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도박, 대마 취급법 위반, 변호사법 위반, 탈세, 협박, 위력업무방해, 폭행, 상해, 가택 불법침입, 강도, 절도, 기물파손, 가옥손상, 공문서 위조, 유인사문서 위조, 신분사칭 등의 범죄를 저질러왔다. 스스로는 켕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 주장일 뿐이고, 경찰이 내 존재를 알고 증거를 모으고, 판사가 마음만 먹으면 형무소에 끌려가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는 해도 난 경찰이 두렵지 않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바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 p.43
“그래서…… 쇼이치도 그런 꼴을 당하고 있을 위험이 있다는 겁니까?”
나는 발작적으로 마구 달려 나가고 싶었다. 당장 뛰어나가서 쇼이치를 찾아다니고 싶었다. --- p.47
“조금 야윈 느낌이지만 표준 체형이야. 머리 모양도 평범하고. 길지도 짧지도 않아. 왼쪽 가르마이고 앞머리가 눈썹 부근까지 와. 귀는 양쪽 다 보이고. 목덜미의 털은 깎지 않았어. 옷깃에 조금 덮이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눈이 커. 조금 턱이 뾰족하지만, 뭐, 보기 좋은 달걀형 윤곽이지. 콧날은 쭉 뻗었지만 끝이 조금 둥글어. 귀여운 느낌. 입 주위가 좀 앳되고. 치열은 깔끔하고 이도 하얘. 피부는 까무잡잡한 편이고 햇볕에 적당히 탔어. 조금 비뚤어진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몰라. 영화를 좋아해.” --- p.65
“실제로 이런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 있구나.”
“아니, 딱히 나는 이런 일로 먹고살고 있는 게 아닌데.”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정했다. 그러나 내가 모처럼 정정한 말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 p.89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적어도 사태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희망을 버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 p.106
하루코는 작게 숨을 삼켰다. 그러더니 가느다란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나도 슬펐다. 쇼이치의 방 안이 깜짝 놀랄 정도로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p.107
그때, 어쩐지 아주 신기한 감각이 명치 부근에 떠돌았다. 나는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감각이었다. 너무나 강렬한 감각이어서,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내 머릿속을 뒤졌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p.159
“쇼이치!”
나는 외쳤다.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뿜어져 나와 깜짝 놀랐다. 나는 울고 있었다. --- p.218
쇼이치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앞으로 한 걸음만 디디면, 밖으로 나올 것이다, 내 팔 안으로 뛰어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쇼이치의 얼굴에서 좀 전까지의 기미가 사라지더니 의심이 가득 찬 표정이 얼굴을 지배했고, 곧이어 운전기사에게 뭐라고 말했다. 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보도에 굴렀다. 창문 뒷유리로 이쪽을 보고 있는 쇼이치의 얼굴이 점점 작아졌다.
“다행이다, 쇼이치. 어쨌든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 p.219
나와 다네야는 가까운 곳에서 마주 보게 됐다. 이렇게 가까우면 사타구니를 짓이기든가 정열적인 딥키스를 하든가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 p.242
“아무도 쇼이치가 살해당한 걸 보지는 못한 거지? 쇼이치의 시체가 나온 것도 아니고?”
“……응. 확실히 그래. 그렇지만……”
“알았어. 그걸로 족해. 누군가 날 괴롭게 만들고 있어. 날 흔들고 있어. 그러니까 매운맛을 보여줘야겠어.” --- p.275
우리는 목적지를 한 걸음만 남겨둔 곳까지 갔었다. 그런데 원점으로 돌아와버렸다. 아니, 원점보다 더 나쁘다. 찾기 시작할 시점에는 쇼이치가 어떻게 됐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래서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쇼이치가 녀석들의 손 안에 떨어져버린 게 확실하다. --- p.279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아니, 포기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포기하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절망하기에는 이르잖아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일단 포기하더라도 최대한 이를 악물고 다시 희망을 품을 것이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인간이란 그런 법이죠. 그런 법입니다.” --- p.287
내 입술이 마치 분해서 우는 세 살배기처럼 ‘ㅅ’자로 구부러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울지는 않았다. 다만 아주 짧은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 p.298
인생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들킬지 알 수 없는 법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 p.306
아무도 때리지 않을 수 있었기에, 서른을 넘기면 역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법이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 p.308
“난 바보야!”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장을 보고 돌아가던 아줌마가 깜짝 놀라 나를 봤다. 그녀는 ‘정말 그러네요’라는 표정으로 지나갔다. --- p.316
“엄청나게 상처받을 거야.”
“시끄러. 누구든 자기 상처는 스스로 꿰매며 살아가는 거야. 징징대지 마.” --- p.370
나는 고민했다. 그러나 배설의 욕구는 공복이나 졸음, 성욕과 달리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뭔가로 승화시킬 수도 없다. --- p.374
이젠 틀렸어. 포기해. 그렇게 마음속으로 속삭인 순간, 나는 격분했다. 웃기고 앉았네!
여기서 포기하면 나는 이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는 남자가 될 것이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지만,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여기서 포기하면 이제 죽을 때까지 제대로 살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사양한다.
--- p.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