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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편의 스토리를 따라 세계 교회사 걷기

109편의 스토리를 따라 세계 교회사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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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78g | 152*225*30mm
ISBN13 9788953136359
ISBN10 8953136350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인증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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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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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어땠을까? 저기 교회 쪽을 향해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 노파가 보인다. 얼굴은 고생으로 찌들었고 허리는 구부정하다. 그는 교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다소곳이 멈춰서 성호를 긋고는 마리아 상 앞에 선다. 뭔가 간절히 바라는 게 있는 듯 간절히 기도를 한다.
노파는 교회당 중간 오른쪽 벽면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고해성사를 하는 곳이다. 노파는 자신의 죄를 사제에게 조곤조곤 고백한다. 사소한 것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을 짜낸다. 사제는 죄를 다 듣고 어떤 벌을 줄 것인지 결정한다. ‘헌금’을 바치든가, ‘금식’을 하든가, 아니면 ‘면벌(죄)부’를 사야 할 수도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파는 잠시 후 성당 앞으로 나가 초를 몇 개 사서 불을 붙인다. 여러 촛불이 빛을 발하면 성당 분위기는 따뜻해진다. 15분 후면 미사가 시작되는데 노파는 잠시 기도하러 교회당 옆쪽에 쑥 들어간 작은 예배실Chapel로 들어간다. 그곳은 아주 조용하다. 먼저 들어온 몇 사람과 함께 앉아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이렇게 예배는 끝난다. 노파는 집으로 향한다. 혹시 교회에 더 있고 싶은 사람은 지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거기에는 순교자의 유물이나 성지에서 가져온 성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교회가 이런 성물을 많이 가질수록 영적으로 부자라고 여긴다.
노파가 집에 도착하자 지나가던 옆집 할머니가 묻는다.
“교회에 갔다 오셨어요? 몸도 안 좋은데 의사선생님에게 가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어때요?”
노파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뇨, 아파도 교회는 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을 거예요 ! 내가 죽으면 신부님이 오셔서 종유성사를 해 줄 겁니다. 그러면 천국에 빨리 갈 수 있어요.”
종유성사는 죽기 직전에 기름을 바르며 베푸는 성례를 말한다. 몇 주 지나 노파는 병으로 죽는다. 노파의 말대로 죽기 전에 교회 사제가 와서 종유성사를 해 주었다. 이것이 중세 시대 교인의 신앙생활 모습이다. 참 답답하고 불쌍하지 않은가!
--- 19-21쪽

주후 313년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주후 272-337)가 밀라노에서 동방 황제인 리키니우스 1세(Licinius I, 주후 263-325)와 역사적인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칙령이란 국가나 왕이 결정한 내용을 온 백성에게 알려 지키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밀라노 칙령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같이 인정한다. 로마의 모든 사람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며 기독교인에게 교회를 조직할 법적인 권리를 보장한다. 둘째, 기독교 탄압 시대에 몰수한 교회의 재산을 반환하고 국가가 충분한 보상을 한다.’ 사실 동방 로마에서는 황제 갈레리우스(Galerius, 주후 250-311) 가 주후 311년에 이미 기독교를 공인했었다. 그러니까 밀라노 칙령은 동방 로마와 서방 로마 전체에 기독교를 공인할 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장려한 셈이다.
그동안 기독교는 박해의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로마제국의 종교로 인정을 받았다. 교회는 빼앗겼던 재산을 돌려받고 파괴되었던 건물을 다시 보상받았다. 직분자는 국가로부터 종교인에게 주어지는 세금 면제 특혜도 받았다. 특별대우는 아니지만 핍박을 면하게 된 것만으로도 큰 변화이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숨어서 예배하지 않아도 된다. 큰 소리로 찬송할 수도 있다.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콘스탄티누스는 지금의 스페인,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지역의 광대한 땅을 다스리는 황제였다. 그런 그에게도 적이 있었다. 바로 막센 티우스(Maxentius, 주후 276-312)이다. 막센티우스는 지금의 이탈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로마제국 전체의 황제가 되려 는 야욕을 가졌다. 콘스탄티누스는 동방 황제 리키니우스 1세와 손을 잡고 막센티우스와 피할 수 없는 전쟁을 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향해 진격했다. 이 전쟁의 승리자가 전 로마제국의 황제가 될 것이다. 막센티우스의 군대가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보다 세 배나 많았다. 승리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주후 312년,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를 티베르 강변에서 물리쳤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막센티우스와 전투를 하기 전날 밤 콘스탄티누스는 신기한 환상을 보았다.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십자가 모양을 본 것이다. 그 십자가 위에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호크 빈케’Hoc Vince, ‘이것으로 승리해라!’라는 말이다. 그는 이것이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믿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콘스탄티누스는 모든 군인에게 방패에 십자가 모양을 그려 넣도록 명령했다. 군인들은 그 십자가 덕분에 힘을 얻고 용감하게 싸워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리스도인이 믿는 하나님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한 셈이다 . 콘스탄티누스는 이 전쟁을 치르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전쟁에 승리한 다음 해인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본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태양신 숭배자였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 헬레나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 어쨌거나 그를 통해 그 지긋지긋한 기독교 박해는 끝이 났다. 기독교 역사상 손에 꼽힐 정도로 엄청난 변화다.
역사가는 밀라노 칙령을 콘스탄티누스의 업적으로 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이 고통 받는 그리스도인을 해방시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
--- 47-49쪽

