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 대부분이 음식문맹자가 된 것은 개인의 탓도 있지만, 구조의 산물로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이 먹는 음식의 식재료부터 생산지, 생산자가 잘 알려지지 않은 정체불명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소비자로서 현대인들은 생산자인 농민과 떨어져 있어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생산방식을 알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 또 소비자는 알기 어렵게 되어 있는 복잡한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를 먹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음식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pp.4-5
서양에서는 지금부터 100년에서 150년 전에는 먹을거리의 95퍼센트가 지역의 교회 첨탑에서 볼 수 있는 반경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알고, 생산과정을 아는 먹을거리를 먹었다. 당시에는 먹을거리가 공간의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먹을거리는 공간의 맥락을 상실했다.--- p.45
패스트푸드는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패스트푸드로 지칭하는 것으로 햄버거, 샌드위치, 도너츠, 피자, 인스턴트식품 등이다. 손으로 먹는다고 해서 손가락음식이라고도 하고, 과당 등이 많이 들어 있어 열량은 높지만 각종 영양소가 들어 있지 않아 정크푸드로 불리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생산에서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산업의 시간으로 재배하거나 키운 먹을거리다. 제철에 생산되지 않고 사철 생산되는 먹을거리, 짧은 기간에 빨리 키우는 소, 돼지, 닭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p.51
음식에 대한 선택은 투표 행위와 같다. 선택이 갖는 결과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커피를 예로 들어보자.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면 크게 두 종류의 커피가 있다. 하나는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 가공하여 전세계에 대규모로 공급하는 커피다. 다른 하나는 다국적 기업과는 달리 농민들이 소규모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 가공하여 공급하는 커피다. 두 종류의 커피 중 어느 것을 선택하여 마시느냐에 따라 지구 환경에 미치는 결과가 다르다.--- p.84
음식문맹자의 문맹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완전 음식문맹자는 먹을거리의 중요성, 현대 먹을거리의 문제점에 대해 전혀 모른다, 이들은 음식에 대한 의식도 없고, 음식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행동도 생각하지 못한다. 반半 음식문맹자는 먹을거리의 중요성, 현대 음식의 문제점에 대해 알고 있지만, 식생활을 바꾸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pp.100-101
식량자급률이 낮은 국가에서 음식문맹자의 글로벌푸드 선호는 식량보장의 저하를 더 가져온다. 음식문맹자의 식생활이 지역에서 로컬푸드의 생산자들을 더 어렵게 하여 식량자급률의 저하를 가져오게 하기 때문이다. 지역 수준에서 식량보장의 저하는 식량부족이라는 위험을 수반한다. 이유가 어떠하든지 간에 적절한 식량 공급이 안 되고 식량부족 사태가 일어나면, 개인의 고통은 물론 사회의 혼란과 붕괴도 초래된다.--- p.192
싸다고 하여 밖에서 음식을 찾는 것은 모순입니다.
한국은 많은 음식을 중국에서 수입합니다.
중국에서 싼 값으로 대량으로 농산물을 수입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발전할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자동차, 휴대폰을 생산할 것입니다.
중국도 유기농을 원할 것입니다.
그러면 중국에서도 농산물가격이 올라갈 것입니다.
그때 한국의 농업은 없을 것입니다.--- pp.196-197
음식시민은 음식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 음식시민은 음식을 단지 먹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여러 측면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음식이 건강, 성적, 행동, 환경, 지역사회, 문화,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음식시민은 식습관에 작용하는 사회적·문화적·역사적 영향력을 알고, 그것들 각각의 결과를 이해한다. 음식이 건강·환경·사회에 미치는 결과를 이해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안다. 음식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음식을 구성하는 영양소에 초점을 맞추는 환원론이 아니라 음식을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다루는 전체론으로 접근한다.--- p.207
슬로푸드는 특정한 음식의 종류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방식과 관련된 말이다. 슬로푸드는 자연의 시간에 따라 생산한 것이다. 과일로 치면 사철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제철에 생산되는 것이 슬로푸드라고 할 수 있다. 고농축사료와 항생제 등을 이용하여 속성으로 사육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방식으로 기른 돼지에서 나온 고기가 슬로푸드다. 생선도 양식이 아니라 이른바 자연산이 슬로푸드라고 할 수 있다.--- p.211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연구로 영양교육 경험 여부에 따라 학생들의 아침식사의 비중이 달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 아침식사를 하는 비율이, 영양교육을 받은 학생은 57.7퍼센트인 데 비해 영양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은 43.9퍼센트로 나타났다. 또 영양교육 여부가 간식 내용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양교육을 받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과자와 빵 선택비율이 낮고, 과일, 우유 및 유제품을 선택한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pp.245-246
학교텃밭은 학생들을 농경지와 연결시켜준다. 학교텃밭은 일상생활에 빠져 생긴 인간 경험의 배고픔을 채워준다. 학교텃밭 체험의 핵심은 농업, 생명의 중요성을 아는 것, 생명과 대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나무 심을 곳은 사람이 정해서는 안 되고 심어질 나무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p.266
슬로푸드 선언문에서는 현대문명이 중시하는 빠른 속도, 빠른 생활의 부작용이나 문제점에 주목한다. 특히 빠른 생활이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을 추구해야 하며, 그 대안을 슬로푸드에서 찾고 있다. 슬로푸드 선언문은 슬로푸드운동이 단순히 음식이나 음식의 미각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속도를 강조하는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p.282
먹을거리의 공동생산자에서 수동적인 소비자로 오늘날 소비자의 위상이 낮아진 것은, 세계식량체계 그리고 소비주의의 분리 문화와 관련이 있다. 세계식량체계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어 있다. 그것도 단순한 분리가 아닌 적대적 분리이다. 이러한 분리로 인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피드백이 어려워진다. 곡물메이저, 식품산업, 농기업 등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할 지배한다. 즉 분리시켜놓고, 생산자를 지배하고 소비자를 지배한다.--- p.304
벨루오리존치 식량보장 사례는 우리나라 도시 지자체의 식량정책의 방향에 참고가 될 수 있다. 벨루오리존치는 시 소유의 기존 시설이나 공간을 이용하고, 또 식량이나 식재료 등을 구매할 때 중간상을 가급적 적게 거치면서 직거래를 하고, 또 관 주도가 아닌 지역공동체나 시민단체와의 파트너십을 활용하면서 적은 예산, 전체 예산의 1~2퍼센트 범위의 돈을 지출하면서도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다. 우리나라의 도시 지자체는 농업이나 식량정책을 펴면서 대규모 시설을 짓거나, 많은 재정 투입을 통해 변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들인 예산에 비해 그 성과가 빈약하다. 벨루오리존치 사례는 규모화 정책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 지자체가 재정을 많이 투입해야 일의 성과가 있다는 전제가 잘못된 것임을 알려준다.
--- p.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