기술공들은 7미터 아래 구역에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계단 건물에 앉아 있었다. 갈라지는 곳에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공구들을 모두 그곳에 내려놓았다. 공구함이 세워져 있고 전선이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인부들은 완전 폐쇄조치가 내려질 때까지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출구에서 이들은 자동장치, 즉 모니터(방사능 흡수량 측정기계)를 통과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이때 이들 모두는 방사능에 완전히 오염된 상태였다. ---「방사선에 노출되다」 중에서

우연인 것처럼 아들러는 자기 사람들을 뷔르가센핵발전소로 보내고 있었다. 그의 방식이 언제나 그렇듯이 눈에 띄지 않게 분산시켜서 보내고, 절대 많은 수는 보내지 않는다. 여기 서른 명, 저기 열 명, 또 다른 곳에 한 명, 이런 식이다. 예상치 못하게 함부르크에서 적발되는 경우에도 어떻게든 루르 지역의 티센이나 STEAG, 만네스만 사에서는 계속 일이 진행되었다. 남부 독일의 루르석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강조하는 모토는 “티끌 모아 태산”이고 “법은 피하라고 있는 것”이었다. 아들러와 뷔르가센핵발전소와의 인신매매는 ‘하이드 씨’와 ‘마부제 박사’ 사이에 이루어진 사업 관계의 구상만큼이나 무시무시하다. 아들러의 범죄적 에너지는 원자력산업의 ‘기술적인 문제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더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여기서 매매되는 상품은 ‘불태워지기 위한 터키인’이다.
최악의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일단 끝까지 연기해볼 작정으로 나는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친구와 동료들이 함께 동참할 뜻을 보였다. 쾰른의 연극배우 하인리히 파흘이 원자력발전소 안전 책임자 ‘슈미트’ 역할을 맡았고, 내 동료 우베 헤어초크가 전문적인 조수 ‘한센’ 역할을 맡았다. ---「현실을 연극 무대에 올리다」 중에서

작가 발라프는 철강산업 종사자, 노사협의회, 금속노조 그리고 건설, 채석, 광석노조로부터 긍정적인 반향을 얻었다. 책 출간 이후 거의 매일 발라프에게 수많은 편지가 배달된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사례를 통해 사람들은 작가가 체험한 것과 비슷하거나 훨씬 더 나쁜 일을 전해주었다. 연방노동부장관의 기자회견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가 출간된 그해에 ‘인신매매업자’들에 대한 형사소송절차가 상당히 증가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여러 결과들」 중에서

1987년 2월 23일, 뒤셀도르프 지방법원은 드디어 발라프를 상대로 한 티센의 소송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티센 사가 제소한 총 일곱 건의 사안 중에서 한 건에 대해서만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다른 한 건에 대해서는 3분의 2 승소와 3분의 1의 기각 결정을 내렸으며, 나머지 다섯 건에 대해서는 모두 기각 결정을 내렸다. 또한 소송비용의 24퍼센트는 발라프와 출판사가 부담하고, 나머지 76퍼센트는 티센이 부담하라는 판결도 내렸다. 이로써 철강 대기업이 실제적으로 패소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울러 이미 출간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도 계속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증쇄를 발행할 때 책 내용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두 부분을 수정하거나 명확히 표현하라고 판결했다. ---「소송」 중에서

“당신 책을 아주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문체가 자유롭고 재미있더군요. 하지만 제겐 고통받는 대중의 문제만 보였습니다. … 제 스스로 어린 시절 18년 동안 아버지에게 당한 고문과 굴욕을 극복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독일적인 차가운 분위기를 견뎌낼 수 없었죠”라고 쓴 프랑스 출신의 에바는 중부유럽의 문화와 결별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이슬람 국가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처럼 그녀는 알리를 종교적인 인물로, 즉 알라가 보낸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알리가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특징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소수의 독자들, 특히 아이들만 알았는데 그들은 알리의 ‘장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카린은 열두 살 조카의 편지에서 인용한 문장을 보내주었다. “저도 발라프의 책을 읽고 매우 좋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우습더라고요. 아빠에게 말했을 때 아빠는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라고 하셨어요. 며칠 후에 텔레비전 [엘스트너 쇼]에 나온 귄터 발라프를 봤어요. 발라프는 아이들만이 자신을 보고 웃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는데, 그때 아빠는 그걸 매우 어리석게 보시더라고요.” ---「독자들의 반응」 즁애서

독일어판과 발맞춰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는 네덜란드에서 《나는 알리입니다Ik Ali》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적극적인 네덜란드의 출판인 로프 반 후네프Rob van Gennep는 당시 막 완성된 원고를 쾰른에서 가져와 순식간에 번역을 마쳤다. 불과 1년 만에 네덜란드 번역판으로 15만 부가 팔렸는데, 인구 수로 따지면 독일에서 팔린 것과 비슷한 비율이었다. 《나는 알리입니다》는 결코 독일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지 않았으며, 네덜란드 언론은 자국 내에서도 종종 자행되는 외국인에 대한 비방에 논쟁의 초점을 맞췄다. 발라프의 제의로 네덜란드 출판사는 발라프의 서문과 함께 뤼디 카히Rudie Kagie가 쓴 《네덜란드의 외국인 책에서 발췌한 보고문Berichten uit Hollands gastenboek》을 펴냈는데, 이 책은 네덜란드 내의 문제점을 되짚어보는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덴마크 번역본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책을 둘러싼 외국에서의 반응」 중에서

1988년 3월 20일, [가장 낮은 곳에서]는 독일 영화로는 처음으로 1987년 ‘영국영화 및 텔레비전예술아카데미’가 수여하는 최우수 외국영화 부문에서 제작상을 받았으며, 지금도 영국에서 반복해서 방영되고 있다. 라이프치히와 발라돌리드(스페인)영화제에서도 상을 받았다. 영화배급사들은 적극적으로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덴마크, 터키 영화관에 영화를 배급했다. 상파울루에서 처음 상영되었을 때에는 영화관 앞에 줄을 선 관람객 행렬이 200미터에 달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는 곧이어 영화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브라질에 있는 독일 대기업에서 일하는 흑인들에게 행해지는 억압에 관한 단상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곳에서도 용역노동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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