삼위일체 교리를 제대로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신학자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주후 296-373)다. 그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교회와 진리를 위해 힘써 싸웠다. 황제는 아타나시우스를 무려 다섯 번이나 귀양 보냈다. 어느 때는 이집트에서 오늘날의 독일인 습기 많고 추운 북쪽 지방 트리어까지 귀양을 가야 했다.
삼위일체 교리는 카파도키아의 교부들로 알려진 세 명의 경건한 신 학자들에 의해 잘 정리되어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가이사레아의 바실(Basil, 주후 330-379)과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주후 335-394)는 형제이고,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주후 329-390)는 두 형제의 친구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지만 인간이 되셨고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 만약 예수님이 단지 사람이라면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지금도 아리우스와 같이 위험한 교리를 가진 이단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이 대표적인 경우다.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고 그저 선지자로만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예수님의 증인’이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단이다. 조심해야 한다.
--- 55쪽

주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겨 그곳에서 머물렀다. 로마제국은 이제 서방의 로마 중심이 아니라 동방의 비잔티움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비잔티움은 지금의 이스탄불 지역으로,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지중해와 연결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있어서 상업이 발달하고 문화가 번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뉴브 강과 흑해 너머의 이민족들과 동방에서 맹위를 떨치는 페르시아의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지정학적 위치로 보자면 비잔티움이 로마보다 훨씬 가치 있는 땅이라 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는 새로운 수도를 공식적으로 ‘신 로마’Nova Roma라 칭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부르게 됐다.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이다.
콘스탄티노플에는 황금빛 장식을 한 대리석 건물들이 화려하게 세워졌고 교회당이 웅장하고 아름답게 지어졌다. 그 중에 지혜의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성 소피아 성당’이 단연 으뜸이다.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지혜로서 성자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 대성당은 콘스탄티누스 2세가 세웠다. 지금도 ‘하기아 소피아’, ‘아야 소피아’로 불리며 이스탄불의 최고 관광지로 꼽힌다. 주후 1453-1931년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지만, 주후 1936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콘스탄티누스는 도시에 성벽을 높고 두껍게 쌓았다. 주후 413년에 는 테오도시우스 2세가 외곽 성벽을 쌓으면서 철옹성이 되었다. 주1204년까지 그 어느 나라도 침입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지금도 이스탄불에 가면 성벽의 잔해를 볼 수 있다.
주후 12세기에 콘스탄티노플은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부자 도시가 되었다. 전 세계 금융의 3분의 2가 모였을 정도였다. 물론 기독 교도 융성했다. 주후 1453년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에게 빼앗기기 전까지만 해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제국은 ‘비잔티움제국’으로 불리며 부흥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로마제국의 중심이었던 서로마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로마는 북쪽에서 몰려드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골치가 아팠다. 침입자들이 로마를 공격해 약탈해 가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로마인은 이들을 ‘바바리안’이라고 불렀다. 자기들의 말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이방인을 일종의 ‘야만인’이라는 뜻으로 부른 경멸적 호칭 이었다.
결국 서로마제국은 주후 476년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했다. 로마는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되었고 이 민족 저 민족이 번갈아가며 지배했다. 훈족이 침입하기도 하고 비시고트족이 약탈하기도 하고 반달족이 공격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마제국은 망했어도 로마교회는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게르만 민족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영향력이 더 커졌다. 교황의 권위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그 권위에 게르만 민족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어느 누가 로마를 다스리든 교황은 어떤 순간에도 든든하게 서 있었다. 정치가 불안할수록 로마교회와 교황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고 막강해졌다. 국가는 멸망하고 시대는 바뀌었지만, 교회는 국가를 능가하는 위치에서 군림할 수 있었다.
--- 73-76쪽

주후 590년, 그레고리우스가 로마교회의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교황으로 있을 때에 업적이 너무나 많아 그의 임직년도를 중세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이후 천 년 동안 로마 천주교회의 모습은 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레고리우스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재능이 있었다. 지역에 따라 달리 불렸던 교회 음악을 모아 하나의 독특한 기법으로 완성했다. 그것이 바로 ‘그레고리우스 성가’다. 지금도 성당에 들어가면 이런 기법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교인은 이 방법으로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까지도 교회 음악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또 그레고리우스는 교회 건물 안에 여러 성상들을 만들어 세웠다. 이전에는 교회 건물 안에 성상이 금지되었다. 그는 성상이 설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도시마다 우뚝 서 있는 고풍스런 성당에 들어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화려한 성상을 볼 수 있는데, 그레고리우스에 의해 장려되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성지를 방문하는 것을 선행으로 간주했다. 성지순례라는 말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성지에 가면 가능한 많은 성물을 사 가지고 돌아오라고 했다. 그것이 신앙에 큰 유익이 된다고 가르쳤다. 요즘도 성지순례를 가면 성물을 사는데, 그의 가르침에서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성만찬이 제사라고 가르쳤다. 성만찬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차려 주시는 ‘영적인 식사’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성찬대를 제단이라고 부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레고리우스가 집전하던 성찬대 위에 고난받으시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지금도 로마 천주교인은 성찬 시간에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제사로 드려진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에서 ‘화체설’이 시작됐다.
그는 연옥교리를 가르쳤다. 신자가 죽으면 바로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연옥에 머물면서 죗값을 다 치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교리인데, 잘못된 가르침이다. 그레고리우스는 훌륭한 교황이지만 이렇게 성경에 없는 잘못된 교리를 많이 가르쳤다. 어느 누구도 잘못되었다고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 그레고리우스는 박식하고 자애로운 교황으로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훌륭한 지도자가 잘못된 교리를 가르칠 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 91-92쪽

중세 로마 천주교회의 그리스도인은 성지순례를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나 예루살렘을 한 번쯤 방문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성지순례가 유행이었다. 신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셨다는 슬픔의 길Via Dolorosa을 걸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7세기경, 이슬람 군대가 팔레스티나 지방을 점령하고 난 후에도 신자들의 예루살렘 방문은 가능했다. 세계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것이 예루살렘 주민들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주후 1000년 무렵부터 사라센이슬람제국 사람들을 배경으로 둔 투르크 왕조가 팔레스티나를 지배하면서 성지순례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동방 정교회도 사라센의 등장에 대처할 힘이 없었다. 예루살렘 순례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이 헛고생을 하고 돌아오는 일들이 많아졌다.
동방 정교회 대주교는 주후 1054년 서방의 로마 교황에게 사라센투르크 민족의 진격을 막아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나 교황도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주후 1035- 1099)는 동방 정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300명의 성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예루살렘 정복을 호소했다.
그의 요청은 삽시간에 유럽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 115쪽

칼뱅은 교회에서 설교를 해본 적도 없고 목회는 생각지도 못했다. 더구나 칼뱅은 책을 읽으며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기 위해 바젤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교회 목사직을 요청받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칼뱅은 기욤 파렐의 요청을 단박에 거절했다. 하지만 기욤 파렐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 정도에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만일 당신이 우리와 함께 주님의 일하는 것을 거절한다면 당신의 연구는 위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저주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지 않습니다.”
칼뱅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그는 나중에 이날의 일을“마치 하나님이 높은 곳에서 손을 뻗어 꼼짝 못하게 붙잡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칼뱅은 기욤 파렐의 강권에 자기도 모르게 목사직 요청을 수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칼뱅은 제네바교회의 목사로 일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 신기하다. 그 섭리를 인간은 다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의 계획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게 된다.
주후 1536년 9월, 로만 호수에 위치한 도시 로잔에서 큰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의 결과에 따라 로잔시가 개신교 신앙을 택할지, 아니면 로마 천주교회 신앙을 그대로 유지할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곳에 기욤 파렐과 칼뱅이 함께 갔다. 로잔교회에서는 피에르 비레 (Pierre Viret, 주후 1511-1572)가 목회를 하고 있었다. 기욤 파렐과 피에르 비레가 토론자로 나섰고 174명의 로마 천주교회 사제 가운데 네 명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수많은 사람이 이 공개토론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하루는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어떻게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지에 대해 로마 천주교회 사제가 교회 교부들을 언급하며 주장했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듣기만 하던 칼뱅이 벌떡 일어났다. 칼뱅은 이미 파리에서 공부할 때 교부들의 글을 많이 읽었다. 그는 로마 천주교회 사제들이 언급한 내용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교부들의 이름과 책 내용을 정확하게 인용하면서 반박했다. 키프리아누스, 테르 툴리아누스, 크리소스토무스, 아우구스티누스 등들이 했던 말을 인용했다. 듣고 있던 청중들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로마 천주교회제들은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다. 칼뱅의 반론을 듣던 한 사제가 그 자리에서 개신교 신앙으로 개종했다. 많은 청중도 칼뱅의 설명에 감동을 받았다. 그 후 사제 120명과 수사 80명이 로마교 신앙에서 종교 개혁 신앙으로 돌아왔다. 칼뱅의 하나님에 대한 성경 지식과 지혜가 놀라웠다.
--- 197-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